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티셔츠
국내외의 각종 영화제를 휩쓴 영화 <굿바이 레닌> 열풍은 이러한 '동독의 추억'에 불을 질렀다. 영화처럼 통일 직후 동베를린 지역에서 동상들이 일제히 수거되는 수난을 겪은 장본인인 레닌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박은 티셔츠나 포스터가 영화의 인기에 편승해 상점에 내걸리고 있다.
바야흐로 동독이 '상품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만물의 상품화'라는 자본주의의 정언 명령에 걸맞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복고풍 바람이 불기 전에 동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일까?
사라진 '동독의 흔적'은 이 부활과 무관하게 이전부터 베를린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깔끔하고 활기찬 풍경의 서베를린 지역에 비해, 동베를린의 시가나 건물은 여전히 우중충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직도 서베를린 사람들은 뭔가 음산한 느낌을 주는 동베를린 쪽으로의 출입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며, 동베를린 지역의 기숙사는 상대적으로 빈 방이 많고 값도 싼 실정이다.
또 통일 이후 정부가 동독 지역에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동서독인의 삶은 아직 많이 다르다. 동독의 실업률은 서독 지역의 두배가 넘으며, 생활 수준의 격차도 현저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통일 후 15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주민의 식습관까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독일에는 지금까지 엄연히 사용되고 있는 '오씨'(동독인)와 '베씨'(서독인)라는 말과 나란히 동독인과 서독인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씨'들의 눈에 '동독적인 것'의 상품화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곱게 보일지는 의문이다. 독일에서 냉소의 대상이던 '동독'이 열심히 부활하고 있지만, 진정한 통일의 길은 멀고 험한 모양이다. '베를린 장벽'은 독일 국민들의 마음 속에서 아직 무너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산일보 2월 25일자에 송고한 글을 일부 보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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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부산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68혁명, 상상력이 빚은 저항의 역사』, 『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공저), 역서로 『68혁명, 세계를 뒤흔든 상상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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