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88

화벽의 주인 (6)

등록 2004.02.18 14:16수정 2004.02.1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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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옥이 환한 웃음을 지은 이유는 무언공자가 화벽의 주인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사이였지만 분명히 볼 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발하기를 원할 때 말의 옆구리에 해당되는 부위를 찬다. 어떤 사람은 살살 차지만, 대부분의 경우 말이 깜짝 놀랄 정도로 세게 찬다.

아주 긴박한 순간이거나 급한 출발을 원할 때면 더욱 세게 차게 되는데 이것 때문에 말이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기도 한다.

내공이 심후한 고수일수록 이럴 때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안 그러면 자칫 장파열과 같은 심한 부상으로 인하여 말이 주저앉게 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의 고통에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얼른 출발하고, 빨리 달려서 목적지에 당도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놓고 일단 목적지에 당도하면 그때부터 말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나마 질 좋은 여물이라도 주면 좋은데 그마저도 소홀하기 일쑤이다.


어떤 야박한 인간은 여물은커녕 물도 안 준다.

말 등에 편히 앉아 왔으면서도 제 갈증을 풀기 위한 시원한 물을 들이키면서 정작 죽을힘을 다해 달리느라 지치고 목마른 말은 물을 마실 수 없는 기둥에 묶어 두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말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만큼 이기적인 동물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무언공자는 급한 출발을 원했으면서도 발로 차는 대신 손으로 엉덩이를 두드렸다.

그것은 담장을 뛰어 넘으려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화벽이 튀어 오르려 할 때 무언공자는 두 다리를 말의 옆구리에 밀착시켰다. 그리고는 말에게 자신의 체중이 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우모공유(羽毛空遊)라는 희대의 신법을 구사하였다.

이 신법은 성주 일가에게만 전해지는 독문 신법으로 내공의 힘으로 마치 깃털이 허공을 유영하는 듯 신형을 가볍게 하는 것이다. 이는 허공에 떠 있는 상황에서 밑으로부터의 공격을 받았을 때 대응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신법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더 없이 효과적인 방어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회옥이 화벽의 주인으로 무언공자를 인정한 것은 그가 고수여서도 아니고, 성주의 아들이어서도 아니다. 또한 그의 학식이 남달라서도 아니고, 차기 성주의 아우여서도 아니었다.

이런 일련의 동작으로 미루어 그의 감추어진 성품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으로 인하여 타인이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는 선량한 사람들이며, 비록 짐승이라 할지라도 자신과 인연이 있는 짐승이라면 정성껏 돌봐줄 사람이다.

그래서 화벽의 주인으로 낙점했던 것이다.

‘흠! 그런데 왜 비룡보다 빠른 말을 원했을까?’

금방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여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던 이회옥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공자에게도 배속된 말이 있다. 물론 화벽이나 비룡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그래도 대완구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누구나 탐낼 천리마이기에 웬만하면 말타기를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무언공자는 거의 타지 않았다. 외출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공 연마와 독서에 매진하느라 그랬다.

그래서 그의 말은 내원에 있는 그의 처소에 있지 않고 늘 철마당에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무언공자는 가끔 행사 때에나 말을 사용했다고 되어 있다.

그의 말을 담당하는 철마당 제자의 보고서에 의하면 무언공자가 사용할 말은 굳이 안장 끈을 조여 맬 필요가 없을 정도라 되어 있다. 워낙 천천히 달리기 때문이라 하였다.

물론 요즘엔 기원을 드나드느라 바빠서 지난 몇 달간은 단 한번도 말을 타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비룡보다 빠른 말을 찾았다는 것이 적이 이상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물어볼 수도 없지만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이회옥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것보다 훨씬 더 궁금한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삼경이 다된 깊은 밤, 사위는 고요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모든 전각에서 가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지만 철마당주인 마선봉신의 처소만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회옥은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그는 지난 수개월간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잠 대신 운공조식을 함으로써 하루의 피로를 씻곤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얻는 이점은 두 가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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