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따라 부르는 금문교 진혼곡

금세기 미완의 실존적 죽음을 애도하며

등록 2004.03.18 10:44수정 2004.03.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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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교. 그는 오늘도 태평양 바람을 홀로 맞으며 묵묵히 서 있다. 숱한 사연을 안고 선 '영혼의 다리'를 바라보면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볼 때마다 새로운 그대 금문교여.

미국 개척정신의 표상이기도 한 이 다리가 1937년에 완공을 본 이래 1200여명이 다리 밖으로 몸을 날린 자살의 명소라는 사실이 새롭다. 한달에 1.5명 꼴로 떨어졌으며 전체 자살자 중에서 24명만이 구조되었다. 그들은 왜 몸을 던지는가.


다리 위를 걷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탁트인 바다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에 취한 나머지 극치의 환희를 느끼고 그 최상의 행복감을 간직하기 위해 생의 종결을 선택하였을까. 67m 허공에 나르는 동안 허망한 날개짓에서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해면에 부딪친 육체는 상어 서식지인 수심 120m 아래를 미처 유람하기도 전에 영하의 차가운 수온에서 얼었으리라.

a 안개 자욱한 금문교 전경

안개 자욱한 금문교 전경 ⓒ 코비스 제공

금문교는 탄생부터 그러한 불행을 예고했다. 4년간의 공사기간 동안 중국인 40여명이 물에 휩쓸려 사망하였기에 중국인들은 '영혼이 담긴 다리'라 부르고 있다. 금문교 공사는 깊은 수심과 빠른 물살 그리고 안개 지형 등의 이유로 난관에 봉착했는데 이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이 설계가 조셉 스트라우스였다.

그는 당시 뱅크 오브 어메리카의 지아니니 은행장과 담판을 벌인 끝에 지상에 영원히 남을 다리를 건설하겠다고 설득해 600만달러의 자금을 끌어냈다. 대형선박의 통과를 위해 해군측에서 다리의 높이를 더 위로 끌어 올렸고 그것이 하늘에 뜬 듯한 원경(遠景)을 이룬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준공을 1년 앞두고 63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만다.

안개 짙은 금문교. 안개는 어디서 오는가. 차가운 캘리포니아 해류가 남하하여 따뜻한 남쪽의 열대성 난류와 만나므로 온습한 공기가 냉각되어 발생한다. 본격적인 안개의 비밀은 바닷속의 해류 변화에도 있다. 일반적으로 차가운 해저 2-3백 미터의 중층 해류가 상승하는 소위 연안 용승 현상으로 차가운 해면과 온습한 아열대성 무역풍이 만나 안개가 발생한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베이는 수십만년 전에 형성된 화산의 협곡이 침강한 지형이므로 아직 화산대에 묶여 있고 이로 인해 얇은 지각으로 형성된 해저에서는 아직도 용암이 분출한다는 것이다. 따뜻한 기운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른바 역 용승 작용으로 따뜻한 해면과 한랭한 북태평양 공기가 만나면서 강한 저기압이 형성되어 여름날 새벽과 저녁의 짙은 안개를 지어낸다.


그렇게 생성된 안개는 편서풍을 타고 내륙으로 들어서 고속도로 280의 주변 숲길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참으로 자연의 오묘한 조화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무거운 안개 중심은 바람에 실려 샌프란시스코 반도에 침공해 골든 게이트 파크에 쳐들어 오고 필모아 거리에 스며든다. 유서 깊은 영사관 건물을 넘고 한인 회관의 음산한 지붕을 덮으며 남진한다.

안개 속에 쉽게 보이게 하기 위해 칠한 주홍빛 인터내셔널 오렌지 칼라. 후버 대통령이 대공황기를 극복하는 상징물로 지었다는 금문교. 그 맞은 편에 니콜라스 케이지와 숀 코네리 주연의 영화 <록 The Rock>의 무대이자 시카고 마피아인 알카포네가 수감되었던 지옥의 섬 알카트레츠가 유령의 형상을 하고 서 있다.


깎아지른 절벽과 빠른 유속을 무기로 하였기에 30년간 14회에 걸쳐 36명이 탈옥을 시도했음에도 실패의 회한을 안겼으며 오직 3명만이 '쇼생크의 탈출' 의혹을 남겼다. 눈만 뜨면 보였던 샌프란시스코의 현란한 야경이 철창에 갇힌 그들에게 정신적인 고문을 가하며 자유 세계로 유혹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얼마나 지독한 역설이냐. 필사의 탈출로 살아나려고 죽음의 바다와 싸우는 자가 있는가 하면 시퍼런 삶을 미련없이 접고 뜬금없이 하늘로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극적 대비를 보이는 항만의 건너편 금문교 입구 남단에는 국군 국립 묘지가 쓸쓸하게 누워서 먼바다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다. 그 곳에 한 때 진주만의 태평양 함대를 호령했던 해군 사령관 윌리암 니미츠 제독이 또한 잠들어 있다.

길이 2.8km. 주탑 높이 227m. 삼성동 무역센터의 키를 자랑하는 현수교. 미국 토목 공사의 7대 불가사의이자 교량 공학의 새로운 이정표로 상징되는 당대 최장의 교각 간 거리. 공사비 3500만달러. 지구를 몇 바퀴 돌았다는 수만 가닥의 구리선으로 연결된 케이블의 힘은 풍속 100마일과 강풍과 진도 8.3의 강진에도 견디는 단단한 근육질의 다리를 만들었다.

a 노을에 잠긴 금문교의 모습

노을에 잠긴 금문교의 모습 ⓒ 코비스 제공

앞으로도 자살 지원자들은 경비대의 순찰을 피해 끊임 없이 난간 주변을 배회할 것이다. 이름도 없이 스스로 하늘로 사라져 간 자살자들의 영혼은 과연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 몬 저 무채색의 우울한 향연이여(프랑스 작가 카뮈의 이방인은 작열하는 태양빛 때문에 방아쇠를 당겼다). 짙은 안개의 소용돌이에 껍질을 훌훌 벗어 던질 만큼 삶은 그토록 공허와 부조리에 가득 찼던가. 그들의 종착역은 어디였을까. 바닷속 무릉도원이었을까. 피안의 산호초 마을이었을까.

연기처럼 길게 드리워진 연막의 안개밭 속에 낭만처럼 사라져 간 시대의 반항아들이여. 샛별처럼 멀어져간 아웃사이더의 물결이여. 1200여명. 그대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최고의 다리에서 최상의 환희를 맛보았기를 바라며 필자는 오늘 다리 앞에 서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금세기 미완의 실존적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봄이 오는 샌프란시스코. 봄을 시샘하는 거센 비바람은 금문교 철책 난간에 사정없이 몸을 던지며 소리내어 울고 있다. 바다향 그윽한 꽃다발 앞에 두손 모아 침묵의 진혼곡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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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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