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철마와의 이별

한겨울내내 함께 달렸던 자전거가 친구처럼 정이 들었나 봅니다

등록 2004.02.17 22:18수정 2004.02.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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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평소보다 40분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당분간은 40분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아침운동을 위함도 아니요, 출근시간이 당겨진 것도 아닌 저의 아침 출근길을 책임졌던 철마를 도둑맞았기 때문입니다.


어제부터 따뜻한 바람에 이제 정말 봄이 오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조금 있으면, 봄꽃들이 거리 곳곳에 필 것 같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자전거 출근이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온몸이 꽝꽝 얼어붙었던 출근길은 마치 자전거 하이킹을 떠나듯 평온하고 여유롭습니다.

이렇게 출근하기에도 좋은 날씨에 저는 어제 그간 한겨울을 같이 했던 철마를 잃어버렸습니다. 지난 금요일 부안 투표 자원봉사로 부안을 가게 됐는데, 직장에 받쳐 놓았던 자전거를 분실하게 된 것입니다.

자전거를 잃어버리면서 불편해 지는 것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우선 당장 오늘부터 왕복 40분씩 행군을 시작해야 할 것이 깜깜합니다. 그리고 걸어서 가는 출근길로 아침 기상을 일찍 해야 하는 귀찮음도 만만치 않습니다. 또한 다시 자전거를 구입해야 하는 경제적인 스트레스와 하루아침에 제 것을 도둑맞은 기분은 하루 종일 찝찝합니다.

어떤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리게 되면 속상하고 가슴 아픈 것은 당연하지만, 저의 그 철마는 물건을 차원을 떠난 저의 일부였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전주로 와 두 번의 이사를 하면서, 자전거가 필요하게 된 저는 청주에서 줄곧 탔던 저의 철마를 택배로 받게 됐습니다. 부모님이 직접 포장해 정성들여 보내주신 저의 철마는 정확히 2년 전에 아버지께서 저의 아침운동을 돕기 위해 사주셨습니다. 아침 조깅 코스로 적당한 하천 고수부지가 집 근처에 있었는데, 거기까지 왔다갔다 편하게 하라고 사 주신 아버지의 배려였지요.


아침 조깅 코스뿐만 아니라 자전거는 평상시에도 쓸모가 많았습니다. 집에서 혹시라도 심부름을 시킬 때면 근처 은행, 슈퍼, 철물점 등 조금은 짧은 거리를 신속하게 갈 수 있었고, 목욕탕이나 미용실, 교회 등을 혼자 가는 날이면 저는 매번 철마와 함께 달렸습니다. 그리고 전주에 와서는 저의 한겨울 출근길을 도맡았습니다.

저의 철마는 알루미늄 자체에 스프링 안장과 뒷 쇼바가 완벽히 들어간 승차감 좋은 접이 자전거입니다. 평소 일반자전거에 비해 귀여운 자체와 디자인에, 스피드도 또한 빨리 낼 수 있어 좁은 골목골목을 날쌔게 달려 제가 작은 철마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저의 철마는 그간 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줬으며, 직장에 오면서 운동을 게을리 하는 저에게 운동까지 시켜주는 일석이조의 자전거였습니다. 또한 겨울 내내 꽝꽝 얼거나, 쌓인 눈을 밟아가면서 두 번의 펑크를 이기고 별탈없이 달려줬습니다.

직장에서 4번의 지각은 자전거 출근길이 시작되면서 종지부를 찍었고, 빠른 기동력을 앞세워 지각은커녕 항상 10분 일찍 도착했습니다. 또한, 많은 곳은 아니지만 최소한 집에서 직장까지의 길은 이제 철마 덕에 구석구석 지리를 다 알게 됐습니다.

좀 더 빨리 추운 날씨를 이기고자 지름길을 찾아다녔고, 그간 찾아 다녔던 길이 언제부터인가 구석구석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알게 되었습니다.

철마와의 추억은 출근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헤어져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여자친구의 집을 자주 데려다 주기도 했습니다. 또 그녀가 수업이 끝나면 자전거로 냉큼 달려가 데이트가 끝날 때까지 여자친구를 태우고, 학교 주변을 내내 돌고 했습니다.

때론 중간 중간 펑크가 나서 넘어진 적도 있고,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창피도 당한 적이 있었지만, 저의 철마는 항상 일관된 품을 유지하며 꾸준히 달려왔었습니다.

열쇠를 채워놨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부주의해서 잃어버린 것은 제 책임입니다.

단돈 몇 만원이면 웬만한 중고 자전거나 새 자전거를 구입할 수 있고, 주변의 친구들이 준다는 자전거도 쌔고 쌨습니다. 하지만 썩 내키지도 않고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만 복잡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애견같이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저에게는 철마와의 이별이 친구 하나를 떠나보내듯 바로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가운 겨울 내내 같이 했던 철마가 친구같이 정이 들었나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전 또 다른 자전거를 사고 또 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철마와 같이 비슷한 별명을 붙이고 출근길을 달릴 것입니다. 하지만 더 좋은 자전거를 구입할지라도, 항상 습관처럼 함께했던 철마의 느낌을 잊지 않고 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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