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터 문제는 문화유산정책 시금석"

강임산 한국의재발견 사무국장, 경실련 도시대학서 주장

등록 2004.02.02 16:07수정 2004.02.0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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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터에 미 대사관을 지으면 궁궐 영역을 모두 잠식하게 됩니다. 이것은 경복궁(터)를 미대사관에 모두 내주고 덕수궁과 경복궁을 합치자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지요."

경실련 도시개혁센터에서 진행하는 <도시대학>에서 '덕수궁 터 미대사관 건립 논란을 통해 본 정동의 보존'이란 주제로 정동길 탐사에 나선 강임산 '한국의재발견' 사무국장은 "덕수궁 터 지표조사에 대한 문화재위원회 안건의 핵심은 덕수궁 터 신축 허용 여부가 아니라 '덕수궁 터'의 역사적 보존가치를 논하는 것"이라며 "단순한 터 보존문제가 아니라 경주 경마장, 풍납토성 등 지난 10여년간 어렵게 지켜온 문화유산정책을 지킬 수 있느냐 하는 한국 문화재정책을 가늠하는 잣대"라고 강조했다.

강 국장은 "미 대사관측은 미 군정 치하에서 '차관' 형식의 통치자금에 대한 일부분의 반대급부로 덕수궁 터 부지를 '매매'했다고 하지만 미군정 하에서 말이 '매매'이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확보한 것"이라며 "83년도 추진되어 86년 체결된 양해각서는 덕수궁 터에 대사관, 대사관저, 숙소 등 아메리카 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보기엔 세종로 미대사관보다 신문로 안쪽에 위치해 일상적인 테러위협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교통의 중심지이자 사적지와 인접하고 있는 정동 일대가 최적지로 인식되었을 것"이라면서 "주재국 문화재터에 짓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규모 면에서도 조선총독부의 1.8배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했다.

a 강임산 국장이 덕수궁 안내표지판 앞에서 1904년 만들어진 '덕수궁도'를 들고 덕수궁 권역과 일제와 미국에 의해 훼손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강임산 국장이 덕수궁 안내표지판 앞에서 1904년 만들어진 '덕수궁도'를 들고 덕수궁 권역과 일제와 미국에 의해 훼손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 박신용철

덕수궁 터 미 대사관 신축논란은 2002년 5월 미 대사관측에서 86년 양해각서에 근거, 덕수궁 터에 미 대사관·아파트·해병대 숙소 등(규모 기재) 신축을 추진하면서 건설교통부에 외교시설을 이유로 주택건설촉진법(주촉법) 적용을 예외사항으로 적용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주촉법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을 신축할 경우 주차장 등 부대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미 대사관 신축 계획에 따르면 주촉법을 준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경실련 도시개혁센터·한국청년연합회·문화연대·한국의재발견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덕수궁 터 미대사관·아파트 신축반대 시민모임'을 결성해 '덕수궁 터 보존활동'을 전개했다.

강 국장은 "자국의 외교 편리를 위해 주둔국 문화재를 무시하는 발상으로, 선원전 전지역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며 "미대사관측은 공사를 진행하면서 초석 등 문화재가 나오면 고스란히 박물관에 보관한다는 훼손대책을 밝히고 있지만 '건물지'는 장소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원전은 조선궁궐에서 태조와 4대 어진을 모신 일상적이면서 신성한 공간으로 당시 왕조의 정통법통을 의미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는 "미국 입장에서 덕수궁 터는 상대적 부지인데 우리는 절대적 부지라는 입장"이라며 "현재에도 미 대사관 주변 경계와 통제가 심해 혐오시설로 인식되고 있는데 미대사관이 신축되면 서울시민들이 으뜸으로 손꼽는 '걷고싶은 길'인 덕수궁 돌담길 등 덕수궁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덕수궁 터 미대사관 신축은 서울시가 시립미술관, 덕수궁, 정동제일교회, 러시아공사관, 역사박물관 등 근대문화유산이 밀집된 정동을 역사문화지역으로 조성하겠다는 정책과도 배치되며 미대사관 신축으로 정동지역의 개발이 가속화되어 근대문화유산이 밀집된 정동 일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7일 제출된 지표조사 결과보고서가 덕수궁 터 보존방향으로 기울자 허바드 주한 미 대사는 외통부를 방문해 "미 대사관만이라도 짓게 해달라"며 사실상 외교적 압력을 행사했고 지표조사결과보고서를 "정치적 문서"로 폄훼하는 등의 발언을 일삼았다. 결국, 고건 국무총리는 이를 수용해 미 대사관 신축을 허용하고 전각들을 대사관 옆에 복원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덕수궁 터 보존 여부는 지표조사결과보고서를 바탕으로 문화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는 것이 국내법 절차인데 허바드 주한 미 대사나 고건 국무총리는 국내법 절차를 무시했다. 외교통상부도 문화재위원들을 모아놓고 '국익을 위해 허용해달라'고 요청해 문화재위원들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a 고종이 '자주독립국가'를 선포했던 원구단은 현재 출입문만이 남아있다. 웨스턴조선호텔이 뒷뜰처럼 사용하는 원구단 터는 일제에 의해 한일합방 직후 제일 먼저 훼손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고종이 '자주독립국가'를 선포했던 원구단은 현재 출입문만이 남아있다. 웨스턴조선호텔이 뒷뜰처럼 사용하는 원구단 터는 일제에 의해 한일합방 직후 제일 먼저 훼손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 박신용철

국내법을 준수해야할 정부가 국내법 절차를 무시하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문화주권을 포기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덕수궁 터 미 대사관·아파트 신축반대 시민모임(시민모임) 관계자들과 청와대 비서관들의 만남에서 나온 이야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그 자리에 합석했던 시민모임 관계자에 따르면 '불편한 한미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선물'로 덕수궁 터에 미 대사관 신축을 허용해줘야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는 입장을 전해들었다고 했다.

강임산 국장은 "정황 논리로 볼 때 덕수궁 터를 미 대사관에 내어줄 이유가 없다. 정부는 이미 망가졌으니 신축을 허용하자는 입장이지만 이것은 문화유산보존정책을 포기하자는 것"이라며 "덕수궁 터를 보존하지 못하면 지난 10년 동안 어렵게 쌓아온 문화유산정책의 성과들이 퇴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다시 복구할 수 없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생각하고 대체부지를 마련해줘야 한다"면서 "덕수궁 터 미 대사관 신축반대운동이 '반미가 아니라 문화재보존정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외에도 그는 "우리나라 외교통상부는 대미외교부같다"며 외교통상부의 대미 굴종적 태도를 강하게 비난했다. 강 국장은 "외통부는 미대사관 이전비용이 1천억원대이고 손실비용을 포함 2천억원대라는 경제논리와 86년 양해각서에 체결된 것을 지키지 않으면 한미관계에 있어 국가신인도가 떨어지다는 외교논리"를 펴고 있다고 전했다.

a 덕수궁 터 미대사관 신축예정지인 구 겅기여고 부지 정문에는 '미국 소유의 땅'임을 명시한 표지가 붙여있다. 등기부 등본에는 이 지역을 '영원히 팔린 땅'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덕수궁 터 미대사관 신축예정지인 구 겅기여고 부지 정문에는 '미국 소유의 땅'임을 명시한 표지가 붙여있다. 등기부 등본에는 이 지역을 '영원히 팔린 땅'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 박신용철

한편, 지난해 12월 18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는, 지표조사결과 보고서가 유례 없이 '미국 대사관 신축건물이 들어설 예정부지에는 선원전·흥덕전·흥복전 등의 진전과 빈전 등 궁궐에서도 특히 신성한 영역이 자리했던 지역으로 밝혀졌다. …궁궐터였음이 확실함으로 시·발굴조사는 필요하지 않으며, 향후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위상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심도있는 심의를 한다'는 이유로 합동위원회로 보존여부를 떠넘겼다. 문화재위원회는 1월 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또 다시 2월로 연기된 상태다.

덧붙이는 글 | 시민의 신문(www.ngotimes.net)

덧붙이는 글 시민의 신문(www.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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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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