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들의 정치적 스피커 되겠다"

[인터뷰]민노당 비례대표 1번 선출된 심상정 중앙위원

등록 2004.03.16 10:31수정 2004.03.1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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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례대표 선출 후 오마이뉴스와의  첫 인터뷰를 가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선출된 심상정 중앙의원

비례대표 선출 후 오마이뉴스와의 첫 인터뷰를 가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선출된 심상정 중앙의원 ⓒ 김진석

비례대표 선출 전부터 이미 화제를 모았던 한국노동운동의 현장지기 심상정(45·민주노동당) 중앙위원. 그가 모든 이의 예측대로(?) 민노당 원내 진출의 '보증수표'임을 입증했다.

지난 15일 우리 정당 사상 최초로 진성당원들의 투표로 비례대표를 뽑은 민노당에서 그는 비례대표 후보 1순위를 배정받았다. 심 위원장은 이날 저녁 기자와의 만남에서 "예측하지 못했다. 오히려 언론의 관심이 역으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고 차분히 첫 감회를 밝혔다.

하지만 차분한 그의 말투가 "기대를 걸고 있는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보 정치를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힘차게 바뀌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철이 든 1980년부터 20여 년 이상 노동운동 현장에서 오직 '외길'을 걸었던 심 위원. 그는 85년 6월 한국노동운동사에 획기적 장을 마련한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하고,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결성 등에 참여한 한국노동운동의 기념비적 인물이다.

그 후 서노련에서 심 위원은 지금의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 박노해 시인 등과 만나 같이 뜻을 모으기도 했으나, 이내 서노련은 이념 충돌로 분해되고 말았다. 결국 모두 제각기 이념의 실현을 위해 다른 무엇을 찾아 떠났지만 심 위원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노동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 그는 지난 20여 년간 몸으로 직접 체득한 노동(생활) 현장의 목소리를 안고 국회로 나가려 한다. 심 위원은 탄핵정국에 대해 "오히려 국민들은 그들이 열망하는 진보 정당의 옥석을 가리는 전환점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짧게 평했다.

다음은 15일 저녁, 심 위원과 여의도 선거 사무실에서 나눈 일문일답이다.


"탄핵안 가결, 최대 피해자는 국민"

- 우선 민노당 비례 대표 1번으로 선출된 소감은 어떠한가?
"부담스럽다.(웃음) 표가 앞설 때조차도 섣불리 예측하지 않았다. 민노당을 대중에게 알리는 '귀중한' 자리기에 그리 쉽게 선출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선출되기 전부터 당선을 장담하는 언론의 기사들이 역으로 부담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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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지역유세를 통해 처음으로 노동운동 현장 밖에서 만났던 당원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다른 정당들에 비해 비교적 척박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진보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승리의 염원을 뼈저리게 확인했다. 지난 20년 이상 노동운동을 하며 외길을 걸었던 경험들이 당원들에게 믿음을 준 것 같다.

당원들의 진지한 눈빛을 보며 반드시 그 열정에 화답해야겠다는 확신과 부담을 느낀다. '여성'과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 '여성의 정당', '노동 운동의 정당'을 실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 탄핵안 가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미 많은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국민의 70%가 탄핵안 가결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우리 또한 정당의 당리당략을 위해 탄핵안을 가결시킨 두 야당의 정치적 선택에 비판을 제기한다. 본 탄핵안 가결은 4·15총선을 앞둔 보수정치 세력들의 생존을 건 무리한 권력 다툼에서 비롯됐다.

직접적으로는 두 야당이 탄핵안을 가결했지만, 동시에 그 상황을 막지 못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또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혹 사람들이 '양비론'이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이는 '양비론'과는 엄격히 구분된다.

어느 한 쪽만의 일방적 잘못이 아닌, 두 야당과 노 대통령 양쪽 모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엄연히 둘 다 잘못했음을 냉정하게 지적하고 싶은 것뿐이지 결코 양비론을 취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 3·12로 인해 지난 대선(정몽준사태)처럼 민노당의 표가 열린우리당으로 향할 우려가 있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탄핵안 가결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었다. 행여 본 사태로 인해 이번 총선이 자칫 친노와 반노로 나눠질까 우려되기도 하지만, 아직 한 달이라는 여유가 있기에 현명한 국민이 냉정하게 판단을 내려줄 거라 믿는다.

지난 대선의 정몽준 사태처럼 국민들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할 틈조차 없었던 그런 긴박한 상황과는 다르다. 당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민생'을 저버린 현 정치 세력을 보며 국민들이 뭔가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탄핵안 최대의 피해자였던 국민의 민생 안정을 위해 과연 어느 정당이 함께 고민하며 살 방안을 마련하는지 민노당이 보여줄 것이다.

오히려 이번 사태로 인해 국민들은 그들이 열망하는 진보 정당의 옥석을 가리는 전환점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며, 동시에 민노당도 '위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과 노동운동은 발전적 보완의 관계"

- 현장 노동운동가에서 정치가로 삶의 방식을 전환(?)한 것인가?
"실제로 사람들이 나에게 이젠 노동운동을 접고 정치를 할 것이냐고 물어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설마, 제가 철이 들었을 때부터 시작해 20년 넘게 해오던 노동운동을 그만둘 리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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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성

얼마 전까진 노동자가 정치 얘기를 하면 감옥에 잡혀가는 시대였기에 이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다소 흐르긴 했지만, 여전히 노동자, 농민, 서민, 여성들에겐 정치가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럴수록 현장에 있는 그들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정체성을 자각할 수 있게 돕고 싶다. 불행한 시대와 환경으로 어쩔 수 없이 차단된 그들의 정치적 창구를 대신해, 정치와 우리 노동자의 삶이 결코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겠다."

- 그간 한국의 노동운동은 '남성 중심적' 운동이었다.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노동자로서 서로 충돌할 때는 없었는지.
"그간 한국의 노동운동 속에는 여성이 배제돼 있었다. 첫 노동운동을 남성 주도로 시작해 그간 노동운동의 투쟁 방식(임금 중심의 기업 분배교섭)에 '여성'은 없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물론, 수많은 충돌이 있었다. 대회의를 할 때에도 300명의 임원 중 나 홀로 여자였고, 또 시집가면 그만이라는 시대적 편견으로 인해 간혹, 난 그들과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서도 거부당했다. 그럴 때마다 좌절감을 겪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끝까지 여러 번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려 했다. 그 결과 2000년 민노당의 출현과 맞물려 여성 노동자들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또 민노당과 그 성장을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사회 활동을 하지만, 동시에 실제 현 가정에서 갖는 위치(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로 인해 발생하는 충돌은 없는가?
"많다. 왜 없겠는가. 아침이면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밤이면 아이 찾으러 다니고, 아이가 아프면 둘도 없는 죄인이 돼 버린다. 그 외 다른 역할은 민주적인 남편의 지원으로 큰 힘을 얻고 있다. 물론, 우리도 처음부터 남편이 그랬던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민주적 사고는 갖고 있어도 그도 한국 남자인지라 막상 생각이 실천으로 옮겨지기까지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살림 중 10분의 7을 도맡아 할 정도이며, 아이 또한 나를 전폭적으로 이해해주고 지원해준다. 언젠가 아이가 엄마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간의 설움과 고생이 눈녹듯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 '결혼'과 '노동운동'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화가 가능했던 연유는 무엇인가?
"우리 때만 해도 노동운동을 하려면 '희생'과 대단한 '헌신'이 필요했기에 결혼이라는 것이 특히, 여성으로선 양립하기 힘든 것이었다. 때문에 결혼도 늦은 34살에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껏 내가 제일 잘한 것을 꼽으라면 난 결혼을 꼽는다.

노동운동을 하다 보니 내가 그들 삶의 애환을 느끼기에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노동자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결국 그들 가족의 삶을 내가 직접 겪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고, 몸소 체험한 결과 아이와 가정 내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실제로 배우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노동자들의 삶은 다름 아닌 노동자 가족 안에 있었고 나 또한 실제 이룬 가족을 통해 그들과 똑같은 애환과 경험을 갖게 됐다. 가족과의 삶을 기반으로 노동운동의 의지를 다지기도 하고 또 노동운동의 일상이 가족 안으로 자연스레 전이되면서 그 둘은 서로 발전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보완적 관계가 됐다."

a 15일 오전 11시. 비례대표에 선출 된후 기자회견을 가진 심상정 중앙의원

15일 오전 11시. 비례대표에 선출 된후 기자회견을 가진 심상정 중앙의원 ⓒ 김진석

"20여 년의 생생한 현장 경험으로 '절대다수' 여성을 대변할 것"

- 한동안 논란을 빚었던 여성 전용 선거구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반드시 정치의 민주화와 함께 가야 되는 것이지 결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전용선거구제로 인해 당선 가능성 높은 역량 있는 여 정치인들이 지역구로 강제 배정될 뻔했다. 또,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여성들의 정치 경쟁력 강화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정작, 남성 중심적 국회의 근본적인 사고와 제도의 전환 없이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여성전용선거구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역사이며, 결국 정치권의 정문과 대문은 걸어 잠근 채 그저 여성들에게 뒷문만 살짝 터준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 먼저 국회에 진출한 기존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면.
"개인적 성실도와 능력 면에선 여성 정치인들이 실제 여러 조사 결과를 통해 남성 정치인들을 제치고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 또한 그분들 개개인의 능력이나 성실성에 대해선 높은 점수를 주고 열심히 잘해주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생활(노동) 전선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 과연 그 분들이 얼마나 여성의 권익을 대변하려 했는지에 대해선 인색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여성 노동자들의 생리 휴가를 폐지하는 법률안에 여성 정치인 5인이 찬성표를 던졌고, 또 호주제 폐지 법률안에 여전히 찬성표를 던지지 않는 여성의원이 있다.

그렇다고 그 분들 개개인의 능력과 성실도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아마도 소속돼 있는 보수정당의 세력과 생활 전선 출신의 여성이 아닌, 든든한 배경(의사, 변호사, 교수 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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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 먼저 진출한 그들과 '차이'를 보여줄 비교우위가 있는가?
"지난 20여 년간 생활 전선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과 똑같이 호흡하며 살아왔다. 그들과 함께 가정을 꾸리고 또 같은 경험을 나누며 생생한 현장의 경험을 쌓아왔다.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바로 생활 전선에서 뛰며 살아가는 여성 노동자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대변할 것이라 자신한다."

"민노당의 발전은 한국 정치 성장과 일치"

- 17대 총선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 진보 정당의 원내 진출이 최초로 이뤄지는 '역사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진정으로 국민의 정치 개혁 열망을 담은 진보 정당의 출현은 '발전'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비록 수적으론 소수에 불과할지 몰라도, 그간 정치에서 소외당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을 위한 '스피커'가 국회에서 처음으로 마련될 것이다."

- '민노당은 대중적 지지 기반이 약하고 비현실적이다'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이런 불안의 목소리를 어떻게 잠식시켜줄 것인지 궁금하다.
"민노당은 이제 갓 네 살배기다. 그간 한국 정치는 양 날개가 아닌 외날개로만 지탱해 왔다. 남성 중심적이며 보수화된 일관적 정치로 해방 후 50년을 보내왔다. 이제 막 점진적으로 민주화가 실현되면서 정치에서 소외됐던 노동자, 농민, 서민 여성들이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과연 '현실적'과 '비현실적'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는 현 정치 구조가 다양한 진보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비현실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인류와 정치는 반드시 앞을 향해 발전해나간다. 분명, 우리 당의 발전은 한국 역사와 정치적 성장과 일치할 것이다.

우리는 기존 정당이 보여준 '레슬링'과 '담합'이 아닌 서민을 위한 정책으로 승부를 펼칠 것이다. 단, 상대적으로 국민들에게 민노당의 활동 정보가 다른 당에 비해 적게 소개돼 그것이 아쉽기도 하다.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언론의 문을 두드리겠다.

두고 보면 알지 않겠는가. 민노당은 현재 가장 민주적인 정당으로서 다른 당과 '비타협적으로 국민들의 이해를 가장 잘 반영'시킬 것이다. 본 총선 진출을 계기로 2008년엔 민노당의 수적 팽창도 점쳐 본다."

-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있다.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장애인, 비정규직 근로자, 여성 등 그간 국회에 마련되지 않은 정치적 '스피커'를 이번 총선을 통해 확실히 확보해둘 것이다. 그간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된 사람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입과 발이 되겠다. 믿고 맡겨 주시면 진보 정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드리겠다! 기대해도 좋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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