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튼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남소연
2차 6자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부시 행정부의 대표적인, 그러나 잘 드러나지 않은 대북강경파인 존 볼튼 국무부 차관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국무부 군비통제 및 국제안보 차관을 맡고 있는 볼튼은 중국에 이어 일본을 방문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그의 방중, 방일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2차 6자회담에서 부시 행정부가 고수하고 있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해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시 행정부가 지목한 "깡패국가(rogue state)"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를 지지해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른바 '북핵 문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대응 방식과 관련해 중대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최근 부시 행정부의 행보를 보면, 2차 회담에서도 기존의 강경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6자회담을 위기에 빠뜨리게 할 공산이 큰 반면에, 북한 등을 겨냥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에는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의 움직임을 6자회담과 관련된 '코멘트'보다는 PSI 및 해외주둔 재배치, 일본과의 미사일방어체제(MD) 협력 강화 및 주한미군 전력 증강 등 종합적인 흐름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존 볼튼, 그는 누구인가?
존 볼튼은 우리에게 낯선 인물이지만, 부시 행정부 내의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 강경론을 주도하는 국방부의 쌍두마차격인 도날드 럼스펠드 장관과 폴 월포위츠 부장관, 그리고 딕 체니 부통령이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무부 차관으로 그를 발탁할 것을 부시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도, 국무부에서 강경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볼튼의 인준 청문회 때 미국의 시민단체들은 그의 인준을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2002년 8월말 서울을 방문해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을 재생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던 볼튼은,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초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제네바 합의 무용론'을 설파하고 다녔고, 북한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봉쇄의 강화를 주도해온 인물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한은 물론이고 부시 행정부 내에 일부 온건파들조차도 그의 행보에 못마땅한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차 6자회담 때 미국측 대표 자리를 놓고 북한 및 미국내 강온파 사이의 충돌이었다. 2003년 8월말 1차 회담을 앞두고 미국 강경파들은 볼튼을 미국측 수석대표로 내세우려고 했고, 이에 북한은 볼튼이 나올 경우 회담에 불참하겠다며 반발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잭 프리처드 대북교섭대사도 볼튼은 6자회담 대표로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반발했고, 이 과정에서 프리처드는 강경파의 견제로 사임을 하게 되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파월의 권고를 수용해 6자회담의 수석대표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임명했고, 미국 내 강온파 사이의 갈등도 '일시 봉합'되었다.
PSI에 박차를 가하는 부시 행정부
부시 대통령이 작년 5월 발표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은 WMD 부품과 물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이나 항공기를 중간에 나포 또는 제지한다는 개념으로, 현재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등 16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캐나다, 싱가포르, 노르웨이 등도 미국의 공식적인 참가 요청을 받고 있다.
미국의 PSI 움직임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이는 한반도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도 하다.
첫째는 부시 행정부가 PSI 대상국으로 북한을 직접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이 11일 국방대학 연설과 14일 라디오 연설에서 핵확산 방지 구상을 발표하면서 북한을 거론한 것은 이러한 기류를 반영하고 있다. 이는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2차 회담에서 자신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북한을 겨냥한 PSI를 본격 가동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개념 구상과 훈련에 머물러왔던 PSI가 조만간 '실전' 단계로 돌입할 것이라는 점이다. 작년 12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PSI 회의에는 이례적으로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참여했는데, 이 회의에서는 2004년부터 PSI를 본격 가동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4월경부터 북한에 대한 본격적인 해상 봉쇄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PSI에 반대해온 중국과 러시아가 PSI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얼마 전까지 PSI가 국제법적 근거가 없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역행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PSI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그러나 러시아는 존 볼튼의 강력한 요청을 받고 기존의 입장을 누그러뜨려, "러시아는 미국의 구상을 지지할 것을 고려할 준비가 돼있으나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법적 기초가 먼저 갖춰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는 국제법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미국 측의 요구를 적지 않게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보다 더 주목할 점은 WMD 관련해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암묵적인 봐주기' 움직임이다. 부시 행정부가 최근 파키스탄과 리비아의 고농축 우라늄 이용 핵무기 개발에 중국이 관여했다는 근거를 잡고, 이를 빌미로 중국에게 PSI를 지지 혹은 묵인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볼튼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핵기술의 유출을 문제삼지 않으면서 중국으로 하여금 2차 6자회담에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PSI에 협력해줄 것을 요청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볼튼이 방중 성과를 설명하면서 "중국은 PSI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우려를 이해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중국이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도 이러한 기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재배치도 PSI와 관련
주한미군 등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가 북한 등을 염두에 둔 PSI와도 직결되어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한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더글라스 페이스 미 국방부 차관은 작년 12월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설을 통해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가 세계전략의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예로 PSI를 든 바 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PSI는 생화학무기와 핵무기, 그리고 탄도미사일의 확산을 다루는 전지구적 전략의 예"라며, "우리는 이러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적절한 군사력과 (동맹·우방국과의) 관계, 그리고 권한을 가지고 미군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재배치가 또 하나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차 6자회담과 PSI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부시 행정부가 재선 전략 차원에서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대체적인 분석은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현상 관리' 차원에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의 유혈사태 악화에 대량살상무기 정보 조작 시비까지 더해지면서 부시 행정부는 궁지에 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북한과의 긴장을 고조시켜 미국 국민의 안보불안을 자극함으로써 안보문제를 대선의 최대 이슈로 삼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민주당 후보를 '안보를 무시하는 이상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것을 핵심적인 대선 전략으로 삼고 있는 부시 진영의 전략과도 맞물린 것이다.
이러한 전망의 타당성 여부를 가늠할 중요한 기준은 2차 6자회담이 될 것이다. 2차 회담에서도 부시 행정부가 기존의 강경 입장을 고수해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 미국은 본격적으로 PSI를 가동시킬 것이다. 이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의 긴장 고조로 이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우리가 베일에 가려진 존 볼튼의 행보를 주목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PSI의 정치적, 법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korea.or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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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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