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의 분깃이 있다"

양지무료복지원 사람들

등록 2004.02.13 18:24수정 2004.02.1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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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복지원 입구의 예쁜 간판. 김 원장의 딸이 만들어 준 것이라 한다.
양지복지원 입구의 예쁜 간판. 김 원장의 딸이 만들어 준 것이라 한다.한성희
오갈 데 없어 지친 사람들이 깃을 드리우고 포근하게 쉴 둥지를 트는 곳이 양지무료복지원이다.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 산 기슭에 자리잡은 양지복지원은 노인들과 지체장애우인 정상연(16)군과 2명의 초교생이 김옥선(55) 원장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30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중 세 명이 치매 노인환자다.

미인가 시설인 양지복지원의 겨울나기는 계속되는 경기불황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

“그렇지만 작은 정성으로 조용히 도와주는 분들이 뿌리는 사랑의 씨앗이 있어 꾸려나가고 있습니더. “

10여년 전, 김 원장은 혼자 몸으로 키운 자식들을 대학에 보낸 후 뜻한 바가 있어 집을 팔고 사재를 털어 파주시 법원읍에 땅을 마련하고 복지원을 지었다. 그리고 오갈 데 없는 어르신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신앙생활을 하다 결심한 것이라고 할뿐 더 이상 밝히려 들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마다 짐승은 짐승마다 저마다의 분깃이 있습니더.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양지무료복지원
양지무료복지원한성희
아는 사람들이 볼까봐 싫다며 사진 찍는 것을 극구 거부하며 장작을 패다 말고 인터뷰에 응한 김 원장의 복장은 허름한 티셔츠에 작업복 바지 차림이다. 노인들에게 친정엄마 대하듯 스스럼 없이 소리치는 김 원장의 씩씩한 경상도 사투리는 영락없는 경상도아줌마다.

작은 몸으로 부지런하게 청소와 빨래, 장작패기 등 궂은 일을 손수하는 김 원장의 정성으로 복지원은 항상 깨끗하며 이곳에서 지내는 노인들의 차림도 깔끔했다.


“지는예, 지저분한 꼴을 못봐서 어디 갔다가 밤늦게 돌아와도 청소를 다해야 직성이 풀립니더.”

지난 한 달 새에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시고 10여 명의 식구가 늘어났다. 받아들이는 기준이 뭐냐고 묻자 주민등록증만 확인되면 누구든 묻지 않고 복지원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는 것은 노인들이 질병으로 병원에 갈 때 의료보험증을 만들기 위한 것이고 또 돌아가실 경우의 법적 절차 때문이다. 의료보험비를 내는 것도 물론 김 원장의 몫이다.

돌아가신 노인들을 위해 지난 해 양지원 뒤에 납골당을 마련한 김 원장은 4백만원으로 시작해 2500만원이 들어간 공사를 해낸 것이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 눈치다.

“납골당을 마련하고 나니 어르신들이 너무너무 좋아하면서 편안하다고 하데여.”

이 모든 것을 하나님과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공으로 돌리며 불가능한 것을 이뤄내는 사랑들이 있어서 힘들지만 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납골당
납골당한성희
최고령 이장순(96) 할머니는 이곳에 온 지 3년째다. 석달도 못 살 것이라는 주위의 걱정을 들을만큼 병으로 몸을 가누지 못했지만 지금은 귀가 좀 어두운 것을 빼곤 건강하게 지낸다.

“아이들을 더 받아들일 예정입니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주들이 있으니까 분위기가 밝아졌고 기운도 나는 거 같심더.”

한 달에 쌀을 세 가마 소비할 정도의 식솔을 거느린 김 원장의 식구 욕심은 끝이 없다.

“지가예, 몸은 이래 작아도 통이 큽니더. 그래서 첨부터 아예 집도 크게 지었습니더.”

저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부진런하게 움직이는 김 원장의 목소리는 기운이 펄펄 난다.

“여름에도 방을 항상 따뜻하게 해야 합니더. 노인들이라서 추위를 많이 타요."

심야전기를 난방으로 쓰는 한 달 전기세가 겨울엔 60여만원 여름엔 30여만원에 이른다.가계부는 항상 마이너스지만 신기한 것은 빚은 지지않는 것이라며 허허 웃음을 짓는다. 무료로 약을 보내주는 친구와 적은 돈을 몰래 놓고 가는 독지가들이 진짜 도와주는 사람들이라며 김 원장은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다. 근처 낚시터에 왔다가 들러서 성금을 내놓고 가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적은 월급으로 운전과 궂은 일까지 도맡아 해주는 기사 아저씨와 밥짓기와 어르신 돌보기 등을 해주는 아줌마 2명을 포함해 한 달에 인건비만 200만원이 나간다.

“적은 월급으로 봉사해주는 거나 다름 없습니더. 항상 고맙지요.”

양지복지원 식구들
양지복지원 식구들한성희
휠체어에 가누지 못하는 몸을 의지하고 있는 정상연군의 맑은 미소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머니 활아버지들과 오손도손 살아가기 위해, 먼지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남은 장작을 마저 패려고 서둘러 일어서는 김 원장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씩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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