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첫 전파를 발사하다!

흥미로운 아마추어 무선의 세계

등록 2004.03.05 08:50수정 2004.03.0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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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햄(HAM:아마추어 무선)은 그야말로 '환상의 취미'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것이었으며 정부기관으로부터 특별한 허가를 받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다.


무전기는 북에서 온 간첩들이나 갖고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던 시대였으니 나와 같이 순수한 '민간인'들의 눈으로 보아, 무전기를 들고 다니며 혹은 집에 무전기를 설치해 놓고 아마추어 무선교신을 즐기는 것은 그야말로 선택받은 사람들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규모가 좀 있는 편의점이나 음식점, 또는 공사장 같은 곳에서 무전기를 갖고 다니며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무전기'가 특별하지 않고 일상적인 것이 된 것이다. 전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나의 눈에는 그 무전기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고 또 그것만으로도 전 세계의 아마추어 무선인들과 교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음. 저것 재미있겠군! 그래, 나도 한 번 해 보자!"

그 결심을 했을 때 내가 햄(HAM)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시험을 봐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일정시간 교육을 받으면 두 개의 시험과목이 면제되어 한 과목만 보면 된다고 한다. 수강료를 입금하고 교육날짜가 되기를 기다렸다.


"일정 교육시간 이수가 조건이니 대충 졸면서 받아도 되는 교육이겠지 뭐…."

이주일 동안 토요일과 일요일 총 4일을 꼬박 수강해야 했으나 이런 마음가짐이라 별 부담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교육이 시작되고 보니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쉬는 시간까지 쪼개 쓰며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하는 선생님들과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교육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강의실은 그야말로 펜 굴러가는 소리만 들린다.


분위기에 휩쓸려서일까? 학생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장학금을 받았겠다 싶을 만큼 귀 귀울여 강의를 들었다. 자체 시험을 봤는데 글쎄 백 점 만점을 받았다.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아직 진짜 시험이 남았다.

교육을 마친 다음 주 일요일 아침에 무선관리단에서 자격시험을 봤다. 예상외로 "쉽지 않다"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합격했다. 다음 주에 자격증을 교부받고 무전기를 장만했다. 다시 체신청에 무선국 허가신청을 해야 하는데 무전기를 산 곳에서 우편으로 대행해 준다고 한다. 열흘쯤 걸릴 거라고 하면서.

a 첫 교신을 성공시켜준 휴대전화같이 생긴 '핸디' 무전기. 중고를 산 것이다.

첫 교신을 성공시켜준 휴대전화같이 생긴 '핸디' 무전기. 중고를 산 것이다. ⓒ 이양훈

목에서 손이 나올 만큼의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콜사인(CALL SIGN)을 받았다. 이제 정식으로 아마추어 무선인(HAM)이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교신을 해 보자! 떨리는 마음으로 무전기를 잡는다. 주파수를 '호출주파수'에 맞춘 다음 힘차게 PTT(전파를 발사할 때 누르는 무전기의 버튼)를 누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CQ! 여기는 DS1QCI! 백사십오 쩜 오공에서 수신합니다!"
(CQ는 Come Quickiy의 약자로 불특정 무선국을 부르는 통신용어이며 "이 신호를 수신한 어떤 아마추어 무선국과도 교신하기를 희망한다"는 의미이다. 'DS1QCI'는 나의 콜사인이고 백사십오 쩜 오공은 수신 주파수를 뜻한다. 즉 "나(DS1QCI)는, 지금 내가 보내는 무선신호를 수신하는 그 어떤 무선국과도 교신하기를 희망하니 원하시는 분은 주파수를 145.050으로 맞추고 나와 교신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무전기에서는 아무 응답이 없다. 이 분을 쉰 다음 다시 또 말했다.
"CQ! 여기는 DS1QCI! 백사십오 쩜 오공에서 수신합니다!"
(교신 실무교재에 한 번 호출을 한 다음에는 이 분을 쉬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역시 아무 응답이 없다. 혹시나 싶어 산꼭대기로 올라가 'CQ'를 날려 보기도 하지만 무전기는 속절없이 아무 대꾸가 없다.
"에이~ 첫 술에 배부를 리가 없지. 다음엔 꼭 될 거야. 다음에 다시 해 보자."
아쉬움 속에 무전기를 끈다.

다음날 다시 시간을 내어 산꼭대기에 올라가 'CQ'를 날린다.
'CQ! 여기는 DS1QCI입니다. 백사십오 쩜 사공공(145.400)에서 수신합니다!'라고 얘기하고 이 분 기다리고 또 얘기하고 이 분 기다리고….

역시나 아무런 응답이 없다.

"'이 놈의 무전기가 고장인가…."
"송신이 안되는 거 아냐?"
"나는 영영 교신을 못하나 보다. 에휴~~~"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내려오는 중에 갑자기 무전기에서 치지직~~ 치지직~~ 'DS1QCI 여기는 DS1XXX' 하는 소리가 들린다. 상대국 콜사인의 뒷부호는 뭐라 그러는 지 하나도 들리지 않고 오직 'DS1QCI'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만이 귀에 들어온다. 바로 나를 부르는 소리다! 황급히 무전기를 잡아 들었으나 뭐라고 얘기해야 할 지….

그냥 책에서 봤던 대로 뭐라고 뭐라고 하기는 한 것 같다. 그런데 수신이 잘 안된다고 한다. 서둘러 신호가 잘 갈 만한 곳으로 이동, 다시 송신을 한다. 그래도 여전히 수신이 잘 안된다고 해서 어쩔줄 몰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리가 들린다.

'Break!' '여기는 'XXXXXXX'
'네! 들어오세요!'(처음 나를 불러준 무선국의 목소리임)

아주 깨끗한 목소리가 친절하게 이것저것을 알려 준다. 아마도 보다 못해 들어 오셨으리라.

처음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으나 나중에 조금 진정이 되자 서로의 콜사인을 확인한다. 처음에 교신을 받아준 OM은 'DS1OBC'이고 두 번째 'Break'를 하고 여러 가지를 알려주신 OM은 'DS1PRB'이다('OM'은 남자 아마추어 무선사를 일컫는 용어로 'Old Man'의 약어이다).

드디어 첫 전파를 발사하고, 비로소 본격적인 햄(HAM)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첫 교신의 감격을 안겨주신 두 분 OM님께 머리숙여 감사를 드린다.

a 2004년 3월 4일 저녁. 나의 첫 교신을 축하하듯 서울 경기 일원에는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폭설이 내렸다

2004년 3월 4일 저녁. 나의 첫 교신을 축하하듯 서울 경기 일원에는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폭설이 내렸다 ⓒ 이양훈


햄(HAM)의 진수는 단파를 이용해 전 지구적으로 교신을 즐기는 사람을 말하기도 하고, CW(모오스 부호)를 이용해 교신을 하는 사람을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제 겨우 '핸디'(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와 비슷한 무전기)를 갖고 첫 교신에 성공했을 뿐입니다. 무선통신의 선배님들이 보기에 아장아장 걷는 '걸음마' 정도이겠지요. 그러나 첫 교신의 감격을 가눌 길 없어 감히 글을 올리오니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홈페이지는 http://www.karl.or.kr 입니다.

덧붙이는 글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홈페이지는 http://www.karl.or.k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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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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