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44

등록 2004.02.16 09:30수정 2004.02.16 11:02
0
원고료로 응원
"그러니까 군사들 행보에 약간의 조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한데 강 장수 그 전에 내가 먼저 할말이 있소."

간 장수는 긴장했다. 자기는 군사들 행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전에 할 이야기란 무엇인가? 에인이 생도 같은 눈으로 강 장수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부탁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정벌지에 도착할 때까지 강 장수는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오."
"무엇을 말입니까?"
"아시다시피 나에겐 이런 정벌이 처음이지 않소? 그럼에도 문제는 모든 지휘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오."
"......"

"한데 장수들의 익은 지혜와 고견도 듣거나 배우지 않고 무작정 지휘권만 휘두른다면 그 전투가 어떻게 되겠소. 그러니 부디 나로 하여금 지혜로운 판단과 현명한 지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장군께서는 지금도 잘 하고 계십니다."

강 장수가 얼른 대답했다. 사실 첫 원정길임에도 에인은 여태 장수들과 보조를 잘 맞추어왔다. 에인이 계속했다.

"아버님은 말씀하셨소. 최고의 장수들과 함께 가는 것이고, 또 그들이 알아서 다 처리해줄 것이니 큰 부담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구요. 하지만 저는 상징이나 허수아비가 되려고 이 길에 나선 것이 아닙니다."
"허수아비라니요?"
"알아두셔야 할 것은 적장의 목은 반드시 내 손으로 베야 한다는 것이오."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그러니까 나는 이 정벌의 전략을 제대로 알고 대처하는 그런 장군이 되고 싶다는 말이오."

강 장수는 은근히 놀랐다. 물론 장군이라면 적장의 목은 스스로 베어야 한다. 그런 각오를 했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에인은 처음인데다 아직 어리지 않은가. 그럼에도 자신의 위치를, 그것도 제대로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은 그 심지가 남다르다는 증거다. 강 장수는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저희들도 힘닿는 데까지 충정을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아까 하시겠다는 이야기로 돌아가지요. 그러니까 먼저 군사들 행보를 조정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예, 장군님도 이미 파악하셨듯이 군사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속보가 아니라 앞으로 있을 전투입니다."
"그렇지요."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신경을 써야 할 문제는 군사들의 체력유지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
"충분한 수면시간과 넉넉한 식사 제공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넉넉히 먹이지 않았습니까?"
"좀 아껴온 편이지요. 왜냐하면 갈 길이 워낙 멀고 또 중간에서 식량 구입이 용이할지도 알 수도 없어 그렇게 했습니다."


"식량구입 문제라면 제후가 있지 않습니까? 그에겐 이 길이 자기 고향 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식량을 구해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점심도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간단한 양이라도 먹으면서 좀 쉬게 하고…."
"행군도중 목말라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은 장수가 끼어들었다. 그 말에는 책임선인이 대답했다.
"여태까지는 마차마다 군량이 꽉 차서 그러지 못했습니다만, 이제부터는 물도 실을 작정이었습니다."

책임선인의 말은 그간 군사들이 식량을 축냈으니 그 빈 자리에 물을 실으면 된다는 뜻이었다. 모두 그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 장수가 뒷말을 이어 붙였다.

"그리고 가는 도중 짬을 봐서 군사들의 기량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한데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에인이 물었다.

"먼저 자투리 시간에는 장기시합을 여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각자의 숨은 기량이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고 또 그런 관찰이 실전배치 때에 적잖은 참작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겠군요. 하다면 강 장수께서는 그들의 전투 실력을 다 파악하고 있습니까?"
"예, 용기에서는 좀 잔인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만 머리 쓰는 것은 둔한 편이었습니다."
"그럼 도착하기 전까지 저녁마다 간단한 훈련도 겸하는 게 좋겠군요."
"그러지요."

대충 이야기도 끝나갈 때 안내선인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눈보라가 거쳤습니다. 사방이 거짓말 같이 잔잔해졌습니다."
"그래요?"

모두 밖으로 나가보았다. 정말로 눈도 바람도 그쳐 있었다. 에인이 강 장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아예 여기서 야영까지 하는 게 어떻소? 그 사이에 씨름대회나 뭐 그런 것도 열어보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행군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 근처에는 물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또 너무 벌판이라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군요. 그럼 강 장수, 어서 출발합시다."

강 장수는 아장들을 불러 모아 곧 출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