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협자(俠者) 예수 - 4회

성경을 무협지처럼 읽기

등록 2004.02.23 21:54수정 2004.04.0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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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빠져나가고 싶으면 내 마누라인 척 해."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미리암은 눈물을 닦고 요셉을 바라보았다.

"왜 도와주시는 거죠?"
"이 역겨운 팔레스티나에서 로마에게 반항하는 건 갈릴리 사람밖에 더 있나?"


어쩌면 이 남자, 마티아스의 혁명 형제일지도 모른다……그런 생각이 들자 미리암은 마음이 놓였다.

요셉은 미리암의 손을 잡고 자기가 끌고 가던 노새의 등에 앉혔다. 배부른 몸으로 걷기가 힘에 겨웠는데 노새를 타니 한결 편해졌다. 미리암은 달아난 유다가 걱정이 됐지만 지금은 우선 몸을 풀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베들레헴에 도착해보니 야영할 수 있는 공터는 이미 천막으로 빽빽이 들어찼다. 여관에 가보았자 방이 없을 건 뻔한 노릇이었고 혹 있다 하더라도 바가지 요금이 만만치 않을테니 묵을 여유가 없었다. 유다가 마련한 비상금은 유다가 갖고 있었으니 미리암은 생전 처음 보는 중년의 남자의 호의에 기대야 할 판이었다.

"나야 들판에서 자도 되지만……."
요셉은 미리암을 흘깃 보고는 미리암을 남겨둔 채 혼자 여관으로 갔다. 한참 후에 나오는 요셉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미소지었다.

"다행히 밖에서 이슬 맞으며 자는 건 모면했어. 마구간인데 괜찮겠지?"


미리암은 자기에게 호의를 베푸는 낯선 중년의 남자에게 감사했다. 행여나 요셉이 무슨 흑심을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으로선 의지할 사람이라곤 요셉밖에 없었다. 유다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몸이 날렵한 사람이니 로마병사들에게 쉽게 잡히지는 않을 것이었다.

마구간은 오늘 청소하고 짚을 새로 깔아놔서 그런지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요셉은 노새 등에 얹어놓았던 염소가죽을 짚 위에 펼쳐놓았다.


"여관 주인에게 끓인 물을 얻어올게. 그리고 마을에 산파가 있는지도 알아볼게."

요셉은 고맙다는 말을 채 듣기도 전에 마구간을 나갔다. 미리암은 염소가죽 위에 누웠다. 로마병사들로부터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구멍 뚫린 마구간 천장으로 아까 보았던 혜성이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잠시 꾸벅꾸벅 졸던 미리암은 갑자기 강한 통증을 느껴 잠이 깨었다. 드디어 출산인가 보다 하고 주위에 도움을 청하려고 했지만 배가 너무나 아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기에는 초산의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통증에 미리암은 까무러칠듯이 놀랐다.

그러나 머릿속은 점점 맑아지고 배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마구간 기둥을 움켜잡고 용을 썼다. 입에서 신음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오늘 처음 본 남자였지만 옆에 요셉이라도 있어줬으면 안도가 되겠는데, 이 남자는 또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인지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아악!"
미리암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 못했는지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치마 아랫도리는 피로 흥건히 젖었다. 그렇게 많은 피는 처음 보는 것이라 미리암은 더욱 겁에 질렸다.

마구간의 말들은 미리암의 비명 소리와 피냄새에 불안한지, 히힝 소리를 내며 땅을 박차곤 했다. 등불 바로 옆에 있는 말은 머리를 흔들며 불안해했는데 등불이 말 머리에 부딪혀 흔들거렸다.

"도, 도와줘요!"
있는 힘껏 소리지른다고 지른 건데 열흘 굶은 사람의 절규처럼 기운이 없었다. 세상에 자기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뭔가 아까와는 다른 느낌이 아랫배에 느껴졌다. 미리암은 치마를 걷어 아랫도리를 보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걷을 수가 없었다.

으앙!
드디어 된건가?

안도와 함께 피곤이 몰려왔다. 아기를 봐야 하는데, 탯줄을 잘라야 하는데……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몸을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손을 뻗어 치마를 걷어 올렸다. 주먹만한 피투성이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미리암은 손을 뻗어 아기를 안으려고 했다.

그 순간!

화악-!

마구간 기둥으로 불길이 타고 오르더니 마른 짚으로 얹은 지붕으로 순식간에 불길이 이어 붙었다. 아까부터 불안하게 굴던 말이 결국 등불을 머리로 받은 모양이었다. 불길이 치솟자 공포에 질린 말들이 우왕좌왕 움직이며 난리를 쳤다. 금방이라도 말들이 뛰쳐나올 것처럼 굴자 미리암은 있는 힘을 다하여 팔을 뻗었다.

미리암 가랑이 사이에 있던 아기는 미리암의 검지 손가락을 움켜잡으며 더욱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미리암은 아기를 꼭 안고 불길을 피해 마구간 바닥을 기었다. 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러 미리암은 자기가 낳은 아기를 새삼스레 다시 바라보았다.

머리 윤곽이며 얼굴 형태가 미리암이 익히 보아왔던 아기와는 사뭇 달랐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눈물이 절로 볼을 타고 흘렀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눈물이 나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기는 히브리인인 마티아스보다는 자기를 욕보인 로마 병정에 가까워 보였다.

"무슨 일이야!"
요셉이 산파와 같이 달려왔을 때 마구간은 반쯤 불타고 있었고 미리암과 아기는 구석에서 불길을 피하고 있었다. 여관 주인과 같이 불길을 끄고 나서 요셉은 미리암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하늘이 주신 아기예요."

미리암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기가 전혀 그 씨를 받고 싶지 않은 남자의 자식이었지만, 어쩌면 이것이 다 운명일지도 몰랐다.

요셉은 미리암이 건네는 아기를 받아 안았다. 인상을 찌푸리고 울고 있는 아기는 그 생김새가 히브리인의 아이가 아니었다.

"이름은 지었어?"
"호세아."
"'구원자'란 뜻이군."

구원자 호세아, 헬라식으로는 예수라 불리는 이 아기의 출생에 대해 양부모인 요셉과 미리암은 계속 서로 함구했다. 미리암이 로마군에게 수배중인 여자였기 때문에 요셉은 입을 다물었지만 그 후에도 호세아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훗날 호세아를 본 적도 없는 자들에 의해 날조되기는 했지만 아기의 탄생은 여전히 베일에 감춘 비밀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가 하는 건 로또복권처럼 맞히기 어렵습니다. 신의 영감으로 기록됐다는 성경조차 제각각이니 말입니다. 헤롯왕 치세 중에 태어났다면 헤롯왕이 죽은 기원전 4년 전에 태어나야 하고, 누가복음대로 키리니우스(구레뇨)가 시리아(수리아) 총독 재임 중에 태어났다면 기원후 6년 쯤에 예수가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고향이 어딜까요? 나사렛 갈릴리입니다. 갈릴리 호수 옆이며 사해 윗쪽입니다. 구레뇨가 인구조사를 한다고 하는데 왜 예수의 부모는 사해 옆에 있는 베들레헴에 머물렀을까요? 소설 중에 언급했지만 베들레헴에 사람이 북적일 때는 유월절 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숙식할 장소가 없어서 근처 마을인 베들레헴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즉 예수는-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게 분명하다면-유월절 기간 중에 태어난 것이고, 구레뇨의 인구조사와는 무관합니다. 신약의 저자 혹 필경사들은 뭔가 그럴듯하게 만들려고 하다가 빈틈만 보인 셈입니다.

덧붙이는 글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가 하는 건 로또복권처럼 맞히기 어렵습니다. 신의 영감으로 기록됐다는 성경조차 제각각이니 말입니다. 헤롯왕 치세 중에 태어났다면 헤롯왕이 죽은 기원전 4년 전에 태어나야 하고, 누가복음대로 키리니우스(구레뇨)가 시리아(수리아) 총독 재임 중에 태어났다면 기원후 6년 쯤에 예수가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고향이 어딜까요? 나사렛 갈릴리입니다. 갈릴리 호수 옆이며 사해 윗쪽입니다. 구레뇨가 인구조사를 한다고 하는데 왜 예수의 부모는 사해 옆에 있는 베들레헴에 머물렀을까요? 소설 중에 언급했지만 베들레헴에 사람이 북적일 때는 유월절 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숙식할 장소가 없어서 근처 마을인 베들레헴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즉 예수는-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게 분명하다면-유월절 기간 중에 태어난 것이고, 구레뇨의 인구조사와는 무관합니다. 신약의 저자 혹 필경사들은 뭔가 그럴듯하게 만들려고 하다가 빈틈만 보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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