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사은회 때 '고목나무' 부른 학생

처음 먹어본 그 맛난 웨하스와 작별의 아쉬움

등록 2004.02.12 18:50수정 2004.02.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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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사진 겸 졸업 앨범. 아래 선생님은 가운데가 교장선생님, 왼쪽이 화장실을 '꽃밭'이라 하며 꽃을 가느쳐 주신 교감 선생님, 오른쪽 젊은 분이 담임선생님.
졸업사진 겸 졸업 앨범. 아래 선생님은 가운데가 교장선생님, 왼쪽이 화장실을 '꽃밭'이라 하며 꽃을 가느쳐 주신 교감 선생님, 오른쪽 젊은 분이 담임선생님.김규환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4월이 지나자 교감으로 승진하여 우리 곁을 떠났다. 고영석 선생님이 떠나자 곧 바로 더 젊고 매력 넘치는 선생님이 시골학교로 오셨다. 첫 인상과 헤어질 때의 여운이 깊게 남아 있는 내 마음의 좌표와도 같았던 선생님.


정광명 선생님은 우리가 그간 보았던 선생님과는 달랐다. 빨간 넥타이를 즐겨 매셨던 선생님은 사모님도 교사였다. 그 한 분이 오시게 되자 우린 순한 양이 되었고 차차 공부에 빠져 지낼 수 있었으니 화순북면동국민학교 아이들에겐 커다란 선물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당시 급식이었던 빵이나 건빵 주는 걸 핑계로 평소 키우던 닭이나 염소, 개를 방학 때만 되면 아이들에게 맡겨 놓는 일종의 권력을 행사하기에 급급하였는데 그 선생님은 그런 적이 없이 꿈과 희망만을 남겨주신 분이다.

5학년 4월 무렵 총원이 32명인 담임을 맡으시더니 6학년 졸업할 때까지 우리들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더군다나 나에겐 더 소중한 분이셨다. 몸을 심하게 다쳐 학교를 빼먹는 일이 잦아져도 선생님은 내가 얼른 낫기만을 바라며 오랜 동안 기다려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도우셨다.

졸업이 다가오자 나를 비롯한 서른 두 명의 학생들 근심은 커갔다. 온화하고 매 한번 들지 않으셨던 그 분과 헤어지면 무슨 낙으로 살까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정이 들 만큼 들었던 탓에 중학교에 가도 그 분 같이 넉넉하고 인자한 선생님은 만나기 힘들 거라는 불안감이 아이들을 감쌌다.

내가 5학년 때 자장면을 맨 먼저 사주시고, 고교 2학년 추석 초등학교 동창회가 끝나갈 무렵 명절날인데도 광주에서 3시간이나 걸려 그 먼 거리를 달려오신 분이다.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졸업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2월 초 어느 날이었다. 사은회(謝恩會)가 뭔지도 모르던 때 사은회를 준비하신다고 가정 통신문이 하나 집으로 갔던 모양이다. 미리 1000원씩을 걷어 장을 봐 온 걸 까마득하게 모르고 철없이 지냈다.

그날은 평소보다 청소가 먼저 시작되었다. 나무판으로 된 교실 바닥을 마른걸레로 닦고 양초를 칠하여 소주병, 음료수병 꽁무니를 득득 문질러 여간 조심하지 않고는 미끄러져 넘어지기 쉬울 정도로 반들반들 광을 내도록 하셨다. 그게 선생님과 작별을 나누는 자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책상을 붙이고 하얀 종이가 깔렸다. 생전 처음 보는 과자와 음료수가 차려졌다. 물엿과 땅콩을 섞어 버무린 '맛동산', 바삭바삭 즐거운 소리를 선사하는 '새우깡', 소금이 씹히도록 짭짤한 '티나크래커'에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는 '웨하스' 까지. 파란 곰팡이 탱탱 불은 건빵과 빵을 얻어먹었던 우리에겐 최고의 파티였다. 여기에 '환타'와 '킨사이다'도 놓여 있었다.

선생님 말씀이 먼저 이어졌다.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과 나는 2년 가까이 즐겁게 잘 보냈습니다. 정들었던 우리 북면동국민학교를 우린 며칠 있으면 떠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누구나 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게 선생님의 바람인데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합니다. 우리 헤어져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건강하게 지냅시다. 나도 여러분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몰라 과자를 마구 먹어대는 아이, 글썽거리는 아이, 흐느끼는 아이 제 각각이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가 중학교에 가도 맨날 찾아오면 되잖어요."
"그래 너희들이 찾아오면 언제고 반가이 맞을 것이다."
"걱정 마세요. 우리가 선생님을 잊을까봐서 그러신 것 같은데 염려 붙들어 매세요."

몇 몇 아이들은 과자 부스러기에 눈물을 흘려 놓았다. 과자 먹는 것도 잊고 선생님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헤어짐은 익숙하지가 않았다.

"자자, 우리 꼬맹이들 노래나 한 자리씩 해봐라. 누구?"
"저요, 저요."
"그래 그럼 승호가 먼저 해봐, 뭔 노래?"

승호는 '학교 종이'를, 공부를 제일 잘 했던 육남이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 나무하느라 손이 부르튼 영임이도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래도 흥이 나지 않았다.

"자, 이번엔 누구?"
"선상님 지가 한번 해볼랍니다."

동네 아이들끼리 학교 안에 있던 감나무에 올라 사진 한장 마저 찍었습니다. 맨 왼쪽에 혼자 삐져 나온 이가 저랍니다.
동네 아이들끼리 학교 안에 있던 감나무에 올라 사진 한장 마저 찍었습니다. 맨 왼쪽에 혼자 삐져 나온 이가 저랍니다.김규환
나는 벌떡 일어서서 "저 산마루 깊은 밤~ 산새들도 잠들고~ 우뚝 선 고목이 달빛 아래 외롭네~"로 시작하여 고음으로 "옛-사람 간 곳 없다~ 올 리도 없지마는 만날 날 기다리면 오늘이 또 간다~ 가고 또 가면 기다린 그날이 오늘일 것 같구나"로 낮춘 다음 다시 저음으로 "저 산마루 깊은 밤 산새들도 잠들고 우뚝 선 고목이 달빛 아래 외롭네"로 끝맺었다.

전 구절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장욱조의 <고목나무>를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내가 끝까지 불러댄 것이다.

아버지의 라디오의 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자신들과는 달리 이미 선진문화를 받아들인 내가 부러웠던 탓이다. 선생님도 "허허" 웃으시더니 아이들을 마저 노래시키고 마지막 합창을 서두르셨다.

선생님은 몇 번 연습을 통해 익숙해졌던 노래를 주문하셨다. 그럼 우리 <석별의 정>을 같이 불러보자.

"하나 둘 셋 넷!"

"날이 밝으면 멀리 떠날 사랑하는 님과 함께
마지막 정을 나누노라면 기쁨보다 슬픔이 앞서.
떠나갈 사 이별이란 야속하기 짝이 없고
기다릴 사 적막함이란 애닲기가 한이 없네.

일년 사시가 바뀌어도 동서남북이 바뀌어도
우리 궂게 맺은 언약은 영원토록 변함없으리.
떠나갈 사 이별이란 야속하기 짝이 없고
기다릴 사 적막함이란 애닲기가 한이 없네."


순진무구, 천진난만했던 시골 촌놈들끼리 어깨를 걸고 부르는 노래 때문에 그 맨들맨들 하던 바닥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맛있던 과자도 무척이나 많이 남았던 사은회는 그렇게 끝이 났다.

사은회가 끝나고 선생님 세 분과 학생 32명이 '북면동국민학교 제 15회 졸업기념' 이라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써서 들고 졸업사진 한 장 찍는 걸로 아름다웠던 초등학교 수업은 모두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그 뒤로 '되바라진 놈'이라는 이야기를 가끔 듣고 살아야했다. '고목나무'라는 노래를 부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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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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