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 대한 추억 하나, 둘, 셋

등록 2004.02.07 12:14수정 2004.02.0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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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 대한 추억 하나.


지난 주 주말에는 오래간만에 고모댁에 놀러갔습니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다니는 사촌동생이 밖에서 놀아달라고 야단입니다. 최근에 인라인 스케이트에 한창 재미를 들인 녀석은 늦은밤 고모님 없이 나갈 수 없으니, 나를 대신해 스케이트를 타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녀석의 극성에 할 수 없이 30분만 놀다 오겠다고 허락을 받고 나옵니다.
나오자 마자, 녀석은 신이 났습니다. 내가 뒤에 오건 말건 후다닥 계단을 내려와 이내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습니다. 이리저리 잘 탑니다.간혹 넘어지기도 하지만 생각외로 제법 탑니다. 녀석이 신나게 타는 모습에 특별히 할 것도 없지만 저도 즐겁습니다.

'형아, 저기 별들이 나 따라 온다'
'응? 뭔소리야. 여기 내 위에 있는데~'
'아니 아니, 봐봐 내가 가는데로 별들이 따라 오잖아'

녀석이 신기하게 이리저리 방향을 틀면서 달립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저만할 때, 늦은 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친구들과 별들을 보며 달렸습니다. 내가 달리면서 "별이 날 따라온다" 라고 그러면, 다른 친구가 반대 방향으로 뛰며, "아니, 나를 따라오는데?" 그러면, 또 다른 친구가 다른 방향을 뛰며 "둘 다 아냐, 날 따라오잖아?" 라고 서로들 우기며 달리기가 시작됩니다.

또, 별을 두고 누가 더 빨리 달리나 시합도 하고, 그렇게 달리다 지치면, 바닥에 앉아 빛나는 별을 보며, 흐르는 땀을 식혔습니다. 점퍼 소매에 흘린 코가 번질번질대던 그 어린시절 늦은 밤. 특별한 놀이 없이 별만 있으면 우리들은 이유없이 즐거웠습니다.


별에 대한 추억 둘.

밤늦게 12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고3 시절. 집에 들어가면, 입시 스트레스와 엄청난 수업량에 지쳐 툭하면 씻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곤 했습니다.


유난히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신성적보다 수능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적이 떨어져, 다가오는 수능시험 날짜에 저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초조하고 불안해했습니다.

그렇게 불안하고 마음이 울적할 때면, 교회 친구들과 함께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특히나, 수능날짜 한달정도를 남겨 놓고, 학교에서 끝내 준 때부터는 매일 방과후에 교회를 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교회 독서방에서 공부를 하다 11시부터 12시 사이에 기도모임을 가졌는데, 기도회가 끝나고 나면, 집 방향이 같은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 집에 데려다 줍니다.

보통 걸어서 15~20분 정도 거리였는데, 그 짧은 시간은 서로에 대한 고민거리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00대학을 가고 싶은데 성적이 안되서 힘들다, 몇점만 더 나와 준다면 더 좋은 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성적이 계속 떨어져 어디로 가야할 지 고민이다 등등.
서로가 대학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는 고3이라는 위치에서,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기에 기도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서로가 충분히 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회를 마치고 가는 늦은밤에 한 친구가 말을 건넵니다.

"너희들 떨어지는 별똥별에 대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얘기 알지?"
"응 들어본 것 같다. 근데 왜?"
"왜긴 왜야,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소원 빌으라고, 아차하는 순간에 떨어지니까 빨리 빌어야 돼."'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고 소원을 빈다고 해서,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을 갈 수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학기초보다 성적이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 제가 가고 싶은 대학의 지원점수와는 큰 차이를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후 '해봤자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떨어지는 별똥별에 행운을 걸어봅니다. 사실 고3때까지 제대로 떨어지는 별똥별 한번 보지 못했습니다. 꼭 수능시험전에 별똥별을 봐서 소원을 빌고, 제 소원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별똥별을 보기 위한 저의 노력은 필사적이었습니다. 툭하면 밤하늘의 별을 보며 멍상(?)에 빠졌고, 떨어지는 별에 빌 소원들을 머리에 정리하느라 정신도 없었습니다.

시험 3일전이었습니다. 친구들보다 한 시간정도 늦게 교회에 도착했는데, 독서방에 웬일로 아무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전처럼 밤에 농구를 하러 간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들어, 농구코트를 가다 순간 앞산 먼발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전 바로 눈을 꼭 감고, 두손을 모아, 드디어 제가 바라던 소원을 빌었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 모두 원하는 대학에 붙게 해주세요'

그 후에 대학진학에 실패한 친구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대학에 진학했고, 그 때 떨어진 별똥별이 저의 소원을 들어 준 것 같아 고마웠습니다.

별에 대한 추억 셋.

지금은 제가 잊어버려 그 별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겨울이 되면 오리온 자리 근처에 친구가 이름 붙여준 제 별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어서 군부대에 살았던 제 친구 성우는 남다른 감수성으로 낭만이 있었던 친구였습니다. 비록 반은 달랐지만, 같은 학교, 같은 교회, 같은 학원을 중학교 내내 함께 다녔고, 남자 아이들 사이에선 드물게도 서로에게 수시로 편지와 카드를 나눴습니다. 방학이 되자. 서로의 집에 놀러가 밤늦게 까지 같이 있는 시간은 더 많았습니다.

"정영아, 저게 내 별이야."
"어 그래? 넌 니 별도 있어?"
"당연하지, 정영이 니 것도 만들어 줄까? 음. 저걸로 하자. 저게 이제부터 정영이 니 별이야 알았지?"
"근데, 자기 별은 왜 만드는 거야?"
'응 너랑 나랑 나중에 멀리 떨어져 보지 못하면, 서로 기억하라고 만드는 거야'

지금은 오리온 자리 근처였던 것밖에 생각이 안 나지만, 별빛이 크지 않고, 자세히 지켜 봐야만 보였던 작은 별이었습니다. 그 작은별은 이렇게 차가운 겨울밤에 유난히 반짝거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군대를 가면서 연락이 끊기게 돼,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사는지도 소문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친구의 별을 기억합니다. 오리온 자리에 가장 큰 별이 그 친구 별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크게 빛나는 자기별처럼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촌동생과 나온 차가운 겨울밤에 저는 저도 모르게 별과 함께 아름다운 옛 시절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버티기 힘든 스트레스로 매사 불평 불만이었는데, 저의 무뎌진 가슴에 어린 날의 따뜻한 웃음과 추억을 깨워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개구졌던 유년시절의 순수와 사춘기 시절의 작은 우정과 이별. 왜 그토록 잊고 살았는지, 변하는 세상 보단 제가 많이 변한 것 같아 가슴이 무거워 옵니다.

별 하나만 있어도 즐거웠고, 별 하나로 그 때 그 시절의 서로를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별을 올려다 보며 사랑했고 행복했던 생각으로 미소와 쓴웃음을 번갈아 보며 지난 날을 추억해 봅니다.

잃어버린 제 별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지만, 밤하늘에 수없이 박힌 별들에서 제 별을 찾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추억의 일부가 저의 소중한 삶의 일부이기에 내일 밤하늘에도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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