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콩 지키는 '콩 트러스트 운동' 아시나요?

[일본 현지보고] 일본의 콩 트러스트 수확제를 경험하며

등록 2004.02.11 16:08수정 2004.02.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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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중순 경, 기다리던 콩 한 자루가 드디어 도착했다. 지난해 봄에 생활협동조합(이후 ‘생협’)을 통해 콩 트러스트 운동을 하는 인근 콩밭에 한 구좌를 계약했다.


이 콩은 그곳에서 수확한 무농약ㆍ무화학비료의 국산콩 2.8kg을 배당받은 것이다. 지난해 일본의 여름은 예년보다 온도가 낮아 농작물 작황에 피해가 많았다. 그런 영향으로 그 전에 비해 배당량이 줄었다.

a 2003년 수확한 무농약, 무화학비료의 국산콩 2.8kg

2003년 수확한 무농약, 무화학비료의 국산콩 2.8kg ⓒ 장영미

콩 트러스트 운동은 귀중한 문화유산이나 자연환경을 국민들이 만든 기금으로 사들이거나 기증을 받아 보전하는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모방이다. 즉, 자국 농산물을 보호, 보전하자는 의미에서 소비자가 출자금을 모아 생산자에게 국산콩 재배를 위탁하고, 생산에 함께 참여하면서 그곳에서 수확한 콩을 배당받는 형식의 운동을 말한다.

이는 비단 국산콩과 종자를 보전하자는 의미를 넘어 환경과 건강을 염두해 두고 무농약ㆍ무화학 비료로 재배하는 경우가 많아 날씨 등 자연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콩 트러스트 운동이 지향하는 것 중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교류를 통해 농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자는 것도 있다. 그래서 콩 농사가 진행되는 동안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여러가지 행사도 마련된다. 농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비롯해, 두부만들기, 된장 만들기, 콩 요리 소개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교류한다.

이렇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남을 거듭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고, 함께 건강한 먹거리를 지키는 일을 도모한다. 그러다보면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이며, 그것이 경제논리만으로는 풀 수없는 문제라는 인식을 자연히 공유하게 된다.


내가 가입한 생협에서는 지난달 31일에 콩 트러스트에 참여한 생산자와 소비자들을 위한 ‘수확제’를 열었다. 딸아이는 ‘콩 틀으러 간다(?)’며 신이 났다. 콩 트러스트 수확제에 간다고 했더니 제게는 그렇게 들렸나 보다.

이곳의 콩 트러스트 운동은 2003년에 5년을 맞았다. 이번 행사 내용은 수확제와 일본된장 담그기로 나뉘었고, 참가신청도 따로 받았다. 오전에 열린 ‘수확제’에서는 생산자와의 만남, 콩과 관련한 퀴즈대회, 콩 고르기 게임, 콩 요리 시식회가 열렸고, 오후에 ‘일본 된장 담그기’를 했다.


나는 오전의 수확제에만 참가신청을 했고, 일본된장 담그기는 구경만 하기로 했다. 수확제에는 일반 참가자가 매우 적었다. 생산자 6명과 생협의 평조합원 5명 그리고 생협의 임원들이 7, 8명 참가한 정도였다. 좌탁을 길게 붙여 3줄로 만들고, 생산자, 조합원 등이 골고루 나누어 앉았다. 탁자 위엔 콩비지로 만든 쿠키와 브라우니, 일본식 절인 야채(쓰케모노)가 놓여있었다.

a 콩비지로 만든 쿠키와 브라우니

콩비지로 만든 쿠키와 브라우니 ⓒ 장영미

내게 무농약ㆍ무화학 비료로 재배한 건강한 먹거리를 보내기위해 땅을 고르고, 유전자 조작이 되지 않은 건강한 씨앗을 뿌려, 벌레 를 잡고, 태풍에 쓰러진 줄기를 일으켜 세우며, 사슴과 멧돼지, 원숭이를 쫓느라 노심초사했을 반백의 사내가 내 옆에 앉았다.

역시 반백인 수염에 가려진 그을린 얼굴이 멋스럽게 보였지만 그의 손끝은 갈라졌고, 손톱 밑엔 까만 흙때가 끼어있는 게 영낙없는 농부의 손이었다.

생산자들의 연령은 40대에서 60대까지 두루 걸쳐 있었고, 그 중 한명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 앞에 앉았는데, 한국과 한국 음식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었다. 몇년 전에는 책을 보고 직접 고추장도 담가보았다고 한다.

그녀가 살고있는 타까네쵸가 한국의 포천군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 매년 포천군에서 사람들이 온다고도 했다. 또 복숭아를 재배한다는 아줌마 등과 여러가지 농사 얘기, 직접 담그는 장 등 실험적인 얘기 등을 곁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생산자들을 만나고 보니 신뢰감이 들고, 고작 2.8kg이었지만 내가 받은 콩이 참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시장이나 수퍼마켓에서 사들고 오던 그 콩과는 질적으로 다른 가치가 느껴졌다. ‘유기재배국산콩’이라고 적힌 글귀를 반신반의하며 집어들던 때와는 비교할 수없는 신뢰감이 들었다.

비록 껍질 한 쪽이 거무튀튀하게 마른 것이 들어있긴해도, 알갱이가 작고 쭈글쭈글한 것이 눈에 띄긴해도 그게 썩은 것만 아니라면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테이블별로 3팀으로 나누어 진행된 '콩에 관한 퀴즈대회'에서는 일본의 한해 콩 소비량이 500만톤에 이르나 자급율은 5%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보니 미국에 이어 중국에서 주로 수입을 하게 된다는 사실도.

뿐만 아니라 세계 콩 생산량 1위는 미국, 2위는 브라질이라는 것, 콩으로 만든 가공품들의 종류와 요리 등 많은 것을 새롭게 접할 수 있었다. 콩과 관련된 요리를 다수 적는 코너에서는 내가 한국의 ‘콩비지 김치찌개’를 소개하기도 했다.

a 콩 트러스트 수확제 풍경 - 콩과 관련한 퀴즈대회

콩 트러스트 수확제 풍경 - 콩과 관련한 퀴즈대회 ⓒ 장영미

콩 고르기 게임도 재미있었지만 행사 마지막을 장식한 콩 요리 시식하기가 제일 맘에 들었다. 커다란 냄비에 두유와 비지, 두부, 온갖 야채와 해물을 큼직하게 썰어 넣어 끓인 일본식 찌개요리(나베)가 나왔다. 일본인들이 추운 겨울을 이기는 요리로써 즐겨먹는 것이 이런 식의 나베요리이다.

탁자에 둘러앉아 휴대용 풍로 위에서 부글부글 끓는 찌개를 덜어 먹으면 온몸이 따뜻해지고 땀이 흐른다. 두유로 끓인 것은 처음 먹어봤는데 부드럽고 구수했다. 무엇보다 영양만점의 건강식이라는 게 맘에 들었다.

찌개그릇과 접시, 젓가락, 주먹밥은 각자가 준비해 갔고, 찌개와 쓰케모노, 쿠키 및 음료는 주최 측에서 준비해주었다. 식사 중간에는 된장 담그기에 쓸 갓 삶은 콩과 ‘오카라’라는 콩비지 맛을 볼 수 있었다. 또 콩비지로 속을 만든 구운 만두도 나왔는데 카레향이 향긋한 것이 꽤 맛있었다.

a 두유, 두부, 비지, 각종 야채와 해물이 든 일본식 찌개 (나베)

두유, 두부, 비지, 각종 야채와 해물이 든 일본식 찌개 (나베) ⓒ 장영미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일본된장 담그기에 참가할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수확제보다 된장 담그기가 인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할머니들, 중년 부부, 아주머니들, 젊은 부부, 새댁, 초등학교 아이들 등 대략 20명 정도가 참가했다.

수퍼마켓에서 잘 포장된 일본 된장만 보았는데, 실제로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서 구경을 하기로 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매년 참가하는 이들인 듯 서로 안면도 있어 보였고, 일의 순서도 잘 알고 있어 일사분란 하게 움직였다.

된장 담그기는 한시간 반 가량 진행되었는데, 우리네 된장 만들기에 비해 훨씬 간단한 것 같았다. 전날 불려 놓은 콩을 커다란 가마솥에 넣어 물러질 정도로 삶는다(시간관계상 여기까지는 생협 직원이 미리 준비했다). 삶은 콩은 분쇄기에 넣어 갈아 놓는다. ‘코지’라는 누룩(밀이나 쌀, 보리, 현미 등의 곡식을 굵게 갈아 반죽하여 띄운 것)을 잘게 부순 후 갈은 콩, 소금과 함께 버무린다. 단지에 틈이 생기지않도록 꼭꼭 눌러 담아 6개월에서 1년간 삭힌 후 먹는다.

젊은 사람들은 대개 1kg정도, 중장년층은 7∼14kg정도의 된장을 담아 갔다. 이렇게 직접 담그는 경우 외에도 콩 생산자에게 위탁해서 담그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새로 신청을 받기도 하고, 작년에 위탁했던 된장을 받아가라는 안내문이 돌기도 했다.

a 일본 된장 담그기 - 불린 콩을 분마기에 갈고 있는 어린이

일본 된장 담그기 - 불린 콩을 분마기에 갈고 있는 어린이 ⓒ 장영미


a 젊은 부부는 1kg의 된장을 담갔다.

젊은 부부는 1kg의 된장을 담갔다. ⓒ 장영미

광우병, 조류독감 등의 새로운 질병은 그것의 확산에 대한 공포뿐만 아니라, 우리 식단에도 커다란 위협을 가하고 있다. 또 유전자조작으로 재배된 콩과 옥수수 등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식품들이 우리의 먹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 화학비료, 농약 만이 아니라 전에 없던 새로운 것들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이 전쟁만은 아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눈 먼 소비자인 나는 안전한 식품을 찾아 두리번거리지만, 실제로 어떤 것이 안전한 식품인지 구별해낼 능력이 없다. 이미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는 멀어질대로 멀어져서 생산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된지 오래다. 생산과정에서 소외된 나는 점점 좋은 먹거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불안감때문에 생협에 가입해 그나마 생산과정에 대한 투명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생산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져 불안감을 덜 수 있었다. 또, 콩 트러스트 운동처럼 생산자와 직접 만나 생산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있으니 안심감도 든다.

안전한 식품을 찾는 소비자의 욕구와 안정적 생산과 수입을 필요로 하는 생산자가 협력할 방법은 없는가? 이번에 콩 트러스트 운동에 참여하면서 그 실험적 대안운동이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갈지 자못 기대가 되었다.

콩 트러스트 운동은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이다. 건강한 먹거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일본에 있는 동안 그것의 진행 방향을 줄곧 따라가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 '콩 트러스트운동'은 콩밭 트러스트운동이라고도 합니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일본 전국적으로 약 60여개소에서 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1구좌는 10평, 4000엔 정도를 내고 계약을 합니다. 생산자와 함께 리스크를 부담하는 형태이므로 매년 작황에 따라 배당받는 콩의 양이 다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운동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직접 참여하고 계신 분들이나 정보가 있으신 분들이 한국내 상황를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콩 트러스트운동'은 콩밭 트러스트운동이라고도 합니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일본 전국적으로 약 60여개소에서 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1구좌는 10평, 4000엔 정도를 내고 계약을 합니다. 생산자와 함께 리스크를 부담하는 형태이므로 매년 작황에 따라 배당받는 콩의 양이 다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운동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직접 참여하고 계신 분들이나 정보가 있으신 분들이 한국내 상황를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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