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행사장에 나타난 '탄핵무효 눈사람'권박효원
차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는 권모(76) 할아버지는 목발을 짚고 광화문까지 나섰다. 목발 한 쪽에는 테이프로 촛불이 붙어있었다. 권 할아버지는 "집에 있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나왔다"며 "대선 때 노무현 안 찍었지만 이건 아니다. 3당이 야합해 권력을 잡은 뒤 자기들끼리 싸울텐데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날도 여러 가지 다양한 피켓이 눈길을 끌었다.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서 의견을 나누다가 만났다는 몇몇 참가자들은 인터넷에 떠다니는 'Best 어록'을 자보로 적어왔다. 이들의 자보는 "12분이 지나도록 물한잔 안 주더라. 국민의 답변: 물은 셀프. 삼겹살판은 오래 쓰면 시커매집니다. 국민의 답변: 판갈아 BoA요" 등 인터넷에서 쓰던 말투가 그대로 나타나있었다.
행사장에는 '탄핵무효 눈사람'도 등장했다. 이 눈사람은 '탄핵무효' 카드를 붙인 양동이를 머리에 쓰고, '4월 15일은 분리수거하는 날'이라는 종이를 몸에 붙였다. 옆에는 분리수거를 위한 빗자루가 놓여져 있었다.
"젊은이들 총선 나서야... 투표 안하면 불평할 자격 없다"
이날 행사는 시민발언으로 이어졌다. 시민발언대는 시작한지 30분만에 발언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참가자들은 대학생, 일반시민, 스님 등으로 다양했는데, 이들은 무대에 서기 전 꼼꼼히 할 말을 적어두었고, 서투르지만 구호를 선창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 | | "피로 얻은 국민의 힘 아무도 못 말린다." | | | 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씨 | | | | 87년 6월 항쟁에 섰던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도 촛불행사에 꼬박꼬박 나오는 '모범생' 참가자다. 21일 촛불행사에 온 배은심씨는 "옛날 생각이 나서 좋기도 하고 동시에 가슴 아프기도 하다"며 요즘의 심경을 이야기했다.
배씨는 "옛날에는 독재와 싸우는 판이었지만 지금은 정치인의 부도덕성이 주제다. 당시에는 최루탄이 난무했는데 지금은 평화적으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다"며 그 동안의 민주주의 발전을 평가했다.
그는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가 있어서 지금이 있지 않나 싶다"며 "국민들이 이렇게 성숙해졌으니, 이 힘은 아무도 못 말린다"고 덧붙였다. | | | | |
회사원 심중채씨는 "노사모 아니시죠? 정당원 아니시죠?"라고 다른 참가자들에게 물은 뒤 "주인 말 안 듣고 일 안하는 머슴은 쫓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해용 스님은 "바둑에서 한번 악수를 두면 계속 꼬인다. 차라리 돌을 던지고 다시 두자고 하는 게 낫다"며 "국회의원들도 구차하게 변명하지 말고 국민에게 빌라"고 촉구했다. 스님은 또한 "투표 안하면 불평불만할 자격이 없다"며 젊은이들의 총선 참여를 강조했다.
김미숙 덕성여대 동아리연합회장은 "덕성여대, 한양대, 외국어대, 경기대, 광운대 등 서울지역 대학생 9명이 오늘부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탄핵무효를 위한 농성에 들어갔다"며 "주중에는 매일 저녁 7시 시민들과 함께 촛불행사를 갖고 주말에는 광화문에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행사 사이사이 가극단 '미래', 민중가수 박성환씨, 손병휘씨의 문화공연도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함께 '바위처럼' '사노라면'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의 노래를 부르며 촛불을 흔들었다.
이날 행사는 저녁 8시 50분께 모두 끝났다. 참가자들은 주변 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내일은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나오자"는 약속과 함께 해산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