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글쓰기로 '삶의 음표' 찾다

실험적 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 출간한 배수아

등록 2004.01.27 15:17수정 2004.01.2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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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소설가 배수아(39)씨의 신작 <에세이스트의 책상>이 문학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제목처럼 에세이 형식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 자체가 획기적인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배씨의 실험은 신선하다. 그 실험 속에는 이 시대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표지에는 엄연히 '장편소설'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다. 하지만 책장을 몇 장 넘겨보면, 이 작품이 소설의 형식을 빌려온 에세이에 가깝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작가는 짐짓 이야기를 구축하고 짜임새 있게 배열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언어와 음악, 일상과 사랑에 대한 관조적인 논평으로 작품을 채운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친절하게 고백한다.


"내가 소설가이고 소설을 주로 써 왔고 이 책에 소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선명한 스토리에 의존해서 진행되는 글을 멀리 하려고 했다."

소설 형식 탈피 언어·음악 등 논평 에세이 식 나열

그래서 이 작품의 '이야기'는 단출하다. 작중화자인 '나'가 사랑했던 'M'에 대한 기억과 무미건조한 일상이 교차되어 펼쳐질 뿐이다. 이야기가 너무나도 단출하기 때문에 짜임새 있게 엮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노릇이다. 왜 그랬을까. 문단 데뷔 10년이 넘고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가 괜히 그랬을 리는 없지 않은가. 소설의 '상식적인' 요소를 버린 자리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말을 경멸하는 편이다. 그것은 영혼이 없는 자연과 같다. 나는 그것에 매우 서투르다. 그래서 대부분 거짓말만 하거나 진실을 말할 순간을 놓쳐버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문자의 세계를 사랑한다. 문학은 오락이기에 앞서 언어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음악은 언어의 경계가 소멸된 문학의 형태라고 본다."

그렇게 밝힌 바 있는 작가는 작품 속에서도 말한다. "음악은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라고. 그리고 거듭 발설한다. "M과도 언어에 의하지 않고 음악으로만 대화했더라면 일이 다르게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요컨대 작가는 '음악적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음악적 글쓰기'란 무엇일까. 왜, 작가는 작품 속에 쇼스타코비치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의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심어 놓은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작중화자인 '나'의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불만과 결핍과 갈증으로 가득한 인간의 내부에서 나온 음악"이 주는 예술적·정신적 가치 안에서 내면적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낮은 목소리일 것이다.


'문화예술' 소비대상 전락...작중화자 입빌어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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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세상은 빠르게 흘러간다. 내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지 알 틈이 없다. 그러면서도 정체성과 가치관을 발견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래서 문화 예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개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문화예술을 '소비'할 뿐이다. 그런 세태에 대해 작가는 '나'를 통해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내게 가장 혐오감을 주는 존재는 모든 사람에게 한 방향을 가리키는 대중문화이며 그것을 소비하면서 독자적 취향을 가진 양 착각하는 문화적 속물들이다."

정체성과 가치관마저 '소비'되고 사물화되는 멀티미디어디지털시대는 사람과 사람을 끝없이 익명의 객체로 만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이 너무 쉬운 까닭이다. 1인칭은 줄어들고 2인칭과 3인칭이 늘어난다. 고유명사가 사라진 그 자리에 신조어로 결합한 일반명사가 넘쳐난다. 그러한 시대에서 '나'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그 답을 제시한다. 작가는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라고 말없이 말한다. 그리고 권유한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인 음악에서 '삶의 음표'를 찾아내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성종합신문 <우먼타임스>에서 제공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성종합신문 <우먼타임스>에서 제공했습니다. 

에세이스트의 책상

배수아 지음,
문학동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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