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예단과 북한의 음식 이종원
금강원 북한음식
온정각에서 뷔페로 먹을 수 있지만 왠지 북한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무려 25달러나 되지만 북한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에서 북한인이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은 색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음식을 먹어 주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50달러짜리도 기꺼이 먹을 수 있다.
메뉴는 도루묵튀김 3마리, 꿩만두 2개씩, 흑돼지 불고기, 석죽(홍합죽), 냉면이 전부다. 반찬은 김치와 금강산도라지, 고사리가 나온다. 맛이나 값으로 따지면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지만 북에서는 이것이 최고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도 남길 수 없었다.
고성 앞바다에서 잡아왔다는 도루묵은 두툼한 알을 씹는 맛이 그만이며 꿩만두는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쫄깃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흑돼지는 털을 잘 깎지 않아서 그런지 돼지털도 함께 넘어간다.
접대하는 아가씨에게 호칭을 어떻게 부를지 몰라 "선생동무"라고 외쳤다.
"혹시 이 돼지 흰 돼지에 검은색 물감 칠한 것 아닙니까?"
농담 한 번 했더니, 아주 정색을 한다.
"북에는 흰 돼지가 별로 없어요, 까만 돼지 맞습네다."
평양소주에 잔을 가득 채우고 통일을 기원한다.
"통일 만세."
"내가 지은 시 좀 들어보소"
일행 중에 시인이 한 분 계신다. 체코에서 샀다는 희한한 털모자를 쓰고 바다를 보러 나갔다. 달빛이 바다를 비추고 있는 장전항 선창가에 앉으니 뜨거운 시심이 올라온 것이다. 급히 수첩을 꺼내들고 시를 적어갔다. 순찰 도는 북한군이 그 모습을 본 것이다. 희한한 모자를 쓴 사람이 바다를 바라보고 글을 쓰고 있으니 수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동무 여기서 뭐하고 있소?"
"아-군인동무, 이리 앉으세요… 제가 쓴 시를 들어보세요."
시인은 목청을 가다듬고 금강에 대한 찬미가 가득 담긴 시를 읊은 것이다. 시 낭송을 마치고 초조하게 북한군인의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거저… 시 좀 잘 쓰시라요."
그 소리를 듣고 밤새 술을 퍼마셨다. 아마 시인은 북한에서 시집 한 권 팔지 못할 것이다.
해금강 호텔에서
북한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그냥 잠자기에는 왠지 허전하다. 해금강 호텔로 달려갔다.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호텔의 야경이 그림 같다. 그 앞에 있는 장전항은 큰 항구임에도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전력난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예이기도 하다.
해금강 호텔에는 주점이 있다. 필리핀 여자들이 남한 가요를 구성지게 부른다. 북한 땅에서 외국인이 남한 노래를 부르니….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귀면암과 통일계단 이종원
'통일계단'
만물상에 오르려면 급경사의 철제 계단을 올라야한다. 원래는 안심대 하늘문 쪽으로 길이 있었는데 길이 좁아 6개월 전에 새로운 등산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현대에서 자재를 대고 북한에서 노동력을 제공했다고 한다.
이 곳은 군사지역이라 헬기가 뜰 수 없어 북한사람들이 일일이 무거운 철제 계단을 등에 지고 날랐다고 한다. 남측관광객을 위해 이렇게 애를 쓴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난 이 계단을 '통일계단'이라고 명명해 주었다.
도끼와 삽을 멘 북한 일꾼들이 우리보다 먼저 산을 올라 꽁꽁 언 얼음을 깨어 미끄러지지 않는 등산로를 만들어 주었다. 하도 고마워서,
"선생동무 덕에 편안한 등산이 되었습니다."
배시시 웃으면서 '할 일을 한 것인데…'라는 흐뭇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이렇게 작은 일부터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면 통일이 빨리 올 것이다.
남북이 함께 통일의 노래를

▲만물상을 보고 만세를 외치는 회원들 이종원
만물상이 가장 잘 보이는 천선대는 10여명만이 서 있을 정도로 터가 좁은 곳이다. 우리 일행들이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하나가 되었다.
"안내원 동무… 우리 만세 삼창 외쳐도 되겠습니까?"
"좋지요…. 저희도 함께 하겠습네다."
우리 일행과 북한 안내원은 하나가 되어 만세 삼창을 외쳤다. 남쪽에서 매번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지만 이번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냥 "만세, 만세, 만세"를 목놓아 흐느꼈다. 무엇을 위해 만세를 외쳤는지는 각자 알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을 함께 불렀다. 그 감동이 금강산 1만2천봉 골짜기 곳곳에 메아리쳤다. 마음속엔 이미 눈물이 샘솟고 있었다. 북측안내원이 내 손을 꼭 부여잡고 한 마디 한다.
"통일되어서 다시 만납세다."
난 아직도 그 뜨거운 손길을 잊을 수 없다. 그 손길이야말로 냉전의 사슬을 끊는 화해의 손길이 아닌가?

▲온정각에서 아쉬움을 달래며 만세 삼창을 외쳐본다. 이종원
북한을 떠나며
온정각이다. 마지막으로 금강의 비로봉을 배경으로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통일 만세! 만세! 만세!"
이제 몇 시간 후면 남한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변함없이 우리의 일상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린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이번 여정을 통해 1만2천 봉우리 중 각자의 봉우리 하나씩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통일의 시대가 다가올수록 우린 그걸 자주 꺼내 봐야 한다. 그 곳엔 봉우리의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포의 눈물과 한숨소리도 함께 묻어 있다.
그 단단했던 금강산의 얼음도 계절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남북의 뜨거운 열정이 금강산의 얼음을 녹이고 있다. 50년 동안 얼어붙었던 동토는 이제 화해와 용서로 녹아 가고 있다.
통일을 앞당기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주 금강산을 찾아가는 것이다. 외면의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내면의 슬픔도 함께 발견해야한다. 금강산 여정은 눈으로 재미를 느끼는 관광이 되어서는 안된다. 50년 동안 얼어붙은 눈물과 한숨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그 눈물은 사랑만이 감싸줄 수 있다. 그 숙제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통일은 더욱 가까워지지 않을까?
'오늘의 만세 외침을 잊지 말자'.
'만물상을 바라보며 불렀던 통일의 노래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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