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당 '의원직 사퇴결의' 철회... 한나라당 "궤변이다"

"기득권 고수 집착 아니냐" 비판 여론 거셀 듯

등록 2004.03.22 13:19수정 2004.03.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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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22일 의원총회가 끝난 뒤 국회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의원직 사퇴 결의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22일 의원총회가 끝난 뒤 국회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의원직 사퇴 결의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기사 대체 : 22일 오후 5시20분]

열린우리당은 22일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뒤집고 사퇴 방침을 철회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기득권에 집착한 나머지 국민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것 아니냐'는 등 비판 여론이 거세게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같은 입장 번복을 '대(對)국민사기극'으로 규정하고 "궤변을 늘어놓지 말고 떳떳하게 대국민 약속을 지켜라"고 촉구하는 등 공세를 퍼부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3시간 여 동안 진행된 의원총회를 마치고 난 뒤 국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오랜 고민 끝에 의원직 사퇴의사를 철회하기로 했다"며 사퇴 입장 번복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어 그는 "여러 이유가 있고 우리 나름의 사정도 있지만 어떤 말로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은 덮어지지 않는다"면서 "국민 여러분의 꾸지람을 달게받겠다. 우리의 부족함을 꾸짖어 주시고 회초리를 들어달라"고 말한 뒤 즉석에서 고개를 숙였다.

사퇴 의사를 철회하게 된 이유와 관련해 김 대표는 "설명하는 것이 사실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국고보조금, 기호 통일 등을 거론하며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을 경우 입장 번복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몇몇 의원들의 건의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54억원에 달하는 '실탄'(국고보조금)과 기호 3번이라는 '식별띠'가 구비되지 않고서는 야당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기득권에 대한 강한 집착이 명분론을 눌렀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수 의원 "의원직 유지하되 기득권 포기해야 한다" 주장

이날 의원총회에서 신기남 선대본부장과 박양수 총무본부장 등 선대위 지도부들은 실무적 고충을 이유로 의원직 사퇴 '철회론'을 강력히 요구한 반면 김원기, 이해찬, 정세균 등 중진급 의원 다수는 '철회 뒤 기득권 포기론'을 주장했다. '사퇴론'을 끝까지 고수한 의원은 임채정, 장영달 의원 두 명 정도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퇴론'을 강력히 주장한 임채정 의원은 의원총회 공개 토론에서 "사퇴서 제출은 정치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인식, 행동양식을 실천하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사즉생(死卽生)으로 우리가 반드시 끌고 나가야 할 원칙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반면 신기남 의원은 "당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기호 문제는 고려할 얘기는 된다. 정치 신인을 생각할 때 참 힘들다"고 현실론을 펴며 의원직 사퇴 철회를 주장했다. 의원직 사퇴로 기호가 들쭉날쭉하게 표기될 경우 정치신인들의 득표전략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는 또 "대통령이 직무정지로 궐위된 때에 수구 보수세력 막가파에 국회를 맡겨 놓으면 저들이 어떤 일을 할 지도 모르지 않느냐"면서 돌발적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로 철회론에 무게를 실었다.

의원직은 유지하되 국회의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기득권은 포기하자는 절충안도 나왔다. 이해찬 의원은 "대통령 권한정지도 큰 어려움인데, 권한정지에 더 버금가는 사면권을 재의 부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의원직을 불가피하게 유지하면서 중요한 도덕적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의원직을 유지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제반 이익, 예를 들어 국고보조금, 세비, 경제적 예우 등을 모두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해 다수 의원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민주당 "열린당의 국민사기극", 한나라당 "궤변 그만하고 약속지켜라" 맹비난

열린우리당이 의원직 사퇴 철회를 공식화하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민사기극",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며 맹비난했다.

배용수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사사건건 정상적인 국회활동마저 몸으로 막는 열우당이 어떻게 '국회유고 사태'를 이유로 사퇴를 철회할 수 있느냐"며 "열우당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지 말고 떳떳하게 대국민약속을 지켜라"고 촉구했다.

이승희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무법자처럼 국회본회의장을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남자의 눈물'까지 보여줬고 한 의원은 의원배지까지 던져버렸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국고보조금 54억이 아까워진 거냐, 총선에서의 기호 3번을 포기할 수 없는 거냐"고 반문했다.

이 대변인은 "수시로 말을 바꾸면서도 새로운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는 열린당 의원들의 대(對)국민사기극을 보며 서글픔을 느낀다"며 "노 대통령의 국민기만극과 한치도 다르지 않는 행보를 밟고 있는 열린당의 국민사기극, 의원직 사퇴쇼를 더 이상 보고싶지 않다"고 비난했다.

"전략 집행 무기 있어야" - "우리 운명 국민에 맡긴 것"
열린우리당 의원직 사퇴철회 놓고 격론

이날 의총에서 다수 의원들과 지도부들은 의원직은 유지하되 의원직 유지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기득권은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몇 소장파 의원들은 김근태 원내대표의 상징적 사퇴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건의하기도 했으나 '정치쇼'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비판에 제기돼 수용되지는 않았다. 다음은 김부겸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가 소개한 개별 의원들의 의원총회 발언 요약문이다.

이부영 상임중앙위원 "무슨 대안이 있나. 현재 우리당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안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인데, 구체적 전략전술을 집행할 무기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감정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정동영 의장 "돈 때문이라면 사퇴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질 것이냐, 우리당의 진정성을 보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3월 12일 가장 먼저 사퇴를 제안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사실상 유고된 상황이다. 정치적 여당이라고 자임하는 우리마저 국회를 비운다면 국민들은 또다른 불안감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 국정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할 정치적 여당으로서 비난을 감수하고 사과해야 한다."

김명자 공동선대위원장 "보다 큰 명분은 정치적 책임감 아닌가. 국민이 바라는 것은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킬 테니 국회는 여러분이 지켜 파행을 막아달라는 것 아닌가. 명분 대(對) 실리의 문제로 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 비난 감수하고라도 결연한 의지로 나가야 한다. 3월 12일 우리 행위의 당위성과 감성적 결정에 대해 사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장영달 의원 "사퇴를 취소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전략적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개헌 발의나 총선 연기 등 어떤 정치적 음모도 가능하지 않나. 사퇴를 하더라도 정치적 불장난이 불가능한 시점에 하는 것이 옳다. 사퇴서를 던질 때 이미 우리의 운명을 국민에 맡긴 것 아닌가. 정치인이 손해 보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옳다."

박양수 사무처장 "지금의 정치적 열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당 홍보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여러 의원들은 가볍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기호 통일 문제도 중요하다."

김태홍 의원 "국민들은 무섭다. 국민들은 지도자이건 정치세력이건 무한한 희생과 도덕성과 정결함을 요구한다. 우리들은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원래 입장을 지켜야 한다. 다만 정치적 의사를 결집해야 할 책임이 있는 만큼 국고지원금 54억과 세비, 각종 시설이용 모든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들의 사퇴 철회가 진정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원기 최고상임고문 "최소한 국민들에게 우리들이 사과할 수 있는 명분을 가져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여러 가지 의회사정을 고려해서 의원직 유지하더라도 국고보조금 포기하고 세비를 포기하는 등의 최소한의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김영춘 의원 "국고보조금을 안 받겠다는 등등은 정치적 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는 의원직 사퇴서를 대표에게서 찾아와 몇몇 동의하는 의원들과 함께 먼저 내고 싶었으나 전열을 흐트릴 수 있을 것 같아 포기했다. 대표직에 있는 분이 스스로 의원직을 사퇴하는 일도 고려해 봄직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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