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살인자를 전관예우할 것인가?

전두환의 동백나무를 당장 뽑아버려라

등록 2004.03.25 11:08수정 2004.03.30 17:21
0
원고료로 응원
20대 시절.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내 친구들의 술자리 주메뉴였다. 뭘 모르면 싸잡아 욕하기도 쉬운 법. 우리는 이승만과 김영삼 전 대통령을 구체적 비교 없이 무조건 '몹쓸 사람들'로 매도하는 것으로 안주 없는 깡소주를 달게 들이키곤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원칙은 있었다. 김영삼이 제 아무리 능력 없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전두환과 노태우만큼 욕을 먹지는 않았다. 최소한 그는 권력찬탈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햇살 눈부셨던 80년 봄날.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마냥 아름다운 무등산과 그 아래서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을 중인환시리에 처참하게 죽이고 들어선 전두환 정권. 노태우는 육사 동기인 전씨를 열심히 도와 이 비극적인 학살에 기꺼이 동참했다. 이른바 '5월 광주항쟁'이었다.

하여, 타계한 김남주 시인은 전두환 독재가 지배하던 80년대 한국사회를 이렇게 노래했다.

"학살의 원흉이 권좌에 앉아있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열 사람을 죽이면 살인마가 되고, 2천명을 죽이면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87년. 6월항쟁을 통해 손톱 밑의 먼지만한 민주화가 우리에게도 찾아온다. 이어 열린 5공 청문회. 자신은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다"고, 광주시민들에게 "총을 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끝끝내 발뺌하기에 바쁜 전두환과 그 부하들.

그날 나는 2차 대전 후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함으로써 자신의 죄과를 천분의 일이나마 씻은 독일의 군인들을 생각했다. 괴링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치 지도부는 체포되기 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그날 나는 전씨 일당과 같은 하늘 아래 사는 민족이라는 게 참으로 자존심이 상했다. 유태인 학살의 게르만 군인보다 못한 존재들.


다시 십 몇 년의 세월이 쏜살처럼 흘렀다. 그날 광주에서 학살당한 아저씨의 다섯 살 아들이 서른 살의 아버지가 됐지만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오월만 오면 광주의 병원에는 정신적 공황을 겪는 환자들이 넘쳐나는데, 전두환은 여전히 '황제경호'를 받으며 수백 억 재산을 가진 아들과 변함없는 충성을 맹세하는 졸병들의 품에서 근엄한 헛기침을 하고 있다. 뿐이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로 들어가 전직 대통령으로서 '폼 나는 충고' 한마디도 잊지 않는다.


광주시청의 전두환 식수가 문제가 되고있다고 한다. 그걸 뽑아버리는데 반대한다는 광주시청 공무원들에게 묻고싶다.

당신들은 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있냐고? 당신들의 가족을 쏴 죽이고 때려죽인 자를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해서 뭘 어쩌자는 것이냐고? 그리고, 이 말을 덧붙이고싶다. 피로 흥건하던 금남로의 아스팔트와 태극기에 덮인 남편의 시체를 보며 오열하던 백운동 새댁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자, 이 정도면 주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전두환이 광주시청에 심었다는 동백을 당장에 뽑아 소각처리 하면 된다. 만약 그 정도도 할 수 없는 대한민국이라면 대체 우리의 아이들에게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살인자에 대한 전관예우는 이로써 족하다. 이젠 걷어치워라.


관련
기사
- 광주시청 '전두환 식수' 어찌하오리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4. 4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5. 5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