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들아, 우리 마음을 나누자

[대안학교 이야기] 원경고등학교 2박 3일 새내기 훈련

등록 2004.02.27 13:43수정 2004.02.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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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새내기 훈련 주제 현수막

새내기 훈련 주제 현수막 ⓒ 정일관

교무실에 앉아 있으니, 철새 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여기 황정리 벌판에서 깃들어 살던 겨울 철새들이 연신 신호를 보내며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날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몹시 서두르고 있는 철새들의 다급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군요. 새로운 계절, 새로운 변화가 또 일어나는 것이겠지요.

원경고등학교에서는 매년 새내기들을 선발하여 입학 전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학교에서 하는 형식적이고 건조한 하루 안내 행사가 아니라, 선생님들과 학생,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새내기 서로간의 의미있는 만남을 이루기 위한 2박 3일간의 훈련입니다.

엊그제, 원경고등학교에서 새내기 훈련이 ‘원경 새내기들아, 우리 마음을 나누자’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오랜 겨울 가뭄으로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단비가 밤새 내리고 다음날 오후까지 비를 흩뿌리는데, 전국에서 산 넘고 물 건너 합천 적중 황정리 벌판의 원경고등학교로 새내기들과 그 학부모들이 달려온 것입니다. 원경의 새내기들이 단비였습니다.

a 새내기 훈련 업어주기 프로그램

새내기 훈련 업어주기 프로그램 ⓒ 정일관

새내기 30명과 그 학부모들까지 합쳐 50여명이 참가한 이번 새내기 훈련의 시작은 부모와 새내기 손잡고 걷기와 업어주기였습니다. 마침 비가 그쳤지만 비 그친 뒤의 매서운 찬바람이 마구 불어 몸을 움츠리게 하였지만, 학교에서 30분이 넘게 걸리는 명곡 저수지까지 이동하며 서로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명곡 저수지에서 명상을 하고 다시 학교로 오는 길에 서로 업어주기를 하였습니다. 어릴 때 이후로 한 번도 손잡고 먼 길을 걸어보지 못했고, 한 번도 업어주지 못했던 부모 자식 사이라면서 다소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이내 스스럼이 없어졌습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교장 선생님도 업어드리고, 교감 선생님은 교사들을 업어주면서 우애를 주고 받았습니다.

a 원경고등학교 새내기들

원경고등학교 새내기들 ⓒ 정일관

저녁에는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손잡고 걷기와 업어주기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는데요, 서로 그동안 무심했음을, 서로가 자신들의 기준과 생각으로 부모를, 또는 자식을 판단하며 상처를 주었음을 반성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모두 한 '꼴통'을 하고 모인 새내기들의 아픈 사연과 내력을 얘기하며 서로 조심스럽게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에 건강달리기로부터 시작된 이 훈련은 다음날엔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견학하고, 오후에는 모둠별로 나누어 광목천 위에다 '협동창작 - 해바라기 그리기'를 하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쭈빗쭈빗 망설이던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참여하여 여백을 메워 나갔습니다. 아이들은 어렵게만 느껴지던 협동 창작이 해 보니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며,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기쁨을 맛보았다고 좋아했습니다.

a 협동 창작-해바라기 이미지 그리기

협동 창작-해바라기 이미지 그리기 ⓒ 정일관

저녁에는 마음공부를 하였습니다. 박영훈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마음공부 원리 강의를 듣고, 각 방별로 다시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마음일기를 기재하고, 다시 전체가 모여 발표하고 감정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듣는 마음공부가 썩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지만 그동안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도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자신들의 마음에 관심을 갖는 첫 계기가 되어, 우리 자신들이 원래 훌륭한 사람들임을 낙숫물처럼 깨닫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 물이 언젠가는 바위를 뚫을 수 있겠지요.

a 새내기 마음대조일기 발표

새내기 마음대조일기 발표 ⓒ 정일관

새내기 훈련은 3일째 되는 날 담임 시간을 가지면서 끝이 났습니다. 메마른 겨울 대지를 적시며 봄을 맞이했던 단비처럼 우리 새내기들도 봄의 희망을 안고, 2박3일간의 훈련을 잘 마쳤습니다.

한 학부모는 감상담에서 아이가 훈련을 잘 받는가를 보려고 훈련에 함께 참가하였지만 자신이 도리어 많은 것을 배워가는 시간이 되었다고, 따뜻하고 훈훈한 원경고등학교의 분위기에 크게 안심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새내기들이 돌아가는 날, 날이 무척이나 화창하고 따사로워, 매서운 찬바람의 시련을 이겨낸 사람의 마음이 바로 이와 같이 화창하고 따사로운 마음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 이 새내기들과 함께 하는 날들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나날이 좋은 날 되도록 대안교육의 한길로 나아가리라 기원하였습니다.

a 새내기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새내기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 정일관


대안학교 원경고등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원경고등학교는 경상남도의 청정지역인 합천군 적중면에 있는 대안학교이다. 학교 뒤에 있는 우람한 미타산과 주변에 펼쳐진 황정리 벌판,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10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대안교육을 일구어 가는 학교이다.

원경고등학교는 1998년 최초의 특성화 대안학교가 문을 열 때 출발한 영산성지, 경주화랑, 양업, 간디, 한빛 등의 대안학교와 함께 개교한 6개 학교 중의 하나로 마음공부와 체험학습으로 인성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마음공부를 교육의 제 1 원리로 삼아, '마음공부를 통해 행복을 가꾸는 학교'를 지향하여, 마음공부 수업, 마음대조일기쓰기, 마음공부 훈련, 마음공부 심화학습, 학부모 마음학교 등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고 있다.

또한 향토 순례, 해양훈련, 지리산종주등반 등의 체험학습과 다양한 문화 예술 즐기기로 학생들이 자신들의 삶을 좀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고 있다.

원경고등학교는 기다림의 교육, 따뜻하고 훈훈한 교육, 열린 교육과 다양성 교육을 추구하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많은 청소년이 학교에 깃들어 성장할 수 있도록 17명의 헌신적인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 정일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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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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