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숲을 주고 싶어요"

대전 국화유치원 구영옥 원장

등록 2004.03.25 09:07수정 2004.03.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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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전 국화유치원 구영옥 원장

대전 국화유치원 구영옥 원장 ⓒ 권윤영


어느덧 봄기운이 완연한 3월말이다. 봄처럼 따뜻한 햇살을 머금고 새처럼 귀여운 지저귐이 있는 곳, 국화유치원(대전 삼천동). 지난 95년 문을 연 국화유치원은 이미 입소문을 타고 지역민들 사이에서 유명세가 자자하다.

지하 강당과 1, 2층의 건물 내부가 모두 소나무 원목으로 이뤄졌다. 건강에 좋은 은은한 소나무 향을 맡으며 아이들의 하루는 즐겁기만 하다. 물론 좋은 환경만으로 유명세를 타는 것은 아니다. 내실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국화유치원만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이다. 유치원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국악과 다도, 한자를 공부하고 뇌 호흡을 한다.

“아침에 오면 뇌 호흡 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노래나 춤, 웃기 등 뇌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정기교육을 시작합니다.”

막 피어난 새싹처럼 파릇파릇하기만 한 원생들 사이에서 구영옥 원장(50)은 숨 돌릴 틈 없는 분주한 일과를 시작한다. 바쁜 와중에서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그녀지만 지난 95년 유치원을 열기까지는 망설임과 고민이 많았다.

17년간 재직해오던 교직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아이들을 너무나 좋아하던 남편 황경익(스즈끼 바이올린 회장, 중부대 교수) 이사장은 그녀에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며 유치원을 하자고 말했다. 쉽게 결정내리지 못했던 그녀였지만 “마지막 소원”이라는 남편의 그 말 한마디에 그녀의 마음은 이내 움직이고 말았다.

a 아이들 속에서 보내는 행복한 하루.

아이들 속에서 보내는 행복한 하루. ⓒ 권윤영


“막상 와보니 초등학교 교사생활보다 더 행복해요. 아이들 혼내가면서 학력 올리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고 교육 커리큘럼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잖아요. 체벌도 안하고 점수에 연연해하지 않으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마음껏 줄 수 있다는 그 행복이 너무나 큽니다.”

구 원장이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인성교육. 요즘 아이들은 형제 없이 공주님, 왕자님처럼 자라기에 그만큼 중요시 여기고 있다. 아이들은 전통국악수업과 다도예절 수업을 통해 우리의 전통예절과 한국인의 긍지를 배우기도 한다.


집중력이 없고 산만한 아이들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한복을 입고 진행하는 40분의 다도수업을 훌륭히 치러낸다. 절하는 법, 한복 입는 법, 차 달이는 법을 가르치며 효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다. 한 학기 동안 다도를 공부한 후 2학기 때 어머니들을 모셔놓고 차를 대접하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곤 한다.

요즘 아이들은 유행가만 따라 부르기 일쑤지만 이곳 아이들은 사물놀이 장단을 다 해낸다. 살면서도 접하기 힘든 국악과 다도를 어린 나이부터 배워나가고 있는 것. 매년 11월 말에는 그동안 배웠던 것을 보다 큰 무대인 대전 평송청소년수련원에서 펼치는 학습발표회를 갖는다.


그녀 역시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이 어떤 건지 잘 알기에 맞벌이 부모들을 위해서 종일반을 운영한다. 맞벌이 부모 아이들의 방학기간은 일주일 정도로 짧게 정하기도 했는데, 이는 구 원장의 특별한 배려다.

a 소나무 원목으로 지어진 건물 내부.

소나무 원목으로 지어진 건물 내부. ⓒ 권윤영

매년 장애우를 받고 있기도 하다.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던 아이나 다른 유치원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아이들까지도 친자식처럼 돌본다. 처음에 와서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숨어있던 아이들도 이곳에서는 어느새 친구들과 어울리며 밝은 웃음을 되찾고 있다. 다른 아이들도 자신과 다르다는 생각 없이 친절히 대해주고 있어 그녀는 통합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녀는 원장이라고 해서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법이 없다. “밥은 많이 먹었는지”, “아이들이 수업은 잘 받고 있는지” 하루 종일 유치원을 돌아다니며 150명의 아이들과 하루를 보낸다. 직접 시장을 보고 물건을 구입하고 심지어 창고정리까지도 그녀의 몫. 그래도 드는 힘보단 보람이 더 크다.

민경복 원감은 “원장선생님은 배우는데 인색하지 않으세요. 교사가 발전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발전할 수 없다며 주말마다 교사들을 연수 보내고 계시죠. 조리사, 운전기사 분들에게도 가족같이 대해주셔서 다들 오래 근무하기도 하고요”라고 구 원장을 평가했다.

교사들을 연수 보낼 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솔선수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그녀는 아이들 영양의 중요성을 느끼고 지난해에 중부대 식품영양학과에 편입했다. 새록새록 배우는 게 많아 아이들을 생각하면 공부 역시 즐겁다.

“아이들을 위해 농사를 짓고 싶어요. 유기농 농사를 지어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숲을 주고 싶은 제 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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