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그쟈?"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36>공장일기<22>

등록 2004.02.05 12:08수정 2004.02.0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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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00사단에서 4주간의 병역특례훈련을 마치고

00사단에서 4주간의 병역특례훈련을 마치고 ⓒ 이종찬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사나이 멋진 특례병
싸움에는 천하무적
사랑은 뜨겁게 사랑은 뜨겁게
바로 내가 사나이다 멋진 특례병



멋진 특례병? 그랬다. 멋진 특례병들이 하루에 9시간씩 00사단 신병 훈련장에서 받는 4주간의 군사훈련은 몹시 고되었다. 교관과 조교들은 우리들이 특례병이라는 이유로 온갖 희귀한 훈련(사실상 고문)을 다 시켰다. 마치 자신들만 군대에 온 게 억울하다는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이.

"저기 조교 화이바 쓰고 있는 절마 저것들 있제? 알고 본께네 절마 저것들은 전부 똥방위라 카더라."
"진짜로? 그런데 절마 저것들이 와 더 설치노? 저거나 우리나 출퇴근하는 비슷한 처지에 있음시로(있으면서)."


그랬다. 그 당시 병역특례병들을 교육시키는 조교들은 모두 우리들처럼 출퇴근을 하고 있는 방위병들이었고, 교관은 그 부대에 배치 받은 상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계급장을 달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들은 조교들은 공수부대 하사, 교관은 공수부대 소위 쯤 되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공수훈련과 특전훈련을 받는 이야기를 아주 그럴 듯하게 했다. 그리고 그 지독한 훈련의 맛보기를 보여준다면서 우리들을 시험대상으로 삼곤 했다. 우리들 또한 군부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이상 그들의 요구대로 꼭두각시가 되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 참! 알다가도 잘 모르것네. 지난 번에 특례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훈련이 이리 지독하지 않았다 카던데."
"니는 그것도 모르것나? 절마 저것들이 자꾸 우리들을 괴롭히는 이유는 딱 한가지뿐이라카이."
"그기 뭐꼬?"
"바로 요거 아이가. 요 앞 전에도 절마 저것들이 하도 괴롭혀쌓서 소대별로 요거로 거둬줬다 카더라"



그랬다. 나이도 특례병들보다 3~4살 어린 그들이 툭 하면 고문과 다를 바 없는 기합을 주고 '뺑뺑이'를 돌리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4주간 특례교육을 받는 이곳에서조차도 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긴 돈을 싫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렇다고 모든 것을 돈으로만 연관시키면 되겠는가.

하지만 우리들도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군부대에서 나올 무렵만 되면 우리들을 진흙탕 속에 빠뜨려 뱀장어처럼 꼬물거리게 하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훈련이 고되서가 아니었다. 우리들은 그 훈련이 끝나면 집으로 가기 위해 진흙탕이 덕지덕지 묻은 그 예비군복을 입고 시내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군부대를 빠져 나오면 우리들은 군부대 근처 물꼬에 줄줄이 앉아 옷을 씻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충 그렇게라도 씻고 시내버스를 타야 다른 버스 승객들에게 피해를 적게 입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렇게 버스를 타면 빈 자리가 있어도 예비군복이 모두 젖은 탓에 앉을 수도 없었다.

그 때문에 우리들도 각 분대별로 의논을 한 뒤 십시일반으로 약간의 돈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돈을 소대장이 교관에게 은밀히 전달하는 방식을 취했다. 말이 십시일반이지 그 돈은 큰 돈이었다. 왜냐하면 특례병들은 모두 공장에서 월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제법 큰 돈을 냈기 때문이었다.

"차암!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그쟈?"
"그걸 말이라꼬 하나. 그건 그렇고 요새는 너무 편해서 그런지 하루가 너무 길다. 그때는 하루가 우째 지나가는지 모르것더마는."
"그라이 진작에 돈을 거둬 줬으모 우리가 그런 고생을 덜했을 꺼 아이가."


그랬다. 역시 뇌물은 위대했다. 뇌물 앞에서는 그렇게 힘들었던 신병훈련도 제대로 된 훈련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교관과 조교들은 말투부터 존댓말로 바꾸었다. 그리고 기합이나 '뺑뺑이'라는 것은 아예 없었고, 군기가 가장 세다는 사격장에서도 우리들을 아예 신주단지 모시듯 조심스레 다루었다.

나의 4주간 특례교육은 2주간을 무진장 고생한 끝에 결국 뇌물을 쓰고 나머지 2주간을 아주 편하게 끝냈다. 당시 병역특례교육을 4주간 받는 군부대에서조차도 그랬으니 바깥사회는 오죽 썪어 빠졌겠는가. 소위 말해서 '빽'이 없으면 뇌물이라도 써야만 하는 그런 얼빠진 사회가 아니었겠는가.

그래. 요즈음 정치인들이 줄줄이 뇌물로 인해 붙잡혀가는 것을 바라보면 그때 그 일이 더욱 또렷하게 떠오른다. 아니, 그런 사회구조 속에서 나 혼자 싫다고 할 수도 없었다. 만약 그때 나 혼자 돈을 내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들은 나를 고문관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 말하는 왕따처럼 말이다. 이 얼마나 웃지 못할 비극(?)이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계속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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