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케이>가 '친일진상규명법' 겁내는 속사정

해설 및 사설 게재... 북한 돕기위한 소장파들의 작품이라고?

등록 2004.03.04 13:30수정 2004.03.0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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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3일자 <산케이>에 실은 '친일진상규명법' 관련 해설기사.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3일자 <산케이>에 실은 '친일진상규명법' 관련 해설기사. ⓒ 산케이 홈페이지

지난 2일 국회에서 '일제하 친일행위 진상규명법'(친일규명법)이 곡절끝에 통과됐다. 이 법 제정을 둘러싸고 있어왔던 국회 안팎의 논란과 그간의 곡절을 감안할 때 당일 찬성 151, 반대 2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된 것은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일이다.

이 법 제정에 대해 한국인들이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 '친일파'라는 용어는 '빨갱이'에 버금가는 용어로 인식되고 있는데다 아직도 조사 대상자가 몇 생존해 있고 또 당사자나 후손들의 저항이 결코 적지 않을 걸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쪽이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법이랄 수 있는 이 법에 대해 일본이 과도한 관심 내지 우려와 함께 일부 언론에서 자의적인 해석으로 법 제정의 취지 등을 왜곡해 논란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의 언론은 일본내 극우신문인 <산케이신문>이다.

일본 언론이 '친일진상규명법'을 겁내는 이유

<산케이>는 친일규명법이 한국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3일 구로다 가쓰히로 서울지국장의 해설기사를 비중있게 실었다. 외형상 '지한파'로 통하는 구로다 지국장이 써온 그간의 한국관련 기사들을 통해보면 그는 '혐한파' 내지 '반한파' 기자라 부를만 하다.

구로다 가쓰히로 지국장은 누구인가
20여년 한국생활...'지한파'서 '혐한파'로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63) <산케이신문>서울지국장은 서울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았고 부인도 한국인이다. 국내 외신기자 가운데 한국 관련 기사를 가장 많이 썼으며, 그에게는 '지한파'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러나 그가 한국에서 20여년이 넘는 특파원 생활에서 쓴 여러 개의 한국 기사가 왜곡, 편파 논란에 휩싸이면서 일각에서는 그를 '혐한파'로 비판하기도 한다. 특히 대북 보도나 한일관계사 관련 기사 등에서 극도의 반한적 시각을 보여왔다.


지난 2001년 일본내 극우진영의 역사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을 보도하면서 그들의 시각을 반영, 국내 시민단체로부터 국내언론 칼럼집필 중단을 요청받기도 했다. 또 같은 해 한국의 언론개혁과 ‘북한 반잠수정의 남서해안 침입’ 등에 대해 구체적 증거 없이 오보를 남발, 한국측 항의로 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구로다 지국장은 64년 교토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교도통신에 입사,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지난 80년 교도통신의 한국특파원 겸 서울지국장으로 한국에 왔다. 88년부터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맡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일본내 대표적 극우언론으로, 지난 2001년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을 주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문제의 역사교과서를 발행한 후소샤는 <산케이>의 계열사이다. / 신미희 기자
그는 해방된지 60년이 다 돼가고 또 당사자들이 대부분 사멸한 이 시점에서 이런 법을 만드는 목적이 뭐냐는 식으로 따지고는 그 저의에 북한을, 구체적으로는 북일수교 협상을 도와주기 위해 이런 법을 국회내 소장파들이 주도해서 만들었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같은 그의 시각은 분명 비뚤어진 것이다. 한국에 20여년을 산 그라면 그간 국내에서 친일청산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우선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 제정을 통해 북일수교협상 과정에서 북한을 돕기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그간 친일청산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거론된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내용은 우리처럼 일제치하를 경험한 국가 가운데 중국, 대만, 북한이 해방후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제대로 청산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들며 친일청산의 역사적 당위성을 주장한데 불과할 뿐이다.

특히 익명의 한국 외교부 관리의 발언을 통해 이 법 제정이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이 우려된다'고 한 주장은 특히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따지고 보면 그간 한일관계가 위기를 맞은 것은 늘 일본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도발언, 역사교과서 왜곡, 극우정치인들의 잇딴 망언 등이 바로 그것이다.

구로다 지국장은 4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프로에 출연, 친일규명법 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을 친북성향의 인사인 양 발언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구체적인 근거를 대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대해 '결과적으로 그런 것 아니냐'는 식으로 둘러댔다.(별도 <관련기사> 참조)

한편 <산케이>는 구로다 지국장의 해설기사에 이어 4일자 사설([주장]'반일특별법', 숨겨진 한국 발전의 진실)을 통해 이 사안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사설'은 한국이 일제통치하의 '통한의 역사'를 통해 후세의 교훈으로 삼으려는 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일본통치가 끝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에서 왜 이런 법을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구로다 지국장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사설은 이어 친일규명법이 "전쟁 이전의 일한관계 뿐만 아니라 전후의 일한관계 마저도 부정적으로 취급되고 있는 한편, 북조선의 공산 독재체제에는 진실의 눈을 돌리지 않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일본으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는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구로다 지국장의 해설기사에 이어 '사설' 역시 친일규명법 제정의 배경을 북한 문제와 결부시키는 등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누를 범하고 있다고 하겠다. 설령 결과적으로 이 법이 그같은 효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법제정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 보았다면 그같은 주장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의 선조가 과거 이 땅에서 저지른 죄악상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나 사과 한 번 하지 않으면서 한국측의 뒤늦은 과거사청산 노력을 왜곡된 시각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정도가 아니다.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을 폐쇄하라'는 주장은 이런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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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구로다 인터뷰] "친북경향 근거 뭐냐"에 "결과적으로 그런 것"

구로다 지국장이 쓴 관련 해설기사(3일자)와 4일자 '사설' 전문을 첨부, 독자들의 이해와 판단을 돕기로 한다.

한국에서 '반일법' 성립, 일제 통치하 '친일행위' 단죄--(3일자, 구로다 가쓰히로 작성)
- 북한의 강경자세 측면지원도


(서울=구로다 가쓰히로) 한국에서 2일 일제시대의 ‘친일행위’를 다시 단죄하여 역사에 기록하려는 '일제하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앞으로 3년동안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회가 관련 자료수집과 조사활동을 실시해서 보고서를 만들 계획인데 1945년에 일제시대가 끝난지 이미 60년정도 경과되어서 대부분의 관계자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법률의 취지는 겉으로는 ‘역사의 교훈으로서 후세에 전하기 위해’ 라고 하지만 한국은 일본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후 일제시대의 인적 유산을 활용하면서 국가건설이나 경제발전을 시도해 왔다. 때문에 그 중심이 됐던 보수층을 ‘친일파’로서 부정할 의도가 배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법률이 통과될 때까지는 ‘친일파’로 불러지는 일본 식민지 지배의 협력자의 범위나 기준 등을 둘러싸고 격한 논쟁이 있었다.

당초 구 일본군 장교 전체가 규탄의 대상이 되어 있었지만 보수파인 야당 한나라당이 ‘일본군 경력이 있는 고 박정희 대통령을 규탄하고 그리고 한나라당 차기 당 대표로 거론중인 (박 전 대통령의) 장녀 박근혜 의원을 실각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반발해 박 전 대통령은 해당되지 않은 ‘중령 이상의 구 일본군 출신’이라고 수정되는 장면도 있었다.

법안은 국회 다수파인 한나라당 의원이 대부분 찬성했기 때문에 통과되었다. 이것은 4월15일의 총선을 앞두고 각 의원들이 ‘친일파 규탄에 반대했다’고 해서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될 것이라고 판단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또 한국 현대사는 좌파나 친북세력으로부터 ‘친일파를 온존해 왔다’고 비난을 받았으나 거꾸로 ‘친일파를 청산했다’고 하는 북한의 역사적 우위성이 강조돼 왔다.

이번에 특별법도 좌파나 친북한과 비슷한 경향이 강한 소장파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앞으로 보수파 주도로 실현된 한일국교 정상화(1965년) 재검토 등의 움직임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어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이 우려된다'(한국 외무부 관계자)등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또 앞으로의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에 관련을 지적하는 움직임도 있다. 이들은 친일파 또는 보수파의 한일국교 정상화를 비판함으로서 ‘일본에 대한 강경한 자세를 측면에서 지원할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특별법에 의하면, 친일 반민족행위라는 것은 독립운동가의 탄압에서부터 일제 당시 조선총독부 등 행정기관에서 일정의 지위에 있었거나 전시중 전의(戰意)고양을 위한 활동 등 상당히 광범위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해방 직후에 특별법으로 이미 일부 처벌이 이루어졌으나 상당수의 사람들이 행정 경험자로서 정부기관 등에 기용됐다. 박 전 대통령은 고도 경제성장과 근대화로 현재의 한국의 발전의 기초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구 일본군 출신자 경력 때문에 좌익과 진보파 사이에서는 지금에 와서도 비판하는 의견이 있다.


'반일특별법', 숨겨진 한국 발전의 진실
[전문수록] 4일자 <산케이신문> 관련 사설

(다음은 4일자 <산케이신문>에 실린 관련 사설 전문이다...편집자 주)

한국에서 일본 통치시대 반민족 행위를 추적하여 단죄할 '친일 반 민족행위 규명 특별법'을 제정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회에 의해 앞으로 3년간 자료수집, 조사, 연구를 진행하여 그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공개할 예정이다.

조선반도에 대한 일본통치가 끝나고 벌써 60년 가깝게 지났다. 일본지배에 적극적인 협력을 한 여러 '친일파'를 시작으로, 당시 중심적인 인물들은 이미 이 세상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왜 친일파 규탄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감이 든다.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지배를 '통한의 역사'라고 기술, 후세의 교훈으로 하고자 하는 듯 하다. 그것은 이해 할 수 있다. 또한 한국 내부의 문제로 다른 나라가 이거다 저거다 라고 논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의 '친일파 문제'에 따르는 논의를 보면, 일본과 과거에 관한 여러가지 역사 인식의 문제나 1965년의 일한 국교정상화와 그 후의 일한 관계에 대한 평가에도 미묘하게 관계가 있는 듯 보여진다.

이것은 또 북조선의 체제에 대한 평가와도 얽혀 있다. 친일파 규탄은, 전쟁 이전의 일한관계 뿐만 아니라 전후의 일한관계 마저도 부정적으로 취급되고 있는 한편, 북조선의 공산 독재체제에는 진실의 눈을 돌리지 않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본으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 밖에는 없다.

먼저 친일파 규탄은 당연, 일본통치 시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암흑사관'에 서 있다. 그러나 작년 한국에서 출판된 작가 복거일씨의 평론집 <죽은 사람을 위한 변호-21세기의 친일문제>에서는, 일본 통치시대가 일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면도 있었으며, 그 시대에 대한 협력적인 삶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그 도움이 되었던 면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친일파 규탄은, 일한 국교 정상화와 일본과의 협력에 의한 경제발전이나 근대화에 성공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구 일본군 출신이라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비난, 그 업적에도 부정적이다.

한국이 인재나 제도 등으로 '일본지배의 유산'을 활용하면서 발전한 진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 반면 '일본'을 계속 거부하여 온 북조선에 대해서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번의 '반일특별법'을 계기로 일본과의 역사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논의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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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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