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신사'의 특별한 출근

[인터뷰]23년 동안 인생의 페달을 밟아 온 정재환씨

등록 2004.02.04 09:59수정 2004.02.0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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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한결같이 자전거만을 고집해온 정재환 과장.
23년, 한결같이 자전거만을 고집해온 정재환 과장.이수정
저는 차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습니다. 길이 막혀 출근시간 지각할 일도 없고, 사고가 날 일도 없습니다. 회식 후 음주 운전을 할 일은 더더욱 없죠. 제 차는 조금 특별하거든요.”


회사 출퇴근의 수단으로 특별한 차(車)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 오직 자전거 하나로 이를 해결해온 이는 대전 한남대학교 정보통신 교육원에 근무하고 있는 정재환(45) 과장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자전거 애찬이 어느덧 23년이 돼 가고 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육중한 몸으로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자동차를 멀리 보며 여유롭게 페달을 밟는 정씨는 대전 둔산동에서부터 근무지까지 약 3km에 이르는 길을 자전거나 도보로 오가고 있다. 자전거가 주된 교통수단이지만 전날 술을 마셨을 때는 한남대 주차장에 놓고 집까지 걸어가기 때문이다.

그의 자전거는 차가 부럽지 않다.
그의 자전거는 차가 부럽지 않다.이수정
그가 자전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바닷가 마을에 살았던 어린 그에게 학교까지 10리 거리는 힘겨운 등하교 길이었다. 집안 여건은 자전거를 구입해 줄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고, 스스로 자전거를 마련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조개캐기였다.

뻘에 나가 조개를 캐 벌은 1만4000원의 돈으로 자전거를 구입했다. 이때 시작된 자전거와의 인연은 외지에서 유학해야 했던 고등학교 때부터 군대를 제대할 때까지의 기간을 제외하곤 계속 이어졌다.

“학교가 너무 멀었지만 자전거를 사달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어린 마음에 조개를 캐면 돈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때 당시도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는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심부름을 갈 때도 자전거를 탈 마음에 기분이 좋았으니까요.”


정장자켓은 아예 사무실에 비치해놓는다.
정장자켓은 아예 사무실에 비치해놓는다.이수정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그는 이색적인 차림을 선보였다. 정장 차림에 잠바를 걸쳐 입고, 운동화까지 챙겨 신은 모습이 영락없는 ‘자전거 신사’였다. 사무실에 준비해 둔 두 벌의 양복 자켓은 순전히 ‘사무실 용’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설 때 눈이나 비가 오더라도 문제되지 않는다. 23년간의 노하우로 한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은 핸들을 잡고 여유롭게 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오래 타다보니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돼 있어서 사고 날 위험은 없지요.”

그런 그에게도 단 한번의 사고가 있었다. 골목길에서 자동차와 추돌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자전거는 바퀴가 펑크났고, 타박상을 입은 사고였다.

“자전거가 망가져서 걸어서 출근을 했는데, 당시 학생이었던 운전자가 자전거포에 맡겨 수리를 해 주었습니다. 만약 자동차였다면 수리비용도 엄청났겠지만 제 차는 단돈 5000원에 해결됐지요.”

그의 사고 소식을 접한 주변에서는 ‘왜 그냥 보냈냐’며 성화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조그만 타박상은 금세 나았고, 자전거는 수리해 다시 타면 됐기 때문이었다.

운동화까지 챙겨 신으면 출근준비 끝이다.
운동화까지 챙겨 신으면 출근준비 끝이다.이수정
23년 동안 자전거를 타면서 얻은 가장 큰 이득은 바로 ‘건강한 생활’이다. 이는 각종 마라톤 대회에서 빛을 발했다. 한남대 총학생회에서 주최한 교내 4·19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쟁쟁한 20대 청년들을 제치고 지금까지 6번이나 순위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대청호 마라톤 대회, 춘천 마라톤 대회 등에서 60여 개의 메달을 탔다. 한 달 평균 두 번 꼴로 대회에 참가하니 1년에 20여 개를 획득한 셈이다.

“대회에 참가해 완주를 하기도 했지만 10km를 34분에 뛴 것이 제 최고 기록입니다.”

그가 참가하는 대회는 각종 마라톤 대회 뿐만이 아니었다. 자전거 신사답게 ‘가족 자전거타기 대회’는 매년 빠지지 않고 참가한다. 가족들 모두 자전거 애호가이기 때문에 대회 참가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자전거도 주차장의 한쪽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자전거도 주차장의 한쪽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이수정
자전거로 그는 삶의 이치를 깨우치기도 했다. 페달을 밟고 오르는 일상의 곳곳에는 인생의 고난과 기쁨의 순간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다 오르막길이 나오면 어김없이 내리막 길이 있지요. 그리곤 평탄한 길이 나옵니다. 우리네 삶도 그런 것 아닐까요. 고단한 시기가 있으면 수월한 때가 있고, 평탄한 시간도 오게 마련이지요.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도 그 때만 잘 견뎌내면 좋은 시간도 오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행복한 소식만 싣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행복한 소식만 싣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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