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방송, 결론은 유럽식이다

[주장]정보통신부는 '대국민 홍보'가 아닌 '대화'를 시작하라

등록 2004.01.23 17:09수정 2004.01.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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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방송에서 '언제'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의 문제다.
디지털 방송에서 '언제'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의 문제다.강인규
지금 한국사회는 디지털 방송 전송방식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식과 유럽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각기 자신들이 지지하는 방식이 기술적으로 더 뛰어나고 한국적 상황에 적합하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여기에 모든 논의를 이해관계로 환원하는 '음모론'까지 가세했다. 이 '새로운' 입장은 두 방식이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없으나, 단지 밥그릇싸움 때문에 시행주체들이 차이점만을 강조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외견상 양시양비론적 성격을 가진 이 '수정론'은 결국 전송방식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 괜한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지 말고 이미 채택한 방식을 고수하자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결국은 미국방식을 지지하는 결과를 낳는다. 과연 그럴까? 두 방식은 기술이나 응용가능성 면에서 큰 차이가 없을까?

이 글은 디지털 방송에 대한 논의를 단순한 이익다툼으로 치부하면서 기존의 그릇된 결정을 묵인하도록 만드는 세 번째 시각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위험한 입장은 미국식이나 유럽식 어느 한 쪽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 이상의 논의 자체를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는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디지털방송에 대한 더 이상의 논의는 무가치한가?

가장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정부가 디지털 전송방식을 결정하기 이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합리적인 평가와 논의과정을 거쳐야했다. 그랬다면 현재와 같은 지리한 논쟁을 둘러싼 경제적, 시간적 기회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결론이 나든간에, 정보통신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졸속행정의 결과이긴 하지만) 디지털방송 표준이 이미 결정되었고, 이에 따라 계획이 상당부분 진척되었다고 해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무의미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이 두 방식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게 된 지금이야말로 디지털방송 전송방식에 대한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은 우리보다 앞서 해당기술을 개발하고 표준선정에 대한 논의와 시행착오를 경험했던 다른 나라의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현재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우리가 '유럽식'이라고 부르는 '직교 부호화 주파수 분할다중방식(COFDM)'을 채택하고 있고,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만이 '잔류측파대 전송방식(8VSB)'을 표준으로 결정한 상태다.


캐나다의 경우, 미국의 방송을 그대로 전송받아서 쓰는 의존적인 미디어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어떤 방식을 채택하든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미국과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나라가 유럽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 자신만의 독자적인 전송방식을 개발했지만 이 기술은 유럽식 전송방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고 대만은 1998년 미국방식을 표준으로 채택했다가 여론의 요구대로 국내시험을 거쳐 유럽방식으로 변경했다.

많은 나라가 채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방송표준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이 우리의 사회 상황에 부합하느냐이다. 미국방식과 유럽방식은 나름대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에, 두 기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우리의 결정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는 두 방식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 자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다른 표준을 채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의 판단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디지털방송 전송표준 결정배경

미국이 디지털방송 표준을 처음으로 채택한 것은 1995년이지만, 새로운 방송표준을 결정하기 위한 위원회 (ATSC)를 구성한 것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방송을 '디지털화'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불가능한 상태에서 단지 기존방송(NTSC)의 화면비율과 화질을 개선한다는 의미의 '고화질 텔레비전(HDTV; High-Definition Television)' 개념이 제시되었다.

그러다가 1991년 제너럴 인스트루먼트(General Instrument)사가 처음으로 디지털 방식의 고화질 텔레비전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이것이 위원회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완전한 디지털 방식의 고화질 텔레비전이라는 획기적인 계획이 미국에서 발표되자, 비슷한 시기에 아날로그 방식의 고화질 방송을 개발하고 있던 유럽은 된서리를 맞았다.

유럽국가들은 기존의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1993년 디지털 비디오 방송(DVB; Digital Video Broadcasting) 기구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유럽 역시 미국과 같은 단일전송파(single carrier) 방식을 채택했다. 단일전송파 방식이란 데이터를 하나의 신호로 묶어서 전송하는 방식을 말한다.

현재는 상당수준 개선되었지만, 처음에는 단일전송파 방식에도 심각한 허점이 있었다. 하나의 신호로 전송되기 때문에, 이 신호가 장애물에 의해 차단되는 경우 방송수신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호가 주위의 장애물에 의해 반사되어 이중으로 수신되는 경우에도 방송을 볼 수 없었다.

아날로그 방식에서 반사파(multipath)는 화면을 두 겹으로 보이게 할 망정, 시청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디지털 방식의 수신기는 '원본'과 '복사본'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예 수신이 되지 않는다. 결국 유럽은 실험과정에서 단일전송파 방식을 포기하고 신호를 나누어 보내는 방식의 주파수 분할다중방식(COFDM)을 채택했다.

미국이 1991년부터 1995년 사이에 디지털 표준을 결정한 반면, 유럽은 2년이 늦은 1993년부터 1997년 사이에 표준을 확립했다. 동일한 4년 간이었지만, 2년 늦게 시작하고 2년 늦게 마무리한 유럽방식은 미국방식과 여러 모로 차이가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의 특성을 생각해 볼 때, 이 차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비록 늦게 시작했지만, 유럽에게 이 지연은 새로운 기회가 된 셈이다. 미국이 연방방송통신위(FCC)와 몇 개의 회사에서 참여한 전문가들을 주축으로 해서 표준을 정하고 이에 맞는 기술을 발전시켜 온 반면, 유럽은 실제로 기술을 사용해 본 후 시장의 필요에 부합하는 기술을 표준으로 정했다.(Nolan 2000)

미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미국이 표준을 정할 당시만해도 상호비교할 만한 충분한 기술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간기업들로 구성된 기술자문단은 이미 자사가 공급하기로 결정된 표준방식의 변경을 원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비디오 부호기는 에이티 앤 티(AT&T)에서 개발하고, 비디오 해독기는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다채널 오디오는 돌비(Dolby Laboratories), 전송시스템은 제니스(Zenith)사가 주관하는 형식이었다.

이동수신, 과연 불필요한 기능인가?

미국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고화질(HDTV)' 대 '표준화질(SDTV)'로 문제를 단순화시키려고 한다. 즉 미국식은 이동수신이 불가능하지만 고해상도의 화면을 즐길 수 있는 반면, 이동수신이 가능한 유럽식은 표준화질의 방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화질은 전송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전송되는 자료의 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유럽방식으로도 얼마든지 고화질 방송을 보낼 수 있고 수신할 수 있다. 유럽 대다수의 나라에서 현재 고화질 방송을 하고 있지 않은 이유는 기술적인 한계때문이 아니라, 데이터 전송율을 고화질 수준까지 높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방식으로 고화질방송을 시작한 호주나 싱가포르의 경우를 봐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고정수신에는 고화질이 가능하더라도 이동수신중에는 불가능하다는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다.

다만 이동수신 가운데 노트북이나 휴대폰과 같은 소형 단말기에 고화질 화면을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송방식의 한계가 아니라, 고화질 수신에 필요한 전원공급장치가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용량 전지기술은 현재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미국식 표준으로 채택된 단일전송파 방식은 개발초기부터 이동수신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방송체제다. 미국의 연방방송위는 소비자들이 이동수신 자체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방송실무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동수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미국방식이 이동수신이 불가능한 것은 단일전송파 방식 자체의 기술적 한계 때문이다. 현재 이 방식의 실내수신은 상당부분 개선된 상태지만, 이동수신까지 발전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현재 미국내에서도 이동수신의 중요성이 제기되면서 다른 보조수단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이동수신이 주요 의제가 되지 못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한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과는 달리 공영방송이 발달하지 못한 미디어환경 때문이다. 공중파의 경우 수신료 없이 전액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상업방송체제를 가진 미국으로서는, 시청자들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동수신의 경우, 시청률과 시청자들 반응을 분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미국의 시청률 조사에서 이동수신장치는 모두 배제된다. 사전에 선택된 시청자의 집안에 놓여있는 텔레비전에 연결된 '피플미터(people meter)'와 유선전화기를 통한 설문조사를 통해서만 시청률과 점유율, 그리고 시청자들의 나이와 성별을 조사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이동수신은 광고주들과 여론조사기관에게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미국의 디지털방송 표준이 결정될 당시, 휴대폰이나 무선 인터넷 등의 이동수신장치는 미국 내에서 거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 못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한국에서 디지털방송의 이동수신을 '부가기능'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미래의 방송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디지털방송은 미디어 융합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뒷받침돼야

미래의 언론환경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매체융합(media convergence)'이 될 것이다. 디지털 기술로 인해 각 매체 사이의 경계는 점차 허물어져 가고 있다. 이로 인해 텔레비전과 컴퓨터, 컴퓨터와 전화기, 그리고 신문과 방송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형태로 통합될 것이다.

노키아에서 개발된 휴대전화/컴퓨터/텔레비전으로, 접을 수 있는 액정화면이 장착되어있다.
노키아에서 개발된 휴대전화/컴퓨터/텔레비전으로, 접을 수 있는 액정화면이 장착되어있다.Nokia
현재 개발되고 있는 '접을 수 있는 표시장치(foldable displays)'는 이런 매체융합에 대비한 것이다. 그리고 이 단말기는 종이처럼 말거나 접을 수 있는 얇은 상태까지 발전할 것이고, 이는 방송과 신문을 하나로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영화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런 매체융합 현상은 이미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현재 일본의 '인터넷 인구' 가운데 다수는 아예 컴퓨터를 가지고 있지 않고, 또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로 인터넷을 쓰기보다는 휴대전화기용으로 단순화된 웹사이트를 사용하는 편을 즐기는 탓이다. 이들은 전화기만으로도 충분히 이메일을 쓰고 신문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쓰기 위해 굳이 컴퓨터 앞에 앉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팀 클락(Tim Clark)이 <일본 미디어 리뷰 Japan Media Review>에서 지적한대로, 인터넷 때문에 컴퓨터를 쓸 줄 모르는 청소년들이 오히려 늘어가고 있다는 역설은 미디어융합의 단면을 보여준다. 전자수첩기능을 가진 전화기가 등장하자마자 카메라기능을 가진 전화기가 개발되고, 또다시 얼마 후 텔레비전 기능이 추가된 휴대전화기가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이다.

이런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동수신이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백해진다. 미래 매체환경의 핵심을 구성할 디지털방송의 이동수신은 '자동차 운전석에 텔레비전을 달면 위험하지 않느냐'는 식의 논점을 벗어난 대응으로 넘길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이는 '미국식 전송방식이 앞으로 더 발전하면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낙관할 수 있을만큼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한국의 정보통신부가 디지털방송 표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미래의 매체환경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송표준이란 서너 해의 투자나 시간이 아깝다고 해서 적당히 끌고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에서 보았듯, 돌아가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합리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저당잡히는 것은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섣불리 결정된 미국의 방송표준에 대해 먼저 개발된 기술이 최선의 기술은 아니기에, "서두르지 말고 더 느린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쯤 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이미 놓쳐버린 세계시장도 상당부분 얻게 되었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미국언론에 귀를 기울일 때다.(Dick 2002)

정통부와 해당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에서는 표준변경으로 잃게 될 경제적 손실이 22조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유럽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미국식을 고수할 경우, 앞으로 30년간 국민들이 지불해야 하는 추가비용이 50조에 이른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더 나아가 방송표준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이익이나 손실로만 설명될 수 없을만큼 중요한 사회문화적 이슈라고 말하고 싶다.

방송의 주체는 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국민이다

정보통신부가 표준을 결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기업들은 표준변경 뿐 아니라 이에 대한 합리적 논의 자체마저 금기시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변경방식이 자신들의 기업활동에 막대한 손해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통신부는 기업들 편에 서서 디지털 전송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문제제기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왜 대화에 나서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더 이상의 논의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대국민 홍보'라고 생각했다."

정보통신부의 기존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정보통신부가 국민을 방송의 주체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당 기업들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제까지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온 만큼, 변경방식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표준을 변경하면 디지털 텔레비전을 단 한 대도 팔 수 없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그들의 걱정은 단순한 '규모의 경제' 차원일 뿐이다.

비록 한국이 합리적인 평가와 토론과정을 거쳐 방식을 변경하더라도 단일 규모로는 최대인 미국시장에서 그들이 누리는 비교우위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미 미국식 기술을 선점한 기업들로서는 유럽과 다른 아시아국가들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들이 유럽방식에 대한 기술과 특허획득에 미진했던 것은 그들 탓이지 국민 탓이 아니다. 물론 같은 상품을 만들어 포장인쇄만 바꾸면 되는 편리함을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나, 기업의 안일한 부가이익을 위해서 국민들의 이익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정보통신부는 '대국민 홍보' 대신 '대화'를 시작하라

미국이 유럽의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듯, 우리도 미국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최선의 결정은 애초에 충분한 토론과 협의단계를 거쳐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으나, 이미 그 기회를 놓친 현재로서는 차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늦었다고 해서 잘못된 길을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소 지체되더라도 현명한 길을 가야 한다. '느림의 지혜'가 가장 요구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미국식 전송방식을 채택했던 대만은 얼마 전 유럽방식으로 변경했다. 대만정부는 한동안 미국식을 고수했다가 합리적인 비교테스트를 통해 유럽식이 우수한 것으로 드러나자 기존의 결정을 철회한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우리는 대만의 결정만큼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우리가 판단을 미루고 있는 사이, 오히려 그토록 걱정하고 있는 기회비용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의 정보통신부는 디지털방송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합리적인 토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적극적인 무시로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시간은 그들 편으로 보인다. 대충 시간을 벌어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끌고 간 뒤,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미 그런 낡은 발상이 통하는 시대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국민을 무시한 어리석은 결정은 한 번으로 족하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ATSC, "ATSC History," URL: http://www.atsc.org/history.html 

Careless, James (2001) "Canada to Test COFDM in Toronto," Broadcasting & Cable, January 29, 2001. p. 55.

Clark, Tim (2003) "Japan's Generation of Computer Refusenicks," Japan Media Review, University Park: USC Annenberg School for Communication.

Dick, Brad (2002) "Slower but Wiser," Broadcasting Engineering, August 2002. Vol. 44. Iss.8; p. 8.

Dickson, Glen (2000) "A Mobile Proposal," in Broadcasting & Cable, June 5, 2000, p. 48.

KBS, "디지털 방송 2년 – 디지털 TV,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추적60분,  2003. 11. 26.

MBC, "디지털TV, 시청자는 봉인가?," PD 수첩, 2002. 11. 19. 

Nolan, Dermont (2000) "The Great Modulation Debate?" Broadcasting Engineering, August 2002; Vol. 42. Iss.9; p. 22.

덧붙이는 글 <참고자료>

ATSC, "ATSC History," URL: http://www.atsc.org/history.html 

Careless, James (2001) "Canada to Test COFDM in Toronto," Broadcasting & Cable, January 29, 2001. p. 55.

Clark, Tim (2003) "Japan's Generation of Computer Refusenicks," Japan Media Review, University Park: USC Annenberg School for Communication.

Dick, Brad (2002) "Slower but Wiser," Broadcasting Engineering, August 2002. Vol. 44. Iss.8; p. 8.

Dickson, Glen (2000) "A Mobile Proposal," in Broadcasting & Cable, June 5, 2000, p. 48.

KBS, "디지털 방송 2년 – 디지털 TV,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추적60분,  2003. 11. 26.

MBC, "디지털TV, 시청자는 봉인가?," PD 수첩, 2002. 11. 19. 

Nolan, Dermont (2000) "The Great Modulation Debate?" Broadcasting Engineering, August 2002; Vol. 42. Iss.9; 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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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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