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는 없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현장] 백범선생 암살 진상규명 방미 조사단 기자회견

등록 2004.03.18 18:41수정 2004.03.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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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8일 느티나무 카페에서 '백범암살 진상규명 방미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18일 느티나무 카페에서 '백범암살 진상규명 방미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 김진석

"결과적으로 백범선생 암살과 관련된 모든 서류는 이미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삭제되었습니다. 때문에 국가의 확실한 지원 아래 정치가 및 전문 역사가들이 이를 반드시 밝혀줄 것을 촉구합니다."

백범선생 암살 진상규명 방미조사단 박도(60)씨는 18일 느티나무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위와 같은 결과를 보고했다. 많은 취재진들은 열띤 경쟁 속에서 백범선생 암살 진상규명 방미조사단에게 수차례 질문을 던졌다.

'확실하게 해명된 의혹이 있습니까?', '이미 기존에 알려진 것 외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신 것이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증거를 확보하셨습니까?'라고.

기자회견장에 모인 취재진들은 '새로운 결과의 유무' 혹은 '김구 선생 암살의 확실한(?) 배후'를 찾았는지에 대해 '단어'만 바꿔 계속 같은 내용의 질문을 던졌다.

이에 "이미 관련 서류는 전부 비어 있었다"라는 방미조사단의 차분한 답변이 이어지자, 뜨거웠던 취재 열기도 곧 가라앉았다.

지난 달 2일부터 이번 달 10일까지 방미조사단이 진행한 '미국 정부문서보관소 백범 김구 암살 자료조사 작업'은 교포 189명의 도움으로 1만9000여 건의 자료를 검색, 약 340여 건의 자료를 복사, 취합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a 권중희 선생이 기자들과 질의 응답하고 있다

권중희 선생이 기자들과 질의 응답하고 있다 ⓒ 김진석

방미조사단은 '김구-암살에 관한 배후 정보'라는 문서와 네 장의 자료 사진으로 관련 정황을 제시했다. 이 문서와 사진은 이미 국사편찬위원회가 지난 2001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찾아낸 것과 같은 문서이다.


이와 함께 이들은 김구 선생 암살과 관련한 직접적인 자료를 찾기 위해 미국 현지 교포의 도움을 받아 미국 정부가 공개를 거부한 16건의 자료에 대해 '정보 공개'를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백범선생 암살 진상규명 방미 조사단은 "김구 선생 암살 배후에 대한 진실 규명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벌였으나, 그보다는 지금껏 방치돼 왔던 현대사의 민족적 과제와 미국에 대한 시각과 정책 등을 확인함으로써 다시 한번 부분적으로 발견한 계기"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방미조사단은 "백범선생 암살 이후 심층적이고 폭넓은 조사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꼭 해야 한다"며 "자국에서 일어난 일들의 물적 증거를 찾기 위해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문서들을 찾아야 하는 이 상황을 우리 모두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감회를 정리했다.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를 밝히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방미 조사단 권중희(68·민족정기구현회)씨는 '광복 후 중앙청에(과거 조선총독부)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걸린 자료 사진'을(1945년 9월9일자) 보여주며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막상 박굴 작업에 들어가 보니 너무 때가 늦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간 우리의 위정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정치의 탈을 쓰고 온갖 검은 돈으로 '정치 자금'이니 '떡값' 얘기만 경쟁적으로 하며 미군 주둔비마저 대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얼'과 '양심'은 정치 이전의 문제요, 법 이전의 일입니다. 정치권은 이제라도 앞장서 미국이 자료를 공개하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동족상잔의 참혹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각성하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권중희씨는 준비한 세 장의 호소문을 그늘진 얼굴로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권씨는 "최선을 다했지만, 정확하고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피땀어린 성금을 모아준 국민들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내내 짙은 수심을 거두지 못했다.

권씨는 미국 정부문서보관소 관계자를 통해 "미국 국익에 반하는 문서, 반미 감정을 유발하는 문서, 미국 자본주의 확산에 반하는 문서의 97%는 미국 정부가 따로 압수했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며 이를 방관한 정부와 위정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또 "국가의 강력한 의지가 없는 한 개인의 활동은 결국 '허구'에 불과할 뿐이다"라며 "이번에 발견한 자료를 통해 다시금 우리 한국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말할 수 없을 만큼 허망하고 개탄스러웠다"고 심정을 털어놨다.

그러나 이내 권씨는 "이미 가진 것 많고 거대한 미국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 우리 한반도를 넘보는지 모르겠다"며 "다시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다른 방법으로 계속 내 의지를 실천할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a 박도 기자가 미 자료 보관소의 문서를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박도 기자가 미 자료 보관소의 문서를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 김진석


"우리 국민은 이미 충분히 훌륭했다!"

권씨와 동행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박도씨는 "우리 국민은 이미 충분히 훌륭했다"며 이번 일로 새롭게 발견했다는 '희망'을 역설했다.

박씨는 "이번 조사를 위한 성금 모금을 통해 살아 있는 우리의 민족정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그 열기가 곧 친일인명사전편찬 모금으로 이어지는 뜻깊은 수확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에도 네티즌의 성금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에 박씨는 그간 모아진 성금과 돈의 쓰임 내역을 곧 네티즌들에게 남김없이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성금을 모아주고 또 해외에서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우리 국민들은 이미 충분히 훌륭했다"며 "이젠 정부가 이렇게 훌륭한 국민의 간절한 마음을 수렴해, 이제 그들이 행동을 보여줘야 할 차례이다"라고 당부했다.

박씨는 "미국 현지 교포들 사이에서도 암살 배후의 전모를 밝히는 모임이 결성되는 등 많은 이들이 역사를 바로 아는 계기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조사에 도움을 준 국민들에게 재차 감사의 말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그간의 활동과 성과를 정리해 <오마이뉴스>에 발로 뛰었던 47일간의 현지 기사를 송고할 계획이라 덧붙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교포 20여 명으로 구성된 '김구 선생 암살 배후 전모를 밝히는 진상규명회'가 발족돼 현지에서도 계속 모임을 가지며 조사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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