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 계속 연극할래?

등록 2004.01.31 10:18수정 2004.01.3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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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전 또 한살을 먹어, 27살이 됩니다.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는 것이 탐탁치 않은 저는 만으로 따져서 25살이라고 자기 위로를 애써 해 보지만, 별 수 없이 27살입니다.


점점 주위에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많아집니다. 아직 남자 친구들은 드물지만, 여자 친구들은 벌써 다음달에 2명, 그 다음달 1명이 결혼식을 올릴 거라 합니다.

집에선 언제부터인가 슬슬 저의 여자 친구에 관심이 많습니다.얼마 전에 여자 친구랑 헤어진 저는 부모님의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직 결혼하기엔 너무 이르고 생각도 없는데,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 나이에 여자 친구가 없는 게 걱정이 되는가 봅니다.

전주로 내려오기 전날, 부모님과 시외로 나가 외식을 했습니다. 객지생활 하느라, 외식은 거의 생각도 못하는 저에게 가족과의 외식은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외식 자리의 대화와 분위기는 뻔합니다. 여느 부모님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오랜만에 보는 자식에게 잔소리성 대화가 대부분입니다.

특히나, 어머니의 아들 걱정은 더합니다. 끼니 제때 제때 먹어라, 먹는 것엔 돈 아끼지 말거라, 술 많이 먹지 마라, 담배 끊어라 등 매번 듣는 얘기, 같은 내용, 뻔한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듣지만 좀 줄여줬으면 하는 생각도 만만치 않습니다.

요새 저의 어머니의 사랑 어린 잔소리의 중심 내용은 '결혼'입니다.
누구 누구가 결혼을 한다러라, 신랑이 잘 생겼드라, 이번에 대기업 들어가서 직장 잡자 마자 결혼한다더라, 아들아 요샌 만나는 여자 없니?, 너도 결혼해야지 등.


어머니께서도 제가 결혼하기에는 이르지만, 고생 안 하려면 그만큼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제 생각에 결혼이 나와 있기에 대답을 이리저리 회피하며 자리를 끝냅니다. 식사를 다 마치고, 집에 들어와 차를 마시는데, 어머니가 대뜸 묻습니다.

"아들아! 연극 계속할래?"
"예?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계속 연극할 꺼냐고, 너도 이제 결혼도 하고 그래야잖니?"
"결혼하는 거랑 연극이랑 뭔 상관인데요"
"뭔 상관이긴 돈도 많이 못 벌고, 고생할까 봐 그러지"
"됐어요. 저 그만 들어가 잘게요"


2003년도 전 대학의 마지막 졸업식날에 시립극단 오디션을 치뤘습니다. 원래는 서울로 상경하여 아는 친구 사촌형 극단에 들어가 바닥부터 생활하기로 계획을 잡았었지만, 한 선배님의 소개로 오디션을 봤고, 운 좋게 합격해 달마다 월급이 나오는 관립극단에 입단하게 됐습니다.

제 이상이자 꿈인 연극배우가 된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기뻤습니다. 일반적으로 무급여로 연극하는 곳이 허다한데, 많지 않아도 매월마다 나오는 급여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그 어렵게 된 연극배우의 길을 다행반 걱정반으로 생각하셨습니다. 합격 통지를 받고 기뻐하던 저에게 배고프고 먹고 살기 힘들다는 연극. 정말 하게 되는 거니라고 물으셨으니까요.

저에게 연극은 저의 꿈, 이상을 넘어 저의 존재입니다. 연극 없이 제가 없으니까요. 아직은 어리고, 이제 갓 프로에 입문한 신입 배우이지만, 여기까지 오기에 수많은 장애물을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행운의 여신도 저에게 손을 들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민입니다. 저의 미래의 결혼 생활이 아니라 저렇게 안타까운 눈빛으로 아들을 걱정하는 늙으신 어머니, 아버지 때문입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해서, 연극하는 아들을 밀어 주지 못하고, 이런 걱정만 늘어놓는다는 착하신 어머니, 아버지.

저의 미흡하고 덜 자란 기량, 지방연극에서의 좋지 못한 작업 환경,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이제 정말 늙어버리신 부모님이 저를 혼란케 합니다.

얼마전엔 경기가 좋지 않아, 아버지 사업에 적자가 한 번 크게 나서, 어머니께서 직접 저에게 돈을 부탁해 오셨습니다. 단돈 몇 백이었지만, 적은 월급으로 생활하는 저에게,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저는 부탁하신 몇백을 다 채우지 못하고 부족하게 해 드렸고, 그걸 다 해드리지 못했다는 데에서 아들로서 많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얼추 일이 해결되어, 괜찮아졌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고 저의 머리 속을 떠돕니다.

전 제가 고집하고 바라던 이상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같이 살아가는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평안히 해 드릴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앞만 보고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오늘도 대본을 잡고, 연습을 합니다.현실이 어떠하든 결코 포기할 수 없기에, 저를 위해 애쓰시는 부모님을 사랑하기에, 아직 가진 것 없고 어렵지만, 더욱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머니 저 계속 연극할게요 대신 더 열심히 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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