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언행을 가만히 살펴보면 안목도 좁고, 편협한 사고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큰 코를 다치거나 아예 패가망신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여 충고를 하려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고로 부려먹기는 영악한 놈보다는 멍청한 놈이 편한 법이다. 무슨 일을 시켰을 때 영악한 놈은 제 이익을 도모하지만 멍청한 놈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효재를 혼내는 상황을 살핀 허보두는 방조선이 아직 사실을 모르고 있다 생각하였던 것이다. 만일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한가하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것이다.
어디론가 내빼거나 아니면 시치미를 뗄 음흉스런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간교한 말과 행동을 하기엔 너무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었다.
최근의 그의 말을 보면 그것을 극명하게 알 수 있다.
방조선의 특기는 남의 말 가운데 앞 자르고, 뒤를 자른 뒤 중간 부분만 끄집어낸 뒤 그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그것은 본래 그의 휘하에 있던 금대준의 주특기였다.
근주자적(近朱者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진(晉) 부현(傅玄)이 저술한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 사람이 주변 환경의 영향에 의해 악(惡)해지기도 하고, 선(善)해지기도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 중에 있는 말이다.
'무릇 쇠와 나무는 일정한 형태가 없어서, 네모나고 둥근 것은 그 외양에 따르게 되며, 또한 도지개가 있어 그 습관과 성질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주사(朱砂)를 가까이 하는 것은 붉게 되고, 먹을 가까이 하는 것은 검게 된다. 소리가 조화로우면 울림도 맑으며, 외형이 바르면 그림자도 곧게 된다… 하략'
'夫金木無常, 方員應形, 亦有隱括, 習與性成. 故近朱者赤, 近墨者黑. 聲和則響淸, 形正則影直… 下略'
방조선은 오랜 세월 동안 심복으로 부리던 금대준의 영향을 받아 남의 말 가운데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부분을 제 마음대로 잘라내고 제 멋대로 부풀리는 특기가 생겼던 것이다.
그것은 방조선만 그런 게 아니다.
조잡재를 비롯하여 효재, 백지녕 등 그의 휘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주특기를 가지게 되었다. 다음은 그들이 종종 저지르는 일 가운데 하나의 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래 전, 왜문의 침공이 있었을 때 논개라는 여인이 적의 고수인 모곡촌육조(毛谷村六助)를 끌어안고 함께 물 속으로 뛰어 들은 일이 있었다.”
이것이 방조선의 입을 거치면 이렇게 바뀌게 된다.
“오래 전, 왜문의 침공이 있었을 때 논개라는 여인이 모곡촌육조라는 적의 고수와 함께 물 속에서 놀았다.”
곡을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한 논개가 졸지에 노류장화(路柳墻花)로 전락해버렸다. 극과 극을 오간 셈이다.
방조선과 그 일당들은 이 같은 수법으로 곡의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었기에 요즘과 같은 권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금대준이라는 인물이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가 무림천자성으로 쫓기듯 사라진 후 방조선과 그 일당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지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블경에 이르기를 향 싼 종이에서는 향기가 나지만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는 법이라 하였다.
방조선과 그 일당은 금대준이 있어 진실을 왜곡할 수 있었으나 그가 사라지자 그만 그 동안의 수법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사람들에겐 자신들이 향을 싼 종이인 것처럼 굴었지만 알고 보니 똥을 싸 둔 종이였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음모와 협잡, 그리고 악다구니라는 구린내를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교묘하게 가려 놓았던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곡도들은 공분(公憤)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옥천장이라는 곳에서 방조선과 조금만 관계가 있어도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서 방조선 휘하 사람들이 옥천장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대인께서 이 누추한 곳까진 어인 일로…?"
주안이 차려지고 그윽한 풍악을 곁들여 몇 잔 들이킨 허보두는 곁에서 시중들던 기녀들을 내보내라 하였다.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 뭔가 심상치 않은 일 때문에 온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방조선은 즉각 굳은 표정이 되었다. 이런 면에서 방조선은 확실히 천부적이다. 뭔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있다 싶으면 언제든 얼굴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네, 본좌의 물음에 추호의 거짓도 없이 정직한 대답을 하겠다고 맹세할 수 있겠는가?”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인이 어찌 대인께 사실을 사실대로 고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뭐 잘못된 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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