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문날인을 거부합니다"

[현장]주민등록증 지문날인에 대한 청소년 헌법소원 기자회견

등록 2004.03.07 18:12수정 2004.03.0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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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7일 만 17세의 청소년 세 명(전승호, 최선아, 이가빈)과 지문날인반대연대는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7일 만 17세의 청소년 세 명(전승호, 최선아, 이가빈)과 지문날인반대연대는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 김진석

얼마 전 미국이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외국인 입국 대상 지문채취 시행령을 내려 많은 이들이 미국의 정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천안의 한 평범한 17세 여고생이 열 손가락의 지문날인을 거부하며 동사무소로부터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았다.

주민등록증 제도가 시행된 이래 최초로 지문날인제도에 헌법소원이 제기될 예정이다. 7일 만 17세의 청소년 3명은 지문날인반대연대와 함께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8일 지문날인제도에 대한 헌법소원을 낼 것이라 밝혔다.

지난 99년 주민등록증 발급 과정시 날인한 지문을 경찰이 당사자 동의 없이 수사정보로 활용한 것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된 적이 있으나, 지문날인 제도 자체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후 헌법재판소는 경찰의 공권력에 대해 아직 위헌여부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우리는 지문날인을 거부합니다"

이날 기자회견엔 헌법소원을 제기한 만 17세 청소년 3명과 지문날인반대연대의 윤현식씨, 진보네트워크 센터대표의 이종희씨, 법무법인 지평의 이은우 변호사가 함께 했으며 일요일인데도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문날인 강요의 위헌 소지를 지적하며, 국민의 정보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주민등록제도에 대해 새로운 법 개정을 요구했다.

지문날인반대연대의 윤현식씨는 "국가의 지문날인 강요는 강제채혈과 마찬가지로 타당한 목적이 있고 그 수단 외 다른 수단이 없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라며 "지문날인은 굴욕적인 것임과 동시에 지문날인의 강요는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조항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a 천안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이가빈양

천안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이가빈양 ⓒ 김진석

이어 그는 "우리의 경우 17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열 손가락의 지문날인을 강요하면서 아무런 법률적 근거를 두고 있지 않아 이 점만으로도 위헌이다"며 "생년월일, 성별과 같은 개인정보를 노출시키는 주민등록번호의 강제 부여와 남용은 자기정보 통제권과 같은 정보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전승호(전라도 광주 17)군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노예가 스스로 노예임을 자각하면 희망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지문날인에 대해 잘못 됐다는 걸 자각했기에 앞으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친구들 중엔 손가락 열 개의 지문을 찍는 게 뭐 어렵냐"고 하지만, "이런 작은 것을 계기로 잘못된 제도를 바꿀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기 바란다"고 의의를 밝혔다.


이가빈(천안 17)양은 "지문날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고1때 사회교과서를 보고 처음 알게 됐을 때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다" 며 "다음 해 동사무소에서 지문날인을 할 때 비로소 불합리함을 피부로 느껴 거부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 소원상 절차가 복잡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은 친구들이 빨리 해결돼 우리도 지문을 찍지 않게 해달라고 많은 응원을 보냈다"며 "잘못된 제도가 빨리 바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어 서울에 거주하는 최선아(17)양은 "천안의 여학생 소식을 듣고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지문날인을 하는 것은 정보인권 침해이다"고 짧게 취지를 밝혔다.

"열 손가락 지문을 날인받는 나라는 지구상에 오직 한국뿐"

주민등록증의 지문날인제도는 68년 인권이 실종된 박정희 정권이 1.21사태를 겪으면서 예비군법과 함께 날치기로 통과된 개정법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만 17세 이상의 성인들이 법적 근거 없이 열 손가락 지문을 국가에 등록하는 곳은 지구상에 오직 한국뿐이다.

과거 일본이 재일동포를 포함한 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 제도를 실시했으나 우리 정부의 항의와 차별이라는 자각 아래 99년 완전히 철폐했으며, 이탈리아와 미국도 주민증과 운전면허증 등에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지난 해 5월 강금실 법무부장관은 "외국인을 잠재적 예비범죄자로 취급하면서 민감한 신체정보인 지문을 강제적으로 채취해왔던 관행이 후진적이었다"며 "2년 이상 거주목적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 폐지"를 지시했다.

기자회견에 자리한 이은우 변호사는 '법률유보의 원칙',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침해', '과잉금지의 원칙의 위배' 등의 법적 근거를 설명하며 헌법 소원의 적법성을 제시했다.

a 기자회견이 끝나고 취재진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

기자회견이 끝나고 취재진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 ⓒ 김진석

그는 "현행 열 손가락 지문날인 제도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대통령령에만 근거하여 이뤄질 수 있다"며 "오직 법적 근거 없이 시행령의 별지 서식에만 의해 기본권이 제한되고 있는 것"이 법률 유보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외국의 경우 지문날인은 범죄자나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타당한 목적을 가진 한도 내 체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며 "기본권 주체의 자유로운 행동과 사고에 관련된 지문날인 강요는 행복추구권과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그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그 제한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적절한 수단과 방법으로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며 "현 지문날인제도는 국민의 거주 관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주민등록법의 목적에 관계가 없으며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 적당한 수단과 방법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주민등록법 개정운동도 펼칠 것"

이미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쓰고 있지만, 관심을 갖고 기자회견장을 찾은 대학생도 있었다. 안진영(18)씨는 "평소엔 주민등록증에 관해 전혀 문제의식을 못 느꼈지만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며 "성인이 됐다는 생각에 아무런 의식 없이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았던 일이 괜스레 부끄러워진다"고 토로했다.

최준호(20)씨는 "자유라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생회를 비롯 친구들을 통해 현 주민등록증 제도의 문제점을 많이 알려 본 헌법소원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인권침해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됐던 '지문날인 제도'가 결국 위헌 심판대에 올랐다. 이번 헌법 소송을 계기로 전 국민 열 손가락 지문 강제 날인 제도의 위헌여부가 명확히 가려질 수 있을지 귀추가 지목된다.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6개 단체로 구성된 지문날인반대연대는(http://finger.or.kr) 지난 2001년 결성 후 전 국민 열손가락 지문 강제날인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활동해 왔으며, 앞으로도 헌소 제기와 함께 현행 주민등록법에 대한 개정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회견문]

주민등록증 신규발급대상자로서 헌법소원을 하며

만17세가 된 어느 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라고 날아온 통지서에는 열손가락 지문을 찍도록 되어 있는 용지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이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나이가 되었구나라는 실감을 느끼면서도 열손가락 지문을 찍도록 되어 있는 그 노란색 용지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사람도 같은 지문을 가지고 있지 않고,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확인하는데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정보는 함부로 수집되어서도 안 되고 이용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지문이 단 한 번만이라도 잘못 이용될 경우 지문을 가진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누구나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열손가락의 지문을 날인해야 합니다. 이러한 제도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국민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신의 모든 손가락의 지문을 찍고 이것을 경찰이 관리하면서 이용하는 행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 범죄자들만을 대상으로 수집하는 지문정보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수집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일본이 예전에 재일동포들에게 지문을 찍도록 했을 때 우리나라는 인권의 침해이며 차별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 법무부는 거주를 목적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지문을 찍도록 하는 것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그 제도를 폐지하도록 했습니다. 재일동포들과 외국인들이 지문을 날인하는 것이 인권의 침해라면 우리 국민들이 죄도 없이 무조건 지문을 찍는 것 역시 인권의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록 학생들이지만 우리의 인권은 우리가 지켜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당하게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지문날인을 강요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현재의 주민등록법에도 열손가락 지문을 찍도록 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을 위배하면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오늘 우리는 헌법소원을 청구합니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전 국민의 지문날인을 강요하고 있는 반인권적인 제도를 없애고 모든 국민이 자유로운 삶을 누리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지문날인 제도를 철폐해주실 것을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2004년 3월 7일  헌법소원청구인 일동

덧붙이는 글 [기자회견문]

주민등록증 신규발급대상자로서 헌법소원을 하며

만17세가 된 어느 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라고 날아온 통지서에는 열손가락 지문을 찍도록 되어 있는 용지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이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나이가 되었구나라는 실감을 느끼면서도 열손가락 지문을 찍도록 되어 있는 그 노란색 용지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사람도 같은 지문을 가지고 있지 않고,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확인하는데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정보는 함부로 수집되어서도 안 되고 이용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지문이 단 한 번만이라도 잘못 이용될 경우 지문을 가진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누구나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열손가락의 지문을 날인해야 합니다. 이러한 제도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국민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신의 모든 손가락의 지문을 찍고 이것을 경찰이 관리하면서 이용하는 행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 범죄자들만을 대상으로 수집하는 지문정보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수집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일본이 예전에 재일동포들에게 지문을 찍도록 했을 때 우리나라는 인권의 침해이며 차별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 법무부는 거주를 목적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지문을 찍도록 하는 것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그 제도를 폐지하도록 했습니다. 재일동포들과 외국인들이 지문을 날인하는 것이 인권의 침해라면 우리 국민들이 죄도 없이 무조건 지문을 찍는 것 역시 인권의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록 학생들이지만 우리의 인권은 우리가 지켜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당하게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지문날인을 강요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현재의 주민등록법에도 열손가락 지문을 찍도록 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을 위배하면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오늘 우리는 헌법소원을 청구합니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전 국민의 지문날인을 강요하고 있는 반인권적인 제도를 없애고 모든 국민이 자유로운 삶을 누리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지문날인 제도를 철폐해주실 것을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2004년 3월 7일  헌법소원청구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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