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에서 봄을 느낍니다

야생화 몇 송이를 사서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등록 2004.03.08 11:29수정 2004.03.08 13:3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큰 눈이 내렸습니다. 오래 전부터 화분 하나 사오라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돌려세우고 지내다 모처럼 맞은 쉬는 토요일, 다시 꺼내든 아내의 화분타령에 못 이겨 아침에 양재동 꽃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워낙 무얼 키운다는 것에 자신이 없는 우리 집 식구들입니다. 몇 번 선물로 받거나 사 왔던 식물들을 얼려 죽이거나 말려 죽이고 썩혀 죽인 차라 다시 집안에 새로운 '식구'를 데려 온다는 것은 솔직히 제 마음에 그다지 다가서지 않던 일입니다.

그러나 시장의 꽃들은 너무 예뻤습니다. 부지런한 주인들의 손길 때문이었는지 신선한 잎새들과 제각기 다른 꽃잎들은 또 제각각 다른 향기를 내뿜으며 곱디고운 자태들을 하고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화려한 꽃잎은 그 꽃잎의 자태 때문에, 너무 큰 나무는 집안의 협소함 때문에 안되겠다 싶어 이리 저리 배회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사지 못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제 눈에 작은 화분들 몇몇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워낙 제가 원해서 한 행차가 아니었던 고로 제 심드렁함이 겉으로 드러나 아내가 막 알아차리려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 발길을 잡아 끈 것은 이름표에 예쁜 이름을 달고 있는 '아기별꽃' 화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누운 아기별꽃' 화분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기별꽃도 낮은 꽃대를 지니고 있었지만 누운 아기별꽃은 아예 꽃대도 없이 그냥 잎새에서 핀 별 모양의 작은 꽃잎이 너무 가냘퍼 예뻤습니다. 쪼그려 앉아 한참을 구경하다가 냉큼 2천원씩을 주고 두 개의 화분을 샀습니다.

사고 보니 누운 아기별꽃이 작은 화분에 터질 듯 심겨 있어서 안된 마음에 궁리를 하다가 조금 큰 화분에 옮겨심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작은 접시처럼 생긴 질그릇 화분을 골라 옮겨 심으려다 보니 또 화분이 너무 커서 걱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쪼그려 앉아 세 개를 더 골랐습니다.


꽃대가 나오지 않은 흰붓꽃, 큰 꽃대가 나온 노루귀 한 송이, 그리고 분홍색 꽃잎이 예쁜 설난 한 송이 이렇게 다섯 송이를 한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가운데 설난과 노루귀 그리고 옆에 흰분꽃을 심고, 가장자리에 아기별꽃과 누운 아기별꽃을 심고 흙이 드러난 부분을 돌이끼로 채웠습니다. 그 화분을 받아 든 순간 정말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 중에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꽃들은 곧 작은 세계를 이루어 제게 말을 건네는 듯 합니다. 하나씩 떨어져 있을 땐 느껴지지 않던 조화의 기쁨이 제게 밀려옵니다.


원래는 야생의 꽃이었으나 이렇듯 한 그릇에 담겨져 보는 이에게 큰 기쁨을 주는 우주가 되기도 하는구나. 너무 큰 꽃들에 가려져 작은 꽃들이 아예 보이지 않거나 화려하고 큰 관상수들의 그늘에서 겨우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이 작은 꽃들에게도 다른 꽃들과 같은 개화의 아픔들을 인내하고 지내온 시간들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많은 햇빛이 필요하고 또 물은 일주일에 두세 번 흠뻑 주어야 하며 따뜻한 날은 바람에 놓아야지 적당한 운동도 되고 잎새와 꽃대가 건강하다는 주의사항들을 들으며 집에 도착하여 부산을 떨었습니다. 식탁 위에 올려놓고 스프레이 한 통을 다 쏟을 뿌릴 때까지 물을 주고 흙과 잎새들을 꼭꼭 눌러주었습니다.

마침 큰 눈 끝의 햇살이 베란다 창을 통해 들어와 거실까지 비치길래 거실 한켠에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화분을 놓아두었습니다. 천리향이나 허브처럼 짙은 향기를 내뿜는 꽃들도 아니지만 바라볼 때마다 새록새록 미시의 우주가 눈에 들어오는 듯 어느 순간에는 저를 꽃들이 만발한 푸른 들판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높은 산 숨어 피는 야생의 깊은 계곡으로 절 데려가기도 합니다.

햇볕을 느낍니다. 거실에 앉아서도 꽃을 보며 구름이 햇볕을 가렸구나 느끼기도 합니다. 밖에 나가서도 하늘을 보지 못하는 제게 하늘의 해와 구름의 움직임을 느끼도록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화분 하나가 이렇듯 참 많은 것들을 제게 줍니다.

더 따뜻한 봄이 오면 같이 외출도 해볼 생각입니다. 볕이 잘 드는 양지를 골라 앉아 같이 볕을 받으며 봄을 느끼고 겨우내 안녕한 모든 식물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무슨 꽃 하나에 이리 수선이냐며 타박할는지 모르겠지만 참 많은 것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꽃 하나에 계절이 바뀌고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집니다. 참 기쁜 아침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