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거 기획단계부터 배제돼요"

[4·15총선 민심기행(1)] 시민30인에게 듣기 - 장애인이 말한다

등록 2004.03.02 09:18수정 2004.03.0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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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은성, 석희열, 송민성
사진 - 김진석


제17대 4·15 총선을 맞아 다양한 영역의 유권자들을 만나 이번 총선을 바라보는 각계각층의 민심을 훑어볼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순서로 450만 유권자 장애인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취재 방식은 지난 2월 25, 26일 양일간 세 명의 기자가 다른 곳(연극극단 휠, 뇌성마비 독립생활 공동체 어우러기, 지체장애인협 등 총 열곳)을 발로 뛰며 각각 10명의 장애인을 만나 그들과 직접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총 30여명의 장애인들은 취재팀에게 △투표의 참여여부 △현 정치에 대한 만족도 △개선돼야 할 정책 △정치인에게 바란다 등의 공통 질문을 받았으며, 개별적 장애 특성에 따른 다양한 경험과 의견들을 내놓기도 했다.

취재 결과 그들은 장애인 정책의 '실효성' 없음을 꼬집으며 정치에 염증을 내비쳤지만, 투표 참여의사를 밝히며 총선에 비교적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필자 주>


현 정치 만족도는 34점, 투표 참여율은 80%

a 장애인 극단 '휠'의 단원들

장애인 극단 '휠'의 단원들 ⓒ 김진석

"우선 선거 기획 단계부터 장애인은 배제돼 있어요. 장애인도 엄연히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인데 공무원들은 장애인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죠. 투표소 위치만 봐도 그래요. 공익요원들이 업고가면 되지않냐고 하지만, 업히는 것이 불쾌한 장애인들도 있다는 걸 왜 생각하지 않나요?”


투표는 하겠다고 밝혔지만, 김광이(44·지체)씨는 불만이 많았다. 그는 또 “정보 제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혼자 사는 장애인들의 경우 더욱 세심히 선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위해 애써야 하는데 그저 우편함에 안내 책자만 던져놓고 가는 게 전부다”며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를 실천하는 행위가 항상 불쾌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힘든 일이다”고 덧붙였다.

“말뿐인 공약은 이제 그만!”

“최고를 100점으로 둔다면 최하를 -100으로 보고, 점수를 매기면 -50점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아요.(웃음) 제가 정치를 많이 알거나 깊은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결국 모두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왜그리 맨날 소모적인 싸움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번엔 정말 우리 국민을 생각하는 '진짜' 정치를 보고 싶어요."

현 정치 만족도에 가장 '짠' 점수를 준 연극배우 김지수(33·소아마비)씨의 평이다. 취재하며 만난 장애인 30인에게 현 정치 만족도에 관해 점수로 매겨 줄 것을 부탁했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부탁했지만, 취재에 응한 몇 몇은 과감히 ‘0’ 점 이하인 ‘-’ 점수를 부르는 이도 있었다.

장애인 30인이 합산한 현 정치 만족도 점수 평균은 ‘34점’으로 정치에 관한 짙은 불신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들은 ‘매번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항상 말뿐인 공약으로 끝날뿐이다’, ‘정치인이란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채우려 하는 사람들이다’ 라는 등의 공통적 근거를 제시하며 ‘진짜’ 정치를 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또 그들은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보여준 것을 보면 솔직히 투표를 하는 것도 무의미 할 수 있다, 이젠 더 이상 말뿐인 그들의 공약을 믿지 않는다” 했지만, 한편으론 "이젠 국민과 나라를 위해 공약을 정말로 실천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뽑고 싶다” 며 ‘혁신’ 에 관한 일말의 희망도 버리지 않았다. / 김은성
취재한 장애인 30명 중 24명인 80%는 '당연히 준수해야 할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라며 투표 참여의 의지를 피력했다.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6명도 2명을 제외하곤 정치에 대한 불신보다 '투표소 편의시설 유무' 에 따라 투표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 결과 그들은 현 정치 만족도에 관해 가장 높은 70점에서 가장 낮은 -50점까지 점수를 주었으며, 그들이 낸 평균 점수는 대략 34점에 불과했다. 전반적으로 장애인들은 정치에 깊은 불신을 드러냈지만, 참정권을 행사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현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홈페이지에서 진행되는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해 시급히 개선돼야 할 것" 이라는 설문조사에도 '투표소 편의시설 마련' 이 4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이동차량지원(26%)과 점자선거공보판배포 의무화(19%)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또 참정권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장애인 30인은 4대 선거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는 전제 아래 '방문투표' 및 '전자투표' 등의 새로운 대안을 건의하기도 했다. 또한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과 점자 안내문 제도가 법적으로 실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자유' 의 다른 말, 이동권 쟁취! - 능력 있는 중증장애인을 국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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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비장애인들이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장애인들에겐 그저 남들처럼 밖에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의욕을 찾아요. 이동권은 저에게 꽉 막힌 철창에서 밖으로 나갈 때 느끼는 '자유' 와도 같아요!"

장애인의 모든 자유는 이동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연극배우 한석준(23·지체)씨의 말이다. 윤두선(43·지체)씨 또한 "이동권의 제약으로 인해 사회 참여로부터 소외된 장애인들이 자꾸만 울분이 쌓이게 되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또 이상하게 본다" 며 "결국 이런 ‘악순환’ 의 고리를 끊기 위한 가장 구체적이고 시급한 정책은 이동권에 대한 법률적 보장" 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국회의원 중에도 실제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능력 있는 장애인이 선출돼야 한다" 며 "국회 편의시설을 사용할 장애인 국회의원이 있어야 실질적으로 다른 중증장애인들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 밖에서 아무리 많은 장애인이 이동권을 주장하는 것보다 이동권의 중요성을 몸으로 증명하는 국회의원 한 사람의 목소리가 더 설득력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재한 장애인 30인은 대다수가 '이동권' 의 법률적 보장을 가장 시급히 시행돼야 할 정책으로 꼽았으며, 그 뒤로 인간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드는 '의무교육' 과 자립적 경제 기반 마련을 위한 '취업' 이 주를 이뤘다.

또 그 밖에 독립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최저생계비 지원, 장애인 차별 금지법 제정, 장애인 연금 보장, 편의시설 확충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장애를 모르는 비장애인이 만든 정책의 한계성과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허성현(24·뇌성마비)씨는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긴 했지만 그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계단이나 턱을 거쳐야 한다" 며 "편의시설을 만들어놓아도 차라리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고 구체적 예를 제시했다.

오성환(37·뇌성마비)씨는 "무엇보다도 장애의 다양한 개별적 특성을 무시한 채 제각기 다른 장애를 하나로 묶어버리는 비장애인의 인식부터가 잘못됐다"면서 "이런 무지로 인해 실제로 장애인들이 원하지도 않고 쓸모없는 엉뚱한 정책만 양산되고 곧 엄청난 국고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실제 현 국회에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중증장애인이 없다. 결국 경미한 장애를 가진 국회의원과 비장애인들에 의해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마련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들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들은 자신들을 '진짜' 대변해줄 수 있는 중증장애인 국회의원을 갈망하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 '소신' 있는 정치 보여 달라!

a 사진은 지난 해 10월20일 광화문에서 열린 '한국장애인IL(Independent Living)단체 협의회 출범식'의 모습이다

사진은 지난 해 10월20일 광화문에서 열린 '한국장애인IL(Independent Living)단체 협의회 출범식'의 모습이다

"만났다 하면 서로 악다구니나 하고 삿대질하며 지들끼리 의사당에서 백병전이나 벌이는 것이 여의도 나으리들의 일상 아닙니까. 거기에 무슨 정치가 있고 민생국회가 있답니까. 한국정치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게 무슨 정치입니까?"

김찬규(56·지체)씨는 "선거를 통해 정치권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며 17대 총선의 참정권을 포기할 예정이다.

그러나 몇몇은 이번 총선이 '혁신'의 '기회'가 될 것이라 희망섞인 바람을 내비쳤다. 70점으로 가장 후하게 점수를 준 배성철(43·소아마비)씨는 "선거를 통해 정치판을 물갈이하면 정치인들도 자연히 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싸우는 것도 결국 과정"이라고 말한 문주영(32·뇌성마비)씨는 "정치인들이 서로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겪는 진통 일 수 있다" 고 말했다.

"꼭 모든 것이 국회의원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가? 결국 우리가 직접 뽑은 사람들이지 않는가? 우리 모두에게 합리적 기준이나 원칙이 없기 때문에 그들도 마찬가지로 계속 소모적인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유권자의 책임을 지적한 윤두선(43·지체)씨의 설명이다.

윤씨는 마지막으로 "결국 정치에 희망이 없는 건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며 "국회의원뿐 만이 아닌 대한민국 유권자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장애인 당사자 비례대표 10% 확보하라!"

16대 총선에 이어 총 48개 장애인단체로 구성된 ‘2004장애인단체총선연대’(이하 총선연대)가 구성됐다. 이들은 그간 ‘장애인 당사자 비례대표 10% 할당’ 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지난 19일부터 각 당사 앞에서 벌이고 있으며, 24일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간담회를 통해 긍정적 반응을 얻어냈다.

총선연대는 장애인문제 해결을 위한 10대 우선 정책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연금제 도입 ▲장애인이동권 확보 ▲장애인노동권 확보 ▲장애인정보접근권 확보 ▲장애인교육권 확보 ▲중증장애인 독립생활 지원 ▲여성장애인 지원정책 확대 ▲장애인 의료지원 ▲장애인단체 보호·육성 등을 발표 했다.

또 이들은 각 정당 공약에 장애인 정책이 반영 되야 할 것임을 천명하며 지난 10일 장애인당사자후보 15명을 선정해 각 정당에 공천을 촉구했다.

총선연대 정책 실장 이문희(47·지체)씨는 “지난 총선과 대선은 총선연대가 전문적으로 조직화해 역량을 기를 수 있었던 시행착오의 과정이었다” 며 “지난 경험의 반성을 통해 이번 17대 총선엔 반드시 장애인의 요구가 수렴되도록 하겠다” 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과거와 달리 장애인 스스로 주체가 돼 장애인 문제를 그들 손으로 해결 할 수 있는 17대 총선이 될 것” 이라 자신감을 표하며 “그간 정치인이 내건 공약들을 실행화시키는데 활동의 주안점을 두겠다” 고 밝혔다.

이씨는 “이젠 더 이상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공약이 나올 것도 없고 따로 필요도 없다” 며 “그간 정치인이 말로만 그쳤던 공약의 실질적인 현실화를 보여 줄 단계” 라고 밝혔다. 또 이씨는 무엇보다 그간 “장애인을 대변할 장애인 정치인이 없었음” 을 지적하며 “장애인 정치 참여 실현을 위한 당선 가능 지역의 장애인 당사자 비례대표 10% 할당” 을 강력히 주장했다.

총선연대는 선관위와 함께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수화통역과 점자 안내문의 법 제정을 고민중에 있으며, 오는 3월 30일까지 각 당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칠 것이다.

또 총선연대는 장애인 우선 실천과제를 선정, 각 당에 구체적 실천 방안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내 각 당으로부터 받은 실천 방안 답변서를 비교 분석 후, 장애인들에게 배포 할 예정이다. 총선이 끝나도 그들은 발전적 해체를 통해 ‘장애인 정치 참여 위원회’ 를 구성, 각 당의 공약 실천 여부를 모니터 할 예정이다. /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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