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지만 '변산바람꽃'

내게로 다가온 꽃들(26)

등록 2004.03.02 21:42수정 2004.03.0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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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김민수
봄의 전령으로 알려진 제주의 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입춘이 지나고 3월에 접어들기 직전 지난 겨울부터 꽃을 피우던 동백과 수선화 말고 아예 새로운 싹을 내며 피어나는 꽃들을 만났습니다.

봄꽃들의 이름은 참으로 정겨운 이름들이 많더군요. 일단 집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은 큰개불알풀꽃, 개자리, 방가지똥, 광대나물 등등입니다. 조금 이름들이 못생겼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집 주변에서 자란다는 것은 우리네 밭에서도 잘 자란다는 이야기고 그러다 보니 강제적으로 수없이 뽑혀나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죠. 그러니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라는 의미에서 불경스러운(?) 이름을 붙여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민수
그리고 3월 이전에 만난 꽃들 중에는 이름도 간들간들 간들어지는 야생의 꽃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변산바람꽃'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바람꽃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덕유산 근방에서 핀다는 나도바람꽃, 태백산에서 볼 수 있다는 꿩의바람꽃과 회리바람꽃, 소백산에 피는 쌍둥이이바람꽃, 평화통일의 꿈을 담아 휴전선 근처에 피느 홀아비바람꽃, 한라산에 있는 세바람꽃, 그리고 가래바람꽃, 국화바람꽃, 너도바람꽃,가래바람꽃, 국화바람꽃, 너도바람꽃 등등 다양하기도 합니다. 봄에 피어나는 바람꽃 때문에 봄바람이 솔솔 불어오나 봅니다.

김민수
변산바람꽃은 '변산'에 있는 것인가 했는데 제주에서 만난 바람꽃도 '제주바람꽃'이 아니고 변산바람꽃이라니 맨 처음에는 좀 의아했습니다. 아마도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변산 지방에서 먼저 발견되고 동정되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꽃은 아주 연약해 보입니다만 고난의 겨울을 뚫고 올라온 모양새로 보아 외유내강의 꽃일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안에 품고 있는 것까지 보아야 전부를 보는 것이죠.


'바람꽃'은 연약한 줄기 덕분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하늘거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늘거리면서도 결코 바람에 꺾이는 법도 없고, 지천으로 피어나 밟히면 밟힐수록 더 실하게 자라난다고 하니 그 생명력이 놀랍습니다.

야생의 들꽃들의 심성을 보면 우리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가 보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들꽃들이 주는 아름다움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일을 서슴치 않습니다.


변산바람꽃. 누가 자기를 보고 기뻐하든 말든 작년에도 그 이전에도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피고 지고를 반복했습니다. 내년에도 그리고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도 그 곳에서 변산바람꽃을 볼 수 있어야 겠습니다.

변산바람꽃과 나무수국
변산바람꽃과 나무수국김민수
이미 자신의 할 일을 마친 빛 바랜 나무수국의 헛꽃과 이제 막 새 살을 내놓듯 청아한 변산바람꽃의 조화는 처음과 마지막, 온 길과 갈 길을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자연. 오는 모습도 가는 모습도 추하지 않습니다. 온 곳이 있으니 돌아가는 것도 한 여행길이니 오고 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가장 화려한 순간만 처절하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다 지고 난 후에도 처절하리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오는 꽃, 가는 꽃 모두가 아름답기만 합니다.

세복수초와 새끼노루귀를 만나고 너무 기뻐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더니 그게 뭐 대수냐고 합니다. 세상이 얼마나 바쁘고 치열한데 한가하게 그 작은 들꽃에 빠져서 신선놀음을 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달려가야만 하는가? 작은 들꽃에 눈길을 주는 이런 것은 삶의 일부가 아닌 신선놀음이라고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우리의 모든 인생의 시간들 자체가 '삶'인데 그 삶을 우리는 언제나 미래 지향으로 살아가도록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현재'에 자족하고 행복해 하는 삶은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되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늘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 것처럼 믿고 살아가도록 세뇌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하루 아름답게 살아가고 행복하게 살아가다 보면 그것이 모이고 모여 지난날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고, 그 날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앞날도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산바람꽃과 세복수초
변산바람꽃과 세복수초김민수
이제 도처에서 꽃들이 올라오니 산행을 할 때 발바닥이 근질거립니다. 그런데 함께 꽃 여행을 떠났던 분이 한 말씀하십니다.

"일부러 밟을 필요는 없지만 밟아 주면 내년에 더 많은 꽃을 피우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꽃. 민중들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곳 남녘 땅 제주는 완연한 봄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봄소식이 육지로 화사한 향기를 품고 올라갈 것입니다. 그 봄소식이 느껴질 때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까운 산야로 나가 그동안 지나쳐 버렸던 소소한 우리의 꽃들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아마도 그냥 지나쳤던 우리의 꽃 하나를 찾을 때마다 작은 행복들이 하나 둘 피어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내게로 다가온 꽃들>은 총 100회를 목표로 시작했으며, 이 기사를 통해 나오는 원고료와 관련 수익금은 전액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기사까지의 기금] 484,000원

덧붙이는 글 <내게로 다가온 꽃들>은 총 100회를 목표로 시작했으며, 이 기사를 통해 나오는 원고료와 관련 수익금은 전액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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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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