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과 성교의 음악, 학교 침투하다

<스쿨 오브 록> O.S.T.

등록 2004.02.21 09:04수정 2004.02.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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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음악은 기성 세대에게 ‘반항’의 음악으로 각인되어 있다.

a [스쿨 오브 락] O.S.T.

[스쿨 오브 락] O.S.T. ⓒ 배성록

록음악의 4비트를 가리켜 ‘성교의 비트’라고 저주하는 이들도 종종 발견되곤 한다. 사탄주의를 내세우고 실천하는 밴드는 아주 소수에 불과한데다 극히 일부의 지지밖에 받지 못하지만, 이러한 ‘극소수’는 종종 록음악의 ‘전부’로 오도된다.


록음악의 진정한 미덕이 그 독특한 사운드에 있다는 사실 역시 간과되기 일쑤다. 이 때문에, 10대가 저지른 잔인한 범죄가 발생하면 록음악이 모든 죄를 뒤집어쓴다. 사회적 문제, 가정사의 불화, 성격적 장애와 같은 여타의 모든 근본 원인은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언론과 기성 세대는 온갖 재앙의 근원을 록음악으로 호도한다.

미국의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을 떠올려 보자. 범행을 저지른 두 10대 소년이 마릴린 맨슨을 열심히 들었다는 사실은 지겹도록 매체를 통해 다루어졌다. 그런데 두 소년이 사건 당일 아침에 볼링을 쳤다는 사실은 왜 간과하는가? 록음악에 들이대는 잣대로만 치자면, 볼링 역시 잔인한 10대 범죄의 근원일 수 있는 것 아닌가?

<비포 선라이즈>의 감독으로 알려진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신작 < 스쿨 오브 록(School of Rock)>은 초등학교 교실로 이 반항과 성교의 비트를 지닌 음악을 끌어들인다.

초롱초롱한 눈빛의 10대 소년 소녀들이 가득한 교실에 학부모들이 가장 경계하는 록음악이 침입한 것이다. 충돌이 없을 리 없다. 게다가 록음악으로 학생들을 끌어들인 이가 교사 자격을 사칭한, 인상 험악한 록커 나부랭이라면?

<[스쿨 오브 록>은 이처럼 제도권 교육과 록음악이라는 ‘일탈적’ 문화 양식의 만남을 다룬다. 디즈니의 TV용 영화와도 같은 단순한 스토리 구조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의 갈등을 주제로 다루면서 동시에 기성 세대의 관념에 대한 은근한 야유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링클레이터의 노련한 연출력과 배우 겸 록 뮤지션인 잭 블랙(Jack Black)의 개인기, 귀여운 어린이들의 호연 등이 더해져 유쾌하고 오락적인 코미디 영화로 완성되었다.

특히 주인공인 듀이 역할을 맡아 출중한 연주 실력과 코믹 연기를 선보인 잭 블랙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실제 헤비메틀 패러디 밴드인 티네이셔스 D(Tenacious D)의 리더이기도 한 그는 영화 속에서 실제 자신의 이미지를 능란하게 패러디하며 코미디의 힘을 불어넣고 있다.


뚱뚱한데다 인상까지 험악해서 밴드에서 쫓겨난 주인공 듀이의 모습에 잭 블랙을 오버랩하기란 관객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꼬마들 역시 애송이답지 않은 안정된 연주 실력을 보여주는데, 영화를 위해 5개월간 트레이닝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스턴트가 아닌, 초등학생들의 생생한 연주가 영화 곳곳에 불어넣는 생동감과 활력은 지면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한 미국 영화평론가의 말을 언급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이 영화는 모든 연령층에게 즐거움을 준다. 심지어 나처럼 요즘의 록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마저도….”

이 영화의 진짜 미덕은 세대간 문화적 차이가 빚는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에 있다. 지금은 록음악을 악마의 목소리처럼 여기는 학부모들 역시, 1960∼70년대 한창 때에는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록음악에 열광하는 세대였다. [스쿨 오브 록]은 그러한 기성세대의 기억을 아주 자연스럽고 유쾌한 방식으로 환기시킨다.

“당신들도 젊었을 때 그랬잖아”하고 되묻듯이 말이다. 영화 속 꼬마들이 보여주는 록음악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음악을 통해 당면한 문제와 갈등 요소들이 해소되는 모습은 록음악이 ‘반항적’이고 ‘성교의 비트를 가진 음악’이며 아이들을 범죄로 이끈다는 편견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답이기도 하다. 이처럼 귀여운 꼬마들이 연주하는 록 뮤직을 듣고서도 악마 운운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영화가 폭넓은 세대의 공감을 얻으며 박스 오피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영화가 이러하니, 사운드 트랙의 함량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제로 <스쿨 오브 록>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근래 발매된 어떤 록음악 편집음반보다도 뛰어난 선곡과 높은 밀도를 자랑한다.

우선 잭 블랙이 담당한 음악부터 살펴보면, 영화 막바지 경연대회 출전곡인 “School of Rock”과 영화 속 가상의 밴드인 노 베이캔시(No Vacancy)가 연주하는 “Fight”를 들 수 있다. 비교적 직선적인 구조에 교과서적인 연주이지만, 잭 블랙의 음악적 감각을 확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또한 잭 블랙과 꼬마들이 함께 연주하는 AC/DC의 명곡 “It's a Long Way to the Top”도 빼놓을 수 없다. 원곡이 지니는 강렬한 마초적 흥취를 생기발랄하게 뒤바꾸어 놓았으니 말이다.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꼬마들이 들려주는 배킹 보컬은 AC/DC의 거친 남성성에 대한 경원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외의 수록곡은 록음악 마니아의 흥분을 자아내는 전설들의 행렬이다. 후(The Who)의 “Substitute”부터 시작해, 도어스(The Doors), 크림(Cream),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같은 전설적인 록음악계의 거성들이 줄을 잇는다. 이런 선곡은 이들의 전성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완고한' 학부모들을 겨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스투지스(The Stooges)의 명곡 “T.V Eye”를 커버한 와일드 래츠(Wylde Ratttz)나 신예 메틀 밴드 다크니스(The Darkness), 중견 여성 보컬리스트 스티비 닉스(Stevie Nicks)가 부르는 “Edge of Seventeen” 또한 매력적인 선곡이다.

O.S.T.라는 점을 강조하듯 중간중간 삽입된 다이얼로그(dialogue)마저도 음악의 연관성을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운드 트랙이라 할 수 있겠다. <스쿨 오브 록>은 실로 <벨벳 골드마인>과 <헤드윅>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멋진 음악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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