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명물 ‘병 아줌마’ 이야기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내가 만난 사람들(2)

등록 2004.03.05 06:39수정 2004.03.0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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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명물 병 아줌마 나이가 어림짐작으로 쉰다섯쯤 되었을까요? 병 아줌마에게 언젠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차에, 나이를 물었더니 “나도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자녀들이 시집 장가 간 걸 보면 대충 쉰다섯이 맞을 듯싶습니다.


병 아줌마는 말씀이 약간 어눌하지만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일년 365일 건강하십니다. 아침부터 저녁나절까지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부지런히 다니십니다.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완전 홍길동입니다. 얼마나 부지런한지 모릅니다. 여름이면 이집 저집 다니면서 김매주고 고추 지주 박아주고 온갖 잡다한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물론 공짜는 없습니다.

남의 집 허드렛일은 부업이고 본업은 병 주우러 다니는 일입니다. 소주병, 맥주병만 취급합니다. 교동전체를 이 잡듯이 다니면서 빈병을 줍습니다. 교동 사람이 마시고 버린 빈 술병의 절반은 병 아줌마 몫입니다.

우리 동네 명물, 병 아줌마
우리 동네 명물, 병 아줌마느릿느릿 박철
다니다가 열 댓 개 주우면 풀숲에 숨겨두고, 또 다니다가 열 댓 개 주우면 은밀한 곳에 숨겨두었다가 리어카를 갖고 와 한데 다 모아갖고 고물상으로 가지고 갑니다. 그게 애들 장난 같지만 그래도 수입이 제법 짭짤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허리춤에 늘 돈다발을 꽁꽁 묶어갖고 다닙니다. 길에서 만나면

“아줌마, 오늘 돈 얼마 벌었어요?”
“에이, 오늘 돈 하나도 못 벌었다. 어디 병 없나?”


우리 나라 사람들이 병 아줌마처럼 절약정신으로 산다면 이 나라가 매우 깨끗한 나라가 될 것이고 부자나라가 될 것입니다. 병 아줌마는 이따금 교회행사 때 와서도 밥만 먹고 가시지 헌금을 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도 늘 웃으시니 보기 좋습니다.


대룡리 시장에 가도 국밥 한 그릇 사 잡수시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돈을 모아서 뭘 하느냐? 돈이 몇 십 만원이고 목돈이 모아지면 아들한테 주고 며느리한테 준답니다. 본인이 그렇게 말하니 믿어야 할 밖에.

작년 겨울, 옷장사가 트럭에 옷을 잔뜩 싣고 나타났습니다. 바지며 치마, 점퍼, 스웨터 등등…. 확성기로 뽕짝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때 옷을 제일 많이 사신 분이 바로 병 아줌마였습니다.


“아줌마, 무슨 옷을 그렇게 많이 사요?”
“우리 며늘아기 줄 거다. 이봐라, 바지가 따뜻하겠지?”
“아줌마, 내 바지도 하나만 사줘요?”
“목사가 돌았나? 나 돈 없다.”
“그러지 말고 하나만 사줘요. 허리춤에 돈 있잖아요. 내가 다 알아요.”
“아니다. 돈 없다.”


병 아줌마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병 아줌마는 자기 몸을 치장하는 데는 한 푼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를 위해 옷을 사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오늘도 병 아줌마는 이른 아침부터 병 주우러 동네 골목골목 다닐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빈 병을 줍는지 몰라도 병 아줌마는 결코 모자라는 사람도 아니고, 남을 해코지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남이 하지 않는 일, 성가신 일을 일년 365일 유쾌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이 그 일을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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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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