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17

신임포교

등록 2004.03.22 17:20수정 2004.03.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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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한번 빠르구먼. 이 사람일세. 자 난 박춘호라고 하고 이 친구는 이순보라고 하네.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걸세."

"백위길이라고 합니다."


이순보는 거만한 표정으로 백위길의 인사를 받은 후 말없이 홱 지나쳐 가 버렸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러니 너무 괘념치 말게나."

방금 전까지의 날카로운 모습과는 달리 백위길을 대하는 박춘호의 태도는 친근감마저 있었다.

"자, 이리로 와서 이거나 받게나."

박춘호는 포교가 쓰는 벙거지와 복색을 내주고 쇠털을 댄 미투리를 쥐어 주었다.


"이것은 어찌 생김새가 이렇소이까?"

"쇠털을 댄 미투리는 발소리를 죽이니 밤중에 도둑의 뒤를 밟는데 요긴하게 쓰일 것이네. 참! 자네 사대문 밖에서 기거한다고 들었는데 통부는 내일이나 나올 것이니 그동안 집에서 세간 살이나 챙겨오게나. 적어도 포교라면 사대문 안에서 기거하는 것이 편할 것이네."


백위길은 난처한 듯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갑자기 집을 옮긴단 말입니까? 당분간은 불편함이 있더라도 사대문밖에 기거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박춘호는 걱정하지 마라는 듯 손을 저었다.

"포교가 되었는데 그 정도 편의를 안 봐줄 것 같나? 전에 있던 장포교의 집이 비었으니 남촌으로 오면 되네. 지금 당장 가서 짐이나 꾸리게나."

백위길은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며 박춘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뭐! 자네가 포교가 되었다고! 그거 잘되었군!"

놋그릇 장인 여칠량이 놀랍다는 듯 백위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지만 백위길로서는 전혀 내키지 않은 일이었기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겠습니까. 거기서는 당장 짐도 옮기라고 했지만 대충 때우다가 다시 평상으로 돌아가렵니다."

여칠량이 무슨 소리냐는 듯 손사래를 쳤다.

"자넨 여기서 놋그릇이나 팔고 있기에는 아깝네! 그래도 포교라고 하면 군포를 내는 부담만 적을 뿐 명목에 불과한 가솔군관 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게다가 시전에서 포교들이 부리는 횡포를 잘 알고 잇는 자네가 바로 포교가 된 것은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백위길로서는 자신의 푸념이나마 들어줄 줄 알았던 여칠량이 이런 소리를 하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전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어르신이라면 뭔가 현명하게 이를 피할 방법을 알려 주실 줄 알았습니다만."

"피하지 말게나."

여칠량은 잔기침을 몇 번 한 뒤 말을 이었다.

"나야 놋그릇을 만드는 일이 천직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다리마저 불편한 늙은이라 주위가 변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네. 하지만 자네는 아직 젊지 않은가? 자네가 성실히 장사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 성실함이 자네가 가야할 길은 아닐세. 포교라는 일이 자네가 원하는 길이 아닐지라도 지금처럼 큰 재물조차 모을 수 없는 평범한 일에서 다른 것을 바랄 수는 없네."

여칠량의 말에도 불구하고 백위길의 마음은 심란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포교로 임명된 이상 다른 곳으로 피할 수도 없었고, 백위길 자신도 법을 어긴 이가 되면서까지 포교자리를 피할 생각은 없었다.

"제가 가면 어르신의 장사는 어떻게 합니까?"

마지막 말은 백위길이 진심으로 여칠량에 대해 걱정이 되어서 한 소리였으나 도리어 크게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

"거 무슨 소린가! 피도 안 섞인 늙은이 때문에 젊은 놈의 앞길을 막았다는 변명이라도 덧 씌우고 싶은 겐가! 당장 짐을 꾸려서 가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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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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