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도둑은 꼬리가 길면 잡힌다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불법 대선 자금 청문회 유감

등록 2004.02.18 06:19수정 2004.02.1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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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은 제 발로 잡히게 되어 있다. 이는 꼬리가 길면 들통이 나고 만다는 말과 같다. 도둑질을 하다 보면 아편쟁이처럼 그 짓을 그만둘 수가 없게 된다. 공으로 돈이 들어오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재물이 굴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공으로 갖는 치를 도둑놈이라고 한다. 도둑놈 중에서 제일 큰 것이 뇌물 도둑일 것이다.


뇌물은 수억, 수십억원마저도 푼돈, 공돈으로 여기게 한다. 그러나 뇌물이 덜미가 잡히게 되면 천하를 흔들 만큼 썩은 냄새를 풍긴다. 그리고 뇌물은 백성의 분통을 터뜨려 온 나라를 벌집처럼 들쑤신다. 들쥐 한마리가 방죽의 둑에 구멍을 내서 온 들판의 곡식을 망치는 경우처럼 뇌물이 성하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권력을 쥐면 칼자루를 잡았다고 여기는 무리일 것이다. 이러한 무리를 세도가라고 한다. 어느 세상이나 세도가가 판을 치면 그 세상은 말로의 길을 걷게 된다. 세도가는 임금에게 떡을 올리고 그 떡에 묻은 고물을 조금 얻어먹는 성은을 입었다고 아양을 떤다. 그런 아양에 놀아난 임금은 그 떡이란 것이 세도가가 파놓은 함정이나 덫인 것을 모르고 받아먹는다. 함정에 빠진 임금은 꼭두각시가 되어 발목을 잡힌다.

박정희 정권 시대는 권력과 경제가 밀착되어 뇌물이란 낱말이 떡값이란 말로 통했다. 떡 사먹으란 돈이 수억, 수십억이었다니 그 배통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본래 나무꾼이 도둑질을 하면 밥 한그릇이지만 원님이 도둑질을 하면 고을을 훔치고 임금이 도둑질을 하면 나라를 통째로 먹는 법이다. 나무꾼은 배가 고파 도둑질을 했으니 하늘이 용서하지만 원님이나 임금이 도둑질을 하면 하늘도 용서하질 않는다. 배부른 도둑질인 까닭이다.

조선 시대로 치면 영의정 바로 밑쯤 되는 신하를 박정희 대통령이 불렀다. 뇌물을 많이 받아서 고속도로 주변 땅을 헐값으로 사들인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어떻게 된 거냐고 그 신하에게 물었다. 그러자 신하가 “각하 떡에 묻은 떡고물을 조금 주워 먹었을 뿐입니다”라고 아첨을 떨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허허 하고 웃고 말았다는 풍자가 백성의 입을 타고 불었다. 바로 뇌물공화국이란 바람이 한참 불었던 4공 시절의 소문이었다.

이런 소문은 천벌이다. 백성의 입이 욕질을 하면 그것이 천벌이다. 뇌물을 떡고물이라고 말한 입은 하늘에 죄를 지었고 떡고물을 먹었다는 치를 용서한 쪽도 하늘의 죄를 범한 것이다. 민주 시대의 하늘은 무엇인가? 바로 백성이다.


떡고물을 먹었다는 그 신하는 위나라에서 군사권을 잡고 실력을 부렸던 왕손가(王孫賈)를 생각나게 한다. 그 왕손가는 안방에서 아첨하느니보다 부엌에서 아첨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았던 도둑이었다. 왕손가가 공자께 “안방의 아첨보다 부엌의 아첨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공자는 허허 하고 웃지 않았다. 어느 아첨이든 천벌을 받는다고 혼 구멍을 내주었다. 천벌은 누가 내리는가? 백성이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뇌물의 도둑은 헛배가 불러 백성을 무서워하지 않다가 결국 백성의 발길에 채여 헛배가 터지게 된다. 당대에 안 되면 후손에 가서라도 발길질을 당한다. 천벌에는 집행유예라는 것이 없다. 백성의 것을 훔치는 도둑질은 천벌감에 틀림없다. 민주시대의 천벌은 백성이 응징한다. 민주 시대의 하늘은 백성인 까닭이다.


지난 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불법대선자금 청문회를 하는 걸 보았다. 무슨 해괴한 짓을 하고 있는가 해서 잠시 보았더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걸핏하면 수십억, 수백억 뇌물 도둑질을 해놓고, 심지어 차떼기 뇌물 수수라는 신조어까지 만든 작자들이 험상한 얼굴을 하고 도둑을 잡겠다고 증인들에게 호통을 친다.

가관이 아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자기들보다 상대방이 더 많은 도둑질을 했다고 그것을 청문하겠다는 것 아닌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큰 뇌물 도둑질을 한 혐의로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여 구속시킨 사람은 빼내고, 새삼스럽게 불법자금의 진상을 조사하겠다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권력을 앞세워 법을 악용하려는 무리들은 정치를 등치는 짓을 하는 것이다. 위정(爲政)은 올바른 정치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릇된 정치가 왜 사라지지 않는가? 검은 돈, 뇌물도둑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위정보다 위정(僞政)을 일삼는 치자가 있다면 그는 정치를 등치는 사람에 불과하며 백성을 속여먹는 사이비에 불과하다. 권력을 치부의 수단쯤으로 여기는 사람이나 권력을 특권으로 여기는 사람도 다 사이비 정치꾼에 불과하다. 언제 뇌물 도둑이 사라지고 사이비 위정자들이 사라지고 백성들이 다리 쭉 펴고 살날이 올 것인가?

입추 지나 우수를 내일 앞두고 자연만은 인간세상의 볼썽사나운 꼴을 아는지 모르는지 환하게 웃고 있다. 봄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른다. 오늘 아침에는 뻐꾸기 우는 소리도 들었다. 희망이라고 한점 보이지 않는 가뭇한 시절, 숲 속에라도 들어가서 청소라도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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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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