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 얼지 않고 싱싱한게 보기 좋습니다.느릿느릿 박철
작년 늦가을 밭에 묻어둔 무를 캐기로 했습니다. 무를 캐기 전 무를 깊이 묻지 않아 무가 얼어서 못 먹게 되지 않았을까 그것이 제일 궁금했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기를 제안했지요. 선택권을 아내에게 주었더니 아내는 ‘얼지 않았다’는 쪽을 택했습니다.
아내가 ‘얼지 않았다’는 쪽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를 밭에 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는 내게 “그만하면 되었으니 너무 깊이 파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지요. 그러니 아내 입장에서는 자기 말대로 무가 얼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얼었다’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파 놓은 구덩이에 무를 담은 자루를 내려놓은 다음 비닐을 덮고 흙으로 봉분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도 불안한 마음이 들어 짚을 얻어다 덮어주고 그 위에 또 비닐을 덮어주었습니다.
무를 캐려고 밭에 내려가 준비를 하는데 지나가시던 동네 아저씨가 “지금 뭐하는 거요?”하고 묻기에 “땅에 묻어둔 무를 캐려고요”고 했더니 “아이고, 다 뭉크러져서 못 먹겠네!”하고 농을 하십니다. 왜 못 먹게 되었냐고 여쭸더니 무 캘 때가 이미 지났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아내와의 내기에서 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캐고 볼 일입니다. 비닐과 짚을 걷어내고 오랜만에 삽질을 했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려 부드러웠습니다. 삽으로 흙을 걷어내자 자루에 담겨 있는 무가 나타났습니다. 제일 궁금한 것은 ‘무가 얼었을까? 안 얼었을까?’였습니다.
자루를 벌리고 무 몇 개를 꺼냈습니다. 무가 싱싱해 보였습니다. 칼을 가져다 잘라 보았습니다. 바람도 들지 않았고 하나도 얼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더 좋아합니다. 무가 얼지 않아서 좋아하는 것인지, 내기에 이겨서 좋아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