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육
비슷한 또래의 인간들에게 동시대를 함께 살아냈다('살아온' 아닌)는 것은 은근한 동지의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6·25를 다룬 소설이 자연스런 고개 끄덕임을 주고, 언필칭 386들에겐 청승맞고 퇴행적인 후일담 소설마저도 가슴 아린 추억을 반추하는 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70년대 초반에 태어나 87년 6월 항쟁 당시 열 일곱 철모르는 소년이었고, 고등학교 3학년이던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결성한 '그 착한' 교사들이 무지막지한 백골단에게 멱살을 잡힌 채 교실 밖으로 개처럼 끌려나가는 걸 안타까운 눈망울로 지켜봐야만 했던 세대들에게 김종광의 신작장편 <야살쟁이록>(우리교육)이 주는 울림은 크다.
1971년에 태어나 위에 언급한 사건들을 겪으며 중·고교 시절을 보낸 김종광은 동년배의 작가들 대부분이 몰역사성과 비현실성에 휘둘리는 괴이한 21세기 문학환경 속에서 그 역시 71년생 작가인 김윤영과 함께 드물게 '리얼리즘'의 깃발을 지켜내고 있는 소설가다. 게다가 그의 리얼리즘의 속에서 날것으로 파닥이는 '풍자'의 힘이라니.
<야살쟁이록>을 통해 "오늘날 한국엔 4·19세대와 6·3세대, 민청학련세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교조세대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는 김종광은 자신의 10대 체험을 담담히, 때로는 격정적으로 서술함으로써 같은 세월을 살아온 30대 초·중반의 독자들을 '아무 것도 몰랐기에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었던' 아름다운 시절로 데려간다.
짤짤이(동전으로 하는 노름)와 수음(김종광식으로 표현하자면 '딸딸이'), 갈래머리 여고생을 보며 설레던 가슴과 부족한 재능으로 만든 어설픈 문집(文集), 괜한 염세주의와 세상에 대한 서툰 관심으로 점철됐던 고교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야살쟁이록>를 읽는 맛이 각별할 듯하다.
지난 주말 마지막 책장을 덮고 동갑내기 김종광에게 전화를 넣었다. "잘 봤다. 근사하더라"는 인사 뒤에 그가 걱정을 전한다. "출판사가 우리교육이라 청소년소설로 오해되지 않겠냐?" 그의 소설 속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 답으로 돌려주었다.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에 고교생이 나온다고 그걸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는 바보들이 있더냐."
밥은 눈물이며 웃음...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