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버리지 못해 벽에 붙여 둔 '껌딱지' 하나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씹는 과자' 껌에 얽힌 추억

등록 2004.03.19 11:02수정 2004.03.1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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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껌과 만나다


고무에 설탕·박하·향료 따위를 섞어 만들어 질겅질겅 씹는 과자를 껌(gum)이라 한다. 처음 껌을 대했을 때 무척 달았다. 아구딱(입의 비속어) 아픈 줄 모르고 단물만을 빨아먹고 쉽게 버리고 마는 껌. 길바닥엔 이제 껌 딱지 공해가 도를 넘어섰다.

꿀풀이나 사루비아 꽃잎을 뽑아 "쏙쏙" 빨아먹던 아이에게 그 달보드레한 껌은 환상 그 자체였다. 보드라운 껌, 우린 '끔'으로 불렀는데 단물이 쉬지 않고 빠져 황홀한 맛으로 끌려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맨 먼저 씹었던 건 풍선껌이다. 두세 개를 몽창 밀어 넣고 어기적어기적 씹다가 혀를 몰아 온 힘을 다해 찬찬히 불면 큼지막하고 하얀 풍선이 부풀어올라 콧등을 감쌌던 풍선껌. 어떤 땐 간혹 머리카락를 덮쳐 곤혹스럽기까지 했던 껌은 오늘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운동회나 소풍 때 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껌 한 통을 사서 껍질을 서둘러 까서 가득 입에 넣으면 목젖까지 꽉 찬 느낌을 아직도 지울 수 없다. 그 땐 "욱!" 하기도 했다. 애지중지 꿀단지만큼 처절하게 지켰던 것이 껌 말고 또 있을까?

아이들은 역시 껌을 좋아한다


해강이와 솔강이는 어린이집을 나와 반드시 놀이터를 거쳐 집으로 온다. 도중에 시소와 그네, 미끄럼을 한 번 타보고는 무작정 내달린다. 아이들의 혼을 빼 유인하는 그 무엇을 찾아 공원 끝자락에 있는 '0원수퍼'로 직행한다. 둘 중에 한 명이 앞뒤를 보지도 않고 마구 달려가는 터에 넘어져 코라도 깨질까, 행여 차라도 오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게에 도착하여 과자나 사탕을 고르기도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껌이다. 처음에는 몇 번 씹다가 삼켜버리기도 했는데, 요즘은 한 동안 오래 씹으며 씹는 그 맛의 묘미를 차츰 찾아 나가는 분위기다.


"아빠, 껌 사러 가자."
"그래! 오늘은 하나씩만 사자. 알았지?"
"예."


말려봐야 아무 소용없으니 아이들에게 하나씩만 사자고 하는 게 낫다.

껌을 싫어하던 어른과 껌 씹는 원조 다방 아가씨의 그 소리

어른들은 우리가 어릴 때 아침부터 껌을 씹으면 달갑지 않게 생각하셨다. 첫째는 배가 더 고파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齒) 사이가 벌어진다고 했다.

무엇보다 껌 씹는 소리가 더 문제였으리라. 질겅질겅 아무 소리 없이 씹으면 별 문제될 게 아니겠지만 누나들이 "짝짝" 혹은 "쩍쩍쩍" 씹어대니, 소리내지 말라고 한두 번 경고를 한 게 아니다.

오죽했으면 버스 운전석 뒤칸에 "껌을 소리내 씹지 마세요"라고 써 붙여 놓았을까. 사실 "짝짝"하고 듣기 거북하게 껌을 씹어대는 행동의 원조는 아마도 예전 다방 아가씨들이 아닐까. "짝! 짝! 짝!", "떡! 떡! 떡!" 조금은 싸가지(?) 없이 씹어대는 소리가 영 귀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한쪽으로 입을 비틀은 채, 예절 교육이라곤 털끝만큼도 받아본 적이 없다 싶을 정도로 버릇없는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껌 씹는 소리에서 이들 다방 아가씨의 이미지가 떠올라 아침, 저녁을 막론하고 껌을 싫어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 무리를 일방적으로 매도한 것 같아 이 기회를 통해 사과하고 싶다.

손에 만지작거리다가 벽에 붙여 먹고 먹고 또 먹던 재활용의 추억

그렇다고 우리가 껌을 대충 씹고 말았던 것은 아니다. 한 통 사오면 두고두고 먹었던 그 껌은 심심풀이 땅콩보다 훨씬 달고 맛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씹어댔던가. 단물이 다 빠져 딱딱해진 껌딱지를 코딱지처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입에 넣는 건 예삿일이다. 손때를 타 까맣게 변해버린 껌을 들고서 한마디한다.

"이거 내꺼니까 손대지마 알았제?"
"에에~ 그 더러운 걸 누가 먹는다고…."
"뭐 어째서? 내가 씹은 건데."
"걱정 말라니까. 손 안 댄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다섯 살 위 누이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누나 왜 그려?"
"누구야?"
"뭐?"
"내 머리에 껌 붙었잖아. 어쩔 것이여?"
"왜 나보고 그래. 난 안 그랬당께."
"가서 시구(석유의 전라도 방언) 좀 따라와 봐."


결국 잘려 나간 누이의 머릿결

호롱불에 쓰던 귀한 석유를 갖다가 해도 헝클어진 머리에 붙은 껌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선반에 올려진 노란 통에 든 아버지 라이터 휘발유를 갖다가 쓱쓱 문지르니 조금은 차도가 있었으나 온전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우린 결국 골무에서 가시개('가위'의 전라도 방언)를 반짇고리에서 찾아 싹둑 자르는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상황을 모면하긴 했지만 늘 나는 그 일로 누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버릴 수 없다.

5년 이상 살다보니, 먼지와 매캐한 연기로 인해 누렇다기보다 시커멓게 바랜 방안 벽지에 껌을 붙인다.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대니 지문이 선명하다. 붙이는 자리도 정해져 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다시 떼려고 보면 그건 이미 껌이 아니다. 딱딱하게 굳어 떡보다 더 단단하다. 철판 같다.

세상에 하고많은 일 중에 벽에 붙은 껌을 떼는 것만큼 집중력을 요하고 정성이 들어가는 게 있을까. 나는 아직 그걸 찾아내지 못했다. 벽지가 조금이라도 붙어 있으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니 온갖 열과 성을 다하여 살짝 살짝 떼어 나가다가 정 안되겠다 싶으면 연필 깎는 칼이나 부엌칼을 가져와 도려내 입에 넣는다.

그러니 나중에 꾀가 생겼을 때는 벽에다 붙이지 않고 노출된 나무 기둥이나 시렁에 붙여뒀다. 차례대로 형제들 껌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못대가리에 붙여두기도 했다.

제거와 재련 과정은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책상 밑도 썩 좋은 자리

이런 껌을 심심할 때마다 떼어 씹는 것이다. 재활용 껌은 곧바로 씹히지 않으므로 입에 넣어 온기를 불어넣고 서서히 녹여줘야 한다. 재련(再鍊) 과정을 거치면 말랑말랑 해지고 곧이어 말캉말캉해진다.

껌에서 매캐한 냄새와 퀴퀴한 방안 냄새가 날 법도 하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여물을 썰면서나 뒷동산에 놀러 가든가, 고샅길을 걸을 때도 반복하여 씹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밖에서 "퉤-"하고 뱉는 일은 없다.

몇 번이었을까. 최소 세 번 이상, 많게는 대여섯 번을 떼었다 붙였다 했다. 어디 집에서만 그랬던가. 학교에서는 책상 밑이 요긴하게 쓰였다. 질겅질겅 씹다가 수업이 시작될 때 얼른 붙이기도 좋고 앉아서도 다시 찾기도 쉬운 책상 바로 밑. 또한 이 자리는 아이들이 쉽게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씹을수록 질금질금 추억이 흘러나오는 한마음 해태껌과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고 싶다는 롯데껌은 우리들의 친구였다. 비단 나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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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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