시계가 무슨 필요야?

방학 중인 아이들의 일상을 보고...

등록 2004.01.20 10:34수정 2004.01.2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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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들이 개학 날짜를 잊어 개학날 집으로 담임선생이 전화를 주신 사건(?)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불쌍하다고 한다. 방과 후에도 모두들 과외에 시달리고 놀려 해도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다나? 그렇다고 다른 집처럼 과외를 시킬 생각은 없고(능력도 없고)…. 유일하게 컴퓨터 과외를 1시간 남짓 겨우시킨다. 그러나 이건 공부를 하는지, 게임을 하는지…. 가끔 들여다 보면 공부는 하긴 한다. 거기다가 큰놈의 지론!

"아빠, 공부는 학교에서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럼!"

방학내내 늦장을 부리다가 '눈썰매' 라는 말에 갑자기 행동이 민첩해진 아이들..
방학내내 늦장을 부리다가 '눈썰매' 라는 말에 갑자기 행동이 민첩해진 아이들..김만옥
아이들을 보면서 난 철없던 초등학교 2학년 때가 생각났다.

구정 설빔으로 받은 무명교복(검정색)을 자랑삼아 입고 저수지로 나가 썰매를 탔다. 해가 기울어 집에 돌아갈 때쯤 썰매타기의 뒤끝은 항상 일명 '고무다리' 놀이를 하곤 한다. 이 놀이는 얼음에 썰매용 송곳으로 얼음에 여기저기 구멍을 내면 물이 솟아오르고 약해진 얼음 위를 썰매로 통과하면 얼음이 점점 꺼지게 되는데 남자아이들의 담력을 보여주는 놀이로 아슬아슬하게 지날수록 박수를 받는 그런 놀이였다.

보이진 않지만 이런 놀이는 순차적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자신의 차례쯤 이를 거부하면 그야말로 어울림이 힘들어진다. 몇 차례 순번이 돌면서 이제는 얼음이 정말로 내려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지날 때마다 점점 썰매 상단까지 물이 차 오르고…. 결국, 내 차례에서 정해진 운명처럼 고무다리를 통과하는 순간 얼음이 꺼지면서 차가운 물이 허리춤까지 느껴지고 정신없이 일어서다 넘어지고….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한사람이 물에 빠지면 자연스레 놀이는 파장되듯 일부 아이들은 돌아가고 나머지 아이들은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다가 불을 피우고 각자 젖은 옷을 말리곤 하는데 그 우선권은 당연히 나였다.


무명교복 1벌을 나무 가지에 펼쳐 걸치고 밑에서 불을 지폈다. 더운 열기는 무명 교복을 빨리 말려줄 것이라 생각하고 모닥불에 내복을 입은 채 몸 돌려가며 어느 정도 말린 후 교복을 내렸다.

아뿔사! 교복 상의를 자세히 보니 한쪽이 상당부분 타 없어졌던 것이다. 상황은 바지도 마찬가지였다. 열기에 그만 소리도 없이, 냄새 없이 타 버렸던 것이다. 며칠 후면 설날인데….
상황을 눈치 챈 아이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연기처럼 흩어지고 남은 이라고는 남동생 뿐이었다.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저녁추위에 저수지는 다시 얼어붙는 소리를 쩡쩡내고 있고…. 아! 이일을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집까지 내복차림으로 가야 할 판이고 무어라 변명을 할까?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판이다. 이미 컴컴해진 산 속 저수지에서 잔불을 쪼여가며 아무리 생각하여도 해결책이 떠오르질 않았다.

"형! 그냥 태웠다고 그래. 일단 엄마한테."
두어 시간 지난 후 비장의 각오를 하고 집에 도착하였으나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
도둑고양이처럼 우리들 방에 든 후 동생에게 반짇고리를 가져오게 하여 꿰매려 하였으나 소실부위가 너무 넓고 남은 부분도 열기에 이미 바스러질 지경이니 한 가닥 희망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아! 이일을 어쩌란 말인가? 이불 속에 들어 날이 새지 않기를 바라며 잠이 들었다.

운명의 다음날. 밥상에 둘러앉은 후 말없이 긴장된 식사가 이어졌다. 난 도저히 밥을 넘길 수 없었다. 동생은 나의 심정을 아는지 부모님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아버님의 질문에 나는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 놈아, 교복은 다 꿰매 지더냐?"
"……."
"아직 더 꿰매야 하느냐?"
"아빠 잘못했습니다. 사주신 옷을 제가 다 태웠습니다."
"……."

어머니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두 아들을 걱정하며 이웃집 아이들에게 우리의 행방을 알아보던 중 어느 아이로부터 소상한 이야기를 들으셨던 것이다.

어이가 없으셨던 어머니는 우리의 귀가를 기다리고 계시다가 사태가 심상치 않을 것을 염려해 아버님께 그야말로 조심스럽게 우리의 만행을 알리심은 물론 노여움을 극구 만류하셨던 것이다. 혼을 내더라도 날이 밝은 후 할 것을 부탁, 이미 우리의 잠입과 반짇고리 용도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한 번 더 그러면 혼날 줄 알아라!"
"예"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부모님은 지난밤 나의 맘 고생을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 후 매년 설날이 오면 '교복 소실사건'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용서'라는 의미를 알았고 중년이 된 지금은 '부모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으나 다 알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도 아이들은 점심때가 되어 집에 들른 나에게 묻는다.

"아빠 지금 몇 시야?"
"응? 시계가 무슨 필요야? 밝으면 낮이고 어두우면 밤인데"
"맞아! 맞아!"

방학 내내 걱정 없이 늦잠 자는 아이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고 만다.

'그래! 언제 그렇게 자 보겠니 열심히 실컷 자거라……."

덧붙이는 글 | 사는것이 힘들어도 아이들을 보고 산다고 합니다.
걱정없이 늦잠자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면서 겪을 일들을 생각하니 걱정도 됩니다.
그러다가 나의 어린시절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사는것이 힘들어도 아이들을 보고 산다고 합니다.
걱정없이 늦잠자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면서 겪을 일들을 생각하니 걱정도 됩니다.
그러다가 나의 어린시절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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