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은 국민이 아닌가?

[주장]<매일경제> FTA 비준에 혈안…살농 논조 문제

등록 2004.02.10 13:32수정 2004.02.1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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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2월 10일자 1면.
<매경> 2월 10일자 1면.유성호
<매일경제>가 한·칠레간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처리 연기와 관련해 '국민'이란 이름을 앞세워 철저히 '농민'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매경>은 또 비준안을 거부한 농촌지역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들을 '농민당'이라고 조롱하는가 하면 '국회의원들 국민 또 속였다(10일자 1면 머릿기사)'라며 국민의 대표격인 국회를 무시하는 오만함을 보였다.

<매경>의 이같은 논조에는 몇 가지 자기 모순이 내포돼 있다.

가장 먼저 농촌출신 의원들이 의식한 것은 '농민'의 민의다. 민의는 총선 때 곧 표로 발산된다. 농촌출신 의원들이 비준안을 반대했다 하더라도 이는 농민들의 민의를 충분히 반영한 것이지, 표밭에만 연연한 것이라고 매도한다면 농민의 민의를 무시하는 처사가 된다. 농촌출신 의원들이 표를 의식하는 것은 농민의 심판을 두려워 하는 당연한 행동인 것이다.

또 <매경>의 10일자 1면 머릿기사 제목대로라면 대한민국 국민에는 농민이 포함되지 않는 엉뚱한 논리가 성립된다. 기사 내용에는 제목과 같이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어떻게 속였는지에 대한 속시원한 답이 어디에도 없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농촌출신 의원들은 분명히 농민들의 민의를 지키기 위해 '농민당'이란 비아냥을 무릅쓰고 국회 단상에 몰려들었다.

대한민국 국민 속에 농민이 포함돼 있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만한 <매경>이 왜 이런 제목으로 국민의 이름을 팔았는지 황당할 뿐이다. 농민은 국민도 아니냐는 지적을 한다면 <매경>은 여기서 말한 '국민'은 대다수 국민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결정에 의해 주도된다지만 FTA 관련 국민의 민의는 정확히 수렴되지 않은 상황이다.

<매경>의 자매 주간지 <매경이코노미>가 최근 총선 출마자 가운데 경제전문가(200명 설문에 64명 응답)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94%(60명)가 비준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매경이코노미>는 이같은 결과를 '기대했던 대로'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입맛에 맞는, 찬성표를 던질 것만 같은 후보자에게 설문을 했다고 스스로 자백하는 꼴이다.

그러나 정작 <매경>은 이같은 첨예한 사안에 대해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그 흔한 설문조사 한번 실시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설문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한·칠레 문제가 급박하게 돌아갔던 지난해 6월에는 뜬금없이 '일본은 지금 한일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원하고 있습니다. 한일간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란 질문을 던졌다.

그래놓고 이번 비준안 처리 연기에 대해 '국민을 또 속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매경>이 이토록 철저히 기업과 정부 편에 서 있는 것은 기업이 잘돼야 광고수익이 늘어날 것이란 단세포적 사고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소득 2만불, FTA 체결, 선진국, 지식기반 사회…. 다 좋은 소리다. 이는 <매경>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많은 지식인들의 지식 부가창출 노력과 축산농어민들의 먹을거리를 위한 땀이 함께 어우러져야 국가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 <매경> 역시 이를 모른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매경>은 사시(社是)에서도 '부의 균형화 실현'을 부르짖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더 이상 교묘하게 국민의 이름을 앞세워 농민을 죽이는 '살농(殺農)' 행위에 앞장서지 않았으면 한다.

FTA 체결이 부인할 수 없는 세계적인 대세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농민들이 이토록 반발하는 것은 '농업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는 농업기반의 부재, 즉 생존권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수많은 정부의 대책이 나왔지만 농민들은 실효성을 의심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불신감의 표출이다. 한·칠레뿐만 아니라 FTA는 언젠가는 많은 국가와 체결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중요한 것은 농민들을 안심시키고 체감할 수 있는 안정적 농업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매경>은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 시급하다.

농민은 분명히 이 땅의 국민인 동시에 '천하의 근본(農者天下之大本)'이다. 농업도 지식경영이고 농민도 지식인이다. 책상에 앉아서 지식인인양 쓰는 몇자의 글로 더 이상 농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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