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조선>은 저항의 역사"

방상훈 회장, 창간 84주년 기념사... "왜곡에 휘둘리지 말라"

등록 2004.03.05 13:58수정 2004.03.0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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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 (자료사진)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 (자료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일부 세력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우리를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제의 오랜 강압통치 속에서도 국민 계몽과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서 온 자랑스러운 조선일보의 '저항의 역사'는 송두리째 외면한 채, 극히 일부분의 굴절된 사례만 들먹이며 우리를 덧칠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방상훈 회장은 창간 84주년 기념식 기념사를 통해 <조선>의 친일 의혹과 관련한 일련의 문제 제기에 대해 강력 성토했다.

5일자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제하의 사설에서 "정치권력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독립언론에 대해 총공격을 퍼붓고 있다"고 비판한 데 이어, 그간 끊임없이 제기돼왔던 친일 문제를 일축하고 <조선>의 과거 행적을 일제에 대항한 '저항의 역사'로 규정했다.

방 회장은 특히 "우리의 과거를 호화롭게 포장해서도 안되지만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에 결코 휘둘려서는 안된다"면서 "어떤 세력이, 왜, 조선일보를 음해하고 있는지를 이미 잘알고 있는 국민들은 조선일보가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라의 중심을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며 특정 세력들의 정치적 목적에 굴하지 말 것을 역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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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84주년 기념식은 5일 오전 조선일보 정동 별관에서 열렸다. 이날 발표된 방 사장의 기념사는 크게 1)'조선일보 100년' 기획 전담 기구 신설 2)친일문제에 대한 견해 3)수평적 조직문화로의 변화 4)열린 신문으로의 전환 5)직원 '최고의 대우'에 대한 약속 등을 담고 있다.

방 회장은 우선 "앞으로 16년 후면 우리는 한국언론사상 최초로 창간 100주년을 맞게된다"면서 "사내에 '조선일보 100년'을 기획, 설계하는 전담기구를 만들어 미래 한국의 변화방향을 진단하고 그 속에서 조선일보가 맡아야 할 역할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방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조직문화의 탈바꿈을 주문하기도 했다. 방 사장은 "어떤 조직이건 '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어도 20%는 있어야 건강하다"면서 "상명하복으로 기사가 만들어지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후배들은 주저없이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선배들은 후배들의 이야기에 충분히 귀기울인 다음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수평적인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방 회장은 편집방향과 관련해서는 '이념 대립의 중재자 역할'과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눈높이를 맞출 것' 등을 주문했다.

그는 "적과 동지의 이분법이 극성을 부릴수록 우리가 앞장서서 양쪽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이념대립을 생산적인 논쟁으로 승화시키는 허심탄회한 중재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현장 기자들을 향해 "눈앞에서 진행되는 변화의 물결을 곁에서 지켜보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된다, 변화의 방향이 우리 신문, 나아가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든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 방향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방 회장은 이외에도 이날 기념사를 통해 직원들에게 ▲기자직 연수제도의 양적·질적 심화 확대 ▲부활된 업무직 연수제도의 차질없는 시행 ▲자발적 스터디 그룹에 대한 지원 등 '최고의 대우' 등을 약속했다.


다음은 방 회장의 조선일보 창간 84주년 기념사 전문이다.

조선일보 가족 여러분!

오늘은 조선일보의 여든 네 번째 생일입니다. 앞으로 16년 후면 우리는 한국 언론사상 최초로 창간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3.1운동 이듬해에 탄생한 조선일보가 걸어온 지난 84년 역사는 민족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보람과 희망을 만들어온 세월이었습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늘의 조선일보를 만들어왔듯이, 우리에게는 더욱 탄탄한 조선일보의 미래를 만들어가야할 책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미래란 없습니다. 미래는 생각하고 설계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그런 점에서 여든 네 번째 생일을 자축하는 한 편으로, 조선일보 100주년을 준비하고 설계하는 출발의 자리로 삼아야겠습니다.

저는 이를 위해 사내에 '조선일보 100년'을 기획, 설계하는 전담 기구를 만들 생각입니다. 사내외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될 이 기구는 미래 한국의 변화방향을 진단하고, 그 속에서 조선일보가 맡아야 할 역할을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이 기구는 변화의 새로운 세기를 맞아 2002년까지 조선일보가 추구해 가야할 비전과 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사원 여러분! 지금 나라가 처해있는 현실은 지극히 불투명합니다. 이웃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일본도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재도약을 향해 진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글로벌이라는 시대조류를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소리가 높습니다. 기업들은 짐을 싸 해외로 떠나고 있고, 사회 전반은 신용불량이다, 청년실업이다 해서 우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단합시키는데 앞장서야 할 정치는, 오히려 국민들의 갈등과 반목만 키우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를 둘러싼 환경 역시 대단히 어렵습니다.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일부 세력들은 목적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우리를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제의 오랜 강압통치 속에서도 국민 계몽과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서온 자랑스러운 조선일보 '저항의 역사'는 송두리째 외면한 채, 극히 일부분의 굴절된 사례만 들먹이며 우리를 덧칠하고 있습니다.

사원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호화롭게 포장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에 결코 휘둘려서도 안됩니다. 어떤 세력이, 왜, 조선일보를 음해하고 있는지를 이미 잘 알고 있는 국민들은 조선일보가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라의 중심을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특정 세력들의 정치적 목적에 굴하여 길을 비켜주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원 여러분! 모든 위기의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역사가 가르쳐주는 생생한 교훈입니다. 우리가 옳고 당당하다면, 어떤 외부의 공세도 오히려 우리를 일깨워주는 자극제에 불과할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변함없이 지켜왔고 100주년을 맞이하는 그 날까지 지켜나가야 할 불변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나라를 생각하는 신문 조선일보'일 것입니다. 그 방향을 향해 묵묵히 나아갈 때 많은 국민들은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사원 여러분! 이제 우리 내부로 눈을 돌려 보겠습니다. 3월 5일, 바로 오늘부터 조선일보는 시끌벅적한 신문사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조직이건 '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어도 20%는 있어야 건강합니다. 자기 논리를 갖고서 당당하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상명하복으로 기사가 만들어지던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후배들은 주저없이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선배들은 후배들의 이야기에 충분히 귀 기울인 다음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수평적인 문화가 자리 잡아야겠습니다. 의견 차이가 있을 때는 치열하게 논쟁하고, 결과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야 말로 조선일보를 새롭게 태어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열린 신문이 되어야 합니다. 적과 동지의 이분법이 극성을 부릴수록 우리가 앞장서서 양쪽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이념대립을 생산적인 논쟁으로 승화시키는 허심탄회한 중재자가 돼야 합니다.

특히 현장을 뛰는 기자 여러분들에게 당부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취재관행을 과감하게 버리고 여러분들의 동선(動線)을 획기적으로 바꿔야합니다. 눈앞에서 진행되는 변화의 물결을 곁에서 지켜보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변화의 방향이 우리 신문, 나아가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든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 방향으로 몸을 던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그동안 무시하고 지나쳤던 집단들의 작은 목소리에 몸을 낮춰 겸허하게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올 초부터 시작한 '우리 이웃'에 대한 사회 각계의 뜨거운 반응과 독자들의 열띤 호응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높이를 보다 낮추어, 어렵고 고통받는 국민들에 대해 눈과 귀를 더욱 활짝 열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진정 그 분들은 우리에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성원의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그것이 조선일보의 힘입니다.

사원 여러분! 회사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최고의 대우'에 대한 저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일부 재조정 단계에 있지만, 기자직 연수제도는 질적으로 심화시키고 양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는 방침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부활된 업무직 연수제도 또한 차질 없이 시행해 나가겠습니다.

더불어 '중국연구모임'처럼 최근 구성된 사원 여러분들의 자발적인 스터디그룹은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업무와 관련된 전문분야나 신문제작 개선을 위한 다양한 모임들도 생겨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모임들에 대해 회사는 최대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다시 한 번 창간 100주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창간 84주년을 맞이하자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래서 16년 후에 이 중의 누군가가 조선일보 100년 역사를 기록할 때 "2004년 조선일보에 일했던 선배들은 조선일보를 혁신해서 지금까지 부동의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역들이었다"고 자신있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합시다.

조선일보 가족 여러분! 오늘은 특별한 말씀 한 가지를 드려야겠습니다. 오늘 50주년 근속상을 받으셨습니다. 명예회장께서는 조선일보의 재정적 독립을 확고히 다짐으로써, 조선일보가 권력과 광고주 모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만드는데 가장 공이 크신 분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언론 자유의 바탕을 마련하신 분이 명예회장님이십니다. 사원 여러분의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근속상을 받으신 사원 여러분들께도 깊은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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