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만평, 어쩜 이렇게 다를 수가

[보도비평] 조중동 - 한경서 시각차 확연

등록 2004.03.22 21:42수정 2004.03.2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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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정치의 흐름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한 촉수를 지녀야 한다는 시사만화가들에게 이번 탄핵 사태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헌정 초유의 탄핵 사태를 손바닥 정도의 넓이에 그려내야 하는 일이 무척이나 고민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넘치는 열의에 일필지화(一筆之畵)로 만평을 그려 나갔을지 모른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2일 이후 각 신문사들은 수많은 관련 기사를 쏟아내며 탄핵정국이 초래된 배경과 향후 파장을 전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해당 신문사의 논조를 살펴보는 데에는 탄핵을 묘사하고 있는 만평만큼 쉽고 유력한 방법도 없을 것이다.

탄핵안 가결 - '대통령 봉급타령' <동아>와 '국회발 탄핵 핵폭탄' <한겨레>

13일자 <동아> 이홍우 화백의 '나대로선생'(왼쪽)과 <한겨레> 장봉군 화백의 '한겨레 그림판'(오른쪽)
13일자 <동아> 이홍우 화백의 '나대로선생'(왼쪽)과 <한겨레> 장봉군 화백의 '한겨레 그림판'(오른쪽)동아, 한겨레PDF
탄핵안이 통과된 다음날인 13일 각 신문사의 만평 중에서도 <동아>의 '나대로 선생'은 그 독특한 접근으로 인해 단연 도드라졌다.

탄핵안 통과로 인해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 요동치는 상황 속에서도 <동아> 이홍우 화백은 국회의 탄핵 결의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됐지만 그래도 청와대서 살고 봉급도 받는다며 <조선>과 <중앙>과도 확연히 다른 '독창적'인 시각을 보여줬다.

탄핵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노 대통령의 청와대 거주와 봉급까지 시비의 대상으로 삼은 <동아> 만평은 노 대통령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10분의 1'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사실 전달에 무게 중심을 줬던 <조선>과 <중앙> 만평이 무미건조해 보일 정도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겨레>의 장봉군 화백은 탄핵이라는 핵폭탄이 터진 국회에 근조를 표하고 있다. 국회의사당 위로 피어오른 탄핵폭탄의 검은 버섯구름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불어닥칠 거센 후폭풍을 예견하고 있다.


조선-중앙-동아가 청와대에, 한겨레-경향-서울이 야당에 탄핵정국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이들 매체간의 가장 확연한 차이라 할 수 있다.

탄핵 역풍 - '우리당의 샴페인' <중앙>과 '역풍을 음모론으로?' <경향>


16일자 <중앙> 김상택 화백의 '만화세상'(왼쪽)과 <경향> 김용민 화백의 '그림마당'(오른쪽)
16일자 <중앙> 김상택 화백의 '만화세상'(왼쪽)과 <경향> 김용민 화백의 '그림마당'(오른쪽)중앙, 경향PDF
탄핵안 통과 직후부터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몰아닥친 거센 역풍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중동'과 '한경서'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16일자 <중앙> 김상택 화백의 만평에는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급등에 희희낙낙하는 정동영 의장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축배용 샴페인을 사들고 집을 향해 달려가는 정 의장 일행에게 김 화백은 '너무 빠르다'고 경고한다.

특히 부부로 보이는 좌측의 행인들은 이러한 정 의장 일행에게 특유의 비웃음을 보내며 샴페인 상자를 가리키고 있다. 손가락으로는 부족했는지 화살표까지 친절하게 그려져 있다. <중앙>의 만평에는 '너무 좋아할 일 아니라'는 경고와 비웃음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같은 날 <경향>의 김용민 화백의 만평에는 거센 여론의 역풍에도 불구하고 음모론과 조작론으로 국면을 모면해 보려는 야당의 무책임한 대응을 꼬집고 있다. 언론 역시 친노·반노 구도로 총선 정국을 몰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경향> 만평의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촛불 문화제 - '허장관 튀어!' <조선>과 '비리·철새의원 마저?' <서울>

18일자 <조선> 신경무 화백의 만평(왼쪽)과 <서울신문> 백무현 화백의 만평(오른쪽)
18일자 <조선> 신경무 화백의 만평(왼쪽)과 <서울신문> 백무현 화백의 만평(오른쪽)조선, 서울 PDF
탄핵 국회통과 직후부터 개최된 전국적인 ‘촛불문화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각 신문사 만평 역시 이를 놓치지 않고 다루었다.

18일자 <조선> 만평에서 신경무 화백은 '촛불문화제'를 불법시위로 규정한 경찰과는 달리 탄력적인 법적용을 강조한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허 장관을 단속을 피해가며 촛불문화행사를 팔기 위해 허둥대는 노점상으로 비유하며, <조선> 만평은 "세상에 별의 별 일이 다..."라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허 장관을 말리기 위해 정신없이 따라가는 구청 공무원의 입에서는 "미치겠네, 정말..."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 나온다.

백무현 화백이 그린 18일자 <서울신문> 만평에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욕탕에 둘러앉아 촛불문화제를 지켜보며 총선 낙승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이에 한자리 끼어보려는 듯 불법·비리·철새 의원들이 염치없게 욕탕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최근의 탄핵 반대여론에 안주해 그동안 정치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온 인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영입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안일한 행보를 지적하는 것이다.

국회발 탄핵 폭풍의 거친 회오리 속에서 각 신문사의 날카로운 붓대결이 과연 얼마나 정확하게 시류를 읽어내고 국민 의사를 반영하고 있는지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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