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이지 못한 사람이 바로 장애인"

[인터뷰]장애 딛고 대전 음악학원 원장된 한영구씨의 홀로서기

등록 2004.03.10 08:55수정 2004.03.1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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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영구 원장.

한영구 원장. ⓒ 권윤영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비하하거나 낮출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장애라고 느끼기 이전에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무언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길들여진 작은 습관을 고치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장애를 극복하는 일은 오죽할까. 대전 삼천동에서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한영구(50) 원장은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금의 단아하고 밝은 미소는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의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결과다.

그녀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고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철모르던 친구들의 놀림도 많이 받았고, 세상에 대한 원망도 컸던 그녀가 장애를 이겨낼 수 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어릴 때 가정 형편도 어려웠습니다. 부모님이 뒷받침 해줄 형편이 안됐었죠.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내 모든 상황을 극복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지요.”

공부를 곧잘 하던 한 원장은 학창시절, 의대 진학의 꿈을 키웠다. 집에서 의대나 약대 진학 시에만 대학을 보낼 줄 수 있다고 말했던 터였다. 하지만 시험을 치른 후에도 면접시 "실습 때문에 안 된다"라는 이유로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렇게 3년 간이나 공부를 하다가 결국 포기, 방송통신대에 입학을 했다.

그녀는 이어 편입을 준비했다. 편입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시험에도 합격했지만 지난 82년 즈음 편입이 없어졌다. 항상 배움에 목말랐기 때문이었을까. 새로 시작하자는 마음에 또 다시 대입을 준비했다. 수강료가 비싼 학원은 꿈도 꾸지 않았다. 혼자의 힘으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교육방송으로 입시공부를 대신했다. 그리고 10여년 만에 피아노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됐다.


한 원장은 방송통신대에 들어가면서 고교 시절부터 배워왔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피아노를 배우는 일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넉넉한 가정이었으면 마음 편히 좋은 선생님 밑에서 배울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친구 언니, 심지어는 자신보다 어린 초등학생에게까지 찾아가 피아노를 배웠다.

“자존심은 일체 세울 수가 없었어요. 피아노를 만지고 연습하기 위해서는 교습비를 조금 내고도 배울 수 있는 초등학생이라도 상관없었죠. 마음속으로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사자성어를 되새겼습니다. 내가 남들보다 늦게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더 오래 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한 원장은 음대 입학 전부터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피아노를 배울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학기 중 틈틈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학비를 마련했고 과제도 열심이었다. 성적 장학금은 그녀 차지였던 것은 당연하다. 대학 졸업 후 알뜰히 모은 돈으로 피아노 교습소를 차렸다. 7년 정도 기반을 닦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한 원장이 워낙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a 한 원장은 피아노를 전공하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우여곡절이 이겨냈다.

한 원장은 피아노를 전공하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우여곡절이 이겨냈다. ⓒ 권윤영

“아이들에게 음악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주기 위해 놀이를 통한 교육을 개발했어요. 재밌는 놀이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필요한 교구를 일일이 만들었죠. 학원 운영을 하며 밤을 낮 삼아 일하기도 했어요.”

장애로 걷는 것이 힘들었던 한 원장은 피아노 폐달을 밟는 일도 다소 벅찬 일이었다. 연주회 무대에 설 때마다 사람들 앞에 걸어 나가는 것도 두려웠다. 그러나 새벽까지 남들보다 두 세 배는 열심히 연습한 나들이 이어지고,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한 결과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현재 한 원장은 고관절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워낙 어려움을 많이 겪어온 터라 이제는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열심히 살아온 나날들, 한 원장은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밝혔다.

“자기 철학을 가지지 못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장애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배경이 좋아서 제가 이 위치에 올랐다면 그건 불행한 게 아닐까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지금처럼 하나하나 일궜을 때 담대함과 당당함을 갖추게 되는 것이죠.”

덧붙이는 글 |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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