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의 백미를 보여준 폴리 토인비

저임금 노동자, 청소원, 잡역부되어 기사 작성...빈곤층이 겪는 삶 생생히 전달

등록 2004.02.15 03:12수정 2004.02.1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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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폴리 토인비

폴리 토인비

최근 <거세된 희망>이라는 제목에 부제목이 '죽어라 일해도 살 수가 없는 사람들, 그 빈곤의 경제 현장을 가다'인 책이 번역되었다. 커다란 목장갑이 표지 전면에 있는 이 책 표지는 무언지 모를 무거움과 답답함이 느껴진다. 저임금 노동자와 최저 빈곤층의 생활을 기자 자신이 실제 체험한 대로 적고 있어서일까?

이 책의 지은이는 영국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자 BBC에서 사회분야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언론인 폴리 토인비다. 영국에서 <힘든 일 Hard Work>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그녀의 책 <거세된 희망>은 영국의 저임금 노동자와 빈곤을 다루고 있다.

언론인이 다루는 노동문제라 해도 별반 다를 바 없지만 탐사보도의 백미를 보여주는 그녀의 취재방식은 우리가 지금껏 보고 들은 현실을 깨뜨리고도 남음이 있다.

성공한 저널리스트

폴리 토인비는 1946년 영국 잉글랜드 남해안에 있는 와이트 섬에서 태어났으며 배드민턴 학교를 거쳐 세인트 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이후 그녀는 40년 가까이 언론에서 바쁘게 활동해오고 있다.

그녀는 <옵저버>에서 기자와 객원작가로 일하면서 사회에 첫 발을 디뎠다. 이후 미국으로 가 <주간 워싱턴>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1988년부터 1996년까지는 영국 BBC 방송 사회부 편집자로 TV와 라디오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가디언>과 <인디펜던트>의 칼럼니스트로도 일했다. 1998년부터는 <가디언>에서 정치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1992년 이래로 <라디오 타임즈>에서 방송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활발한 활동과 함께 상복도 많아서 1997년에는 조지 오웰상 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신문은 말한다>에게서 그 해의 시사 방송인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그리고 1998년에는 영국 저널리즘 대상에서 올해의 칼럼니스트로, 2003년에는 정치연구협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가 탐사 보도로 쓴 수많은 글들을 보면 그녀의 이러한 이력보다는 그녀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혹은 그녀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에 대해 더 큰 관심이 간다.

위장취업 전문 기자


모든 기자는 탐사보도를 한다. 탐사보도란 개인이나 조직이 숨기고자 하는 중요한 사안을 독자적으로 파헤치는 보도행위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굳이 숨기고자 하는 사안이 아니더라도 잘못 알려지거나 잘 알 수 없는 상황들을 보도해주는 것도 탐사보도에 속한다.

폴리 토인비 역시 탐사보도 전문기자다. 그러나 그녀의 보도 방식은 여성으로서 혹은 한 사람의 아내와 아이의 엄마로서(여성의 한계를 국한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하기 어려운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노동문제를 다루는 저널리스트로서 직접 노동현장에 위장해서 뛰어드는 그녀의 방식은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그녀의 취재 범위는 크게 사회와 정치 분야로 나눌 수 있지만 그녀의 최대 관심은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특히 그녀는 영국 빈곤층의 노동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러한 관심은 그녀가 직접 노동자로 위장하고 그들의 삶 속에 똑같이 뛰어드는 것으로 표출된다. 1970년 그녀는 저널리스트 생활을 막 시작하면서 <노동하는 삶> 이라는 책을 썼다. 그녀는 저널리스트로 보장된 삶을 잠시 접고 노동자 숙소에서 지내면서 유니레버 비누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기도 하고, 루카스의 전기자동차 부품을 조립하기도 하면서 빈곤층들이 겪는 삶의 부조리함을 어떤 왜곡도 없이 전하려고 했다.

a 2003 정치학회협회 상을 수상하는 폴리 토인비

2003 정치학회협회 상을 수상하는 폴리 토인비 ⓒ 영국정치학회협회

이후 30여 년이 지난 2001년. 그녀는 30여 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노동 환경이 얼마나 나아졌는지에 대한 고발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한번 위장 취업을 해 힘든 취재를 다시 시작했다. 그녀는 위장취업을 하는 동안 기자의 삶을 버렸다. 빈곤지역에서 그녀의 집을 마련하고 세간을 들이는 것부터 빌딩 청소원, 병원 잡역부, 텔레마케터를 하며 빈곤층이 지내는 것과 다름없이 생활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그녀의 기사들은 발표할 때마다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파장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고발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03년 2월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래프>와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널리즘은 사회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변화 안에서 움직입니다. 몇몇 글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보같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널리즘은 그러한 인식을 전반적으로 점차 변화시키는 기제로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폴리 토인비의 말처럼 변화를 원하는 글이나 사회의 어두운 곳을 파헤친 방송으로 세상이 한번 변하길 바라는 것은 큰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와 같이 평범해만 보이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진실로 글을 쓰고 방송하는 언론인들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볼 수 있는 사회의 폭이 더 넓어지리라 본다. 그것이 바로 그녀를 현장에서 존재하게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방송문화전문웹진 ZIME(http://zime.fbc.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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