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보다 힘센 '새끼노루귀'

내게로 다가온 꽃들(25)

등록 2004.02.28 21:05수정 2004.02.29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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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노루귀
새끼노루귀김민수
따스한 봄날,
온몸이 들썩거려서 책상에 앉아있기가 버거워 산행을 했습니다. 발밑으로 꿈틀거리는 봄소식이 마구 발바닥을 간지럽힙니다. 복수초는 이미 오래전부터 피었고, 복수초와 더불어 노루귀까지 봄의 행렬에 가세를 했습니다.

'햐, 고놈들 참 귀엽게도 생겼다.'


그제서야 자기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작은 키를 쫑끗 세웁니다. 더 귀여운 모습으로 말입니다.

"니가 노루귀니?"
"예, 그냥 노루귀가 아니고요, 새끼노루귀라고 불러주시면 더 고맙겠어요."
"알았어."

김민수
그렇게 새끼노루귀와의 조우가 시작되니 그 작은 미소에 홀딱 반해서 어쩔 줄 모릅니다. 여기저기에 피어있는 복수초와 새끼노루귀, 그리고 박새의 싹까지 여기저기서 올라오니 행여나 그들을 밟을까 발을 함부로 뗄 수 없습니다.

"애들아, 조심조심 걸을께."
"어디서 왔어요?"
"응, 저기 종달리라는 곳에서."
"그런데 그 곳이 어딘가요?"
"바다가 있는 곳이야."
"바다요?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에요."
"그렇겠구나. 이렇게 깊은 산에서 바다란 생소할 수도 있겠구나."
"아저씨, 바다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래, 너도 아가들처럼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김민수
"바다란 말이야 고요할 때는 아주 잔잔하게 움직인단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화가 나면 저 깊은 바닥까지 마구 흔들어 버린단다. 그리고 바다에는 파도가 있단다. 하늘에 뭉게구름처럼 바다의 구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하늘을 보면 새가 날지? 바다에는 물고기들이 난단다. 그것을 사람들은 헤엄친다고 하지. 어찌보면 바다나 하늘이나 똑같은 것 같다. 참, 바다가 화가 나면 바닥까지 마구 흔들린다고 했지? 바람이 많이 불면 온 숲이 흔들리는 것과도 같은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숲에 바람이 불면 떨어져야 할 나뭇잎도 떨어뜨리고, 썩은 가지도 부러뜨려서 땅으로 보내주지 않니? 고목도 편하게 누워 휴식을 취하게 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숲이 사는 것처럼, 바다도 그렇단다. 온통 뒤집어지고 나면 다시 새로운 기운이 충만하게 된단다."


김민수
"아저씨, 새롭다는게 뭐죠?"
"응, 그건 말이야 바로 너같은 거야."
"예?"
"이 숲에는 지난 겨울 아주 고요했단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하얀 눈만 가득했지. 그런데 어느 날 조금씩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보이지도 않던 푸른 싹들이 올라왔어. 그리고는 너희들이 앞을 다퉈 올라온 것이지. 땅 속에 있던 너희들이 따스한 햇살을 맞이하던 눈부신 순간, 그것이 새로운 순간, 거듭남의 순간이란다."

"조금 어려워요."
"그래, 그러나 이 봄이 가기 전에 새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너희는 알게 될거야. 저기 박새의 싹이 보이니?"
"저기 파란 거, 저게 박새의 싹인가요?"
"그래, 너희들도 조금 지나 꽃이 질 무렵이면 저렇게 푸른 이파리가 난단다. 그게 노루라는 동물의 귀를 닮아서 너희 이름도 그렇게 지어진 것이란다. 노루귀를 닮은 귀를 쫑끗 세우고 잘 들어보면 여름부터 박새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 올거야.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거지."

"아저씨, 변하는 것은 좋은 거에요?"
"음…. 때로는 변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도 있지만 살아있는 것은 모두 변한다고도 할 수 있단다. 물론 어떻게 변하는가가 중요하지."
"그렇군요. 변하긴 변하는데 어떻게 변하는가가 중요한 거군요."
"그런데 너희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너희들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늘 새롭거든."

김민수
"그렇지 않은 것도 있나요?"
"그래, 사람들이 그렇고, 사람들이 만든 것이 그렇단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변하긴 변하는데 종종 추하게 변하기도 하거든."
"왜 그렇게 되었죠?"
"욕심 때문이란다."
"욕심이요?"
"그래, 자기만 생각하는 거란다. 남이야 아프든 말든 나 혼자만 생각하고 살다가 결국 자기도 죽어버리는 것이지."
"그렇게 나쁜 것을 왜 가지고 살아요? 버리면 되지?"
"너희들에게는 그게 아주 쉬운 일인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란다."

"복잡해요. 머리가 아파요. 아저씨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 드릴까요?"
"너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니?"
"그럼요. 나에 관한 이야긴데 왜 모르겠어요. 제가 땅 속에 있을 때 들었던 이야기에요."
"그래, 그럼 친구 복수초와 함께 들어보자꾸나."

새끼노루귀와 세복수초
새끼노루귀와 세복수초김민수
"옛날에 우리가 약하다고 무시를 하던 호랑이가 살고 있어어요. 매일 우리를 약올리니까 우리가 화가 나서 호랑이한테 누가 센가 시합을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호랑이가 막 비웃는거에요. 그렇게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그만 바람이 불면서 위태위태 줄기에 있던 씨앗이 땅에 떨어져 버린거에요.

호랑이는 우스워 죽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 씨앗을 개미가 물고 가버렸네요.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요. 호랑이는 저렇게 작고 약한 것이 객기를 부려도 너무 부렸다고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해 겨울 무지하게 춥고 눈이 많이 와서 호랑이는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그만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게 되었어요. 그런데 개미에게 물려갔던 씨앗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봄햇살을 머금고 저처럼 이렇게 피어났답니다. 노루귀가 호랑이를 이겼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우리에겐 전해진답니다. 지난 겨울 땅 속에서 두런두런 들었던 이야기에요. 그 씨앗이 우리 증조할아버지뻘 될지도 몰라요."

"그렇구나. 참 재미있다."

이렇게 자연에 나가 들의 꽃들을 만나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고 나니 사람들도 나를 보면 많이 착해졌다고 합니다.

'아, 아름다운 것들이여!'

이 감탄사가 사람들을 보며 튀어나오는 그날을 고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어야겠지요?

덧붙이는 글 | 그림을 그려 주시는 이선희 선생님과 만나 100회를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가끔씩은 그림 없이 시기에 맞는 꽃들도 소개 가면서 진행해 가기로 했습니다. 수익금은 100회가 끝나는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불우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기사까지의 기금] 480,000원

덧붙이는 글 그림을 그려 주시는 이선희 선생님과 만나 100회를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가끔씩은 그림 없이 시기에 맞는 꽃들도 소개 가면서 진행해 가기로 했습니다. 수익금은 100회가 끝나는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불우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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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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