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경로당 학회'는 걸맞지 않은 표현"

[인터뷰] 김계곤 한글학회 이사장 겸 학회장

등록 2004.03.25 12:12수정 2004.03.2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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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계곤 한글학회 신임 이사장 겸 학회장

김계곤 한글학회 신임 이사장 겸 학회장 ⓒ 신향식

고 허웅 선생의 후임으로 지난 13일 재단법인 한글학회의 새 학회장(이사장 겸직)에 선출된 김계곤(78) 경인교대 명예교수가 최근 불거진 한글학회 개혁 필요성에는 공감을 나타냈으나 학회장 직선-단임제 요구 등 구체적 개혁안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 회장은 24일 인터뷰에서 “학회 발전에 필요한 개혁을 해야 한다”면서 “임원회에서 하나하나 검토해서 학회의 사명에 맞게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회장은 ▲한글학회장을 직선-단임제로 뽑고 ▲이사장과 학회장의 겸직을 금지하고 ▲좀더 젊은 인사들로 집행부를 구성하라는 구체적인 개혁요구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해 온 문제를 달리하기엔 정관과 회칙이 있어서 바깥에서 보는 의견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한글학회는 허웅 전 이사장 겸 학회장이 지난 1월 향년 86세로 별세한 이후 임원 선출 방식과 학회 운영을 개혁하라는 안팎의 압력을 받았다.

특히 지난 2월 허웅 선생 후임으로 이사장에 취임한 김계곤 명예교수가 관례를 이유로 학회장까지 겸직하려 하자 “학회장만이라도 좀더 젊은 인사가 맡아야 한다”는 여론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글학회는 지난 13일 열린 평의원회-정기총회-이사회에서 이같은 여론을 수용하지 않아 회원들과 외부 한글운동단체의 반발을 샀다.

한편, 한글학회의 개혁을 촉구하며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위를 벌였던 ‘한글과 한글학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한사모)’은 26일 오후 7시 서울 신문로 한글회관 근처에서 ‘한글학회의 개혁을 위한 긴급 모임’을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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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계곤 한글학회 신임 이사장 겸 학회장

김계곤 한글학회 신임 이사장 겸 학회장 ⓒ 신향식

다음은 김계곤 한글학회 신임 이사장 겸 학회장과 나눈 일문일답.

- 한글학회가 개혁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까?
“학회 발전에 필요한 개혁은 해야 합니다.”


- 새 집행부에서 스스로 한글학회의 개혁 방안을 발표할 생각은 없는지요?
“학회 임원회에서 하나하나 검토해서 학회의 사명에 맞게 나아갈 것입니다.”

- 한글학회를 ‘경로당 학회’라고 비판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이를 따져서 ‘경로당 학회’라는 말은 걸맞지 않습니다. 젊은 늙은이도 있고 늙은 젊은이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 세대가 가고 새 세대가 오듯이 앞으로 ‘젊은 학회가 됐구나’라고 평가할 시절도 멀지 않다고 봅니다.”

- 한글학회 새 집행부의 첫 이사회가 지난 23일에 열렸습니다. 어떤 내용을 협의하였습니까?
“부회장 선출과 각 이사들의 부서를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학회 운영에 대하여 각 부서에서 할 일을 의논했습니다.”

- 최근 한글학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습니까?
"논의했습니다. 개혁의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기로 했습니다."

- 한글학회의 개혁을 외치는 이들은 ▲학회장을 직선-단임제로 뽑고 ▲이사장과 학회장의 겸직을 금지하고 ▲좀 더 젊은 인사들로 집행부를 구성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에 대한 견해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해 온 문제를 달리하기엔 정관과 회칙이 있어서 바깥에서 보는 의견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집행부 구성에서 전과는 달리 젊은 인사들이 많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평의원인 김정수 한양대 교수가 발의한 '한글학회 회칙 개정안'을 지난 13일 평의원회와 정기총회에서 구체적으로 협의하지 않고 내년으로 미룬 이유는 무엇입니까?
“평의원회에서 발의한 회칙 개정안은 정기총회에서 할 일이었으나 이 문제는 정기총회에서도 신중하게 다루어야할 일이므로 다음 회의로 미루었습니다.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 지난 13일에 열린 정기총회에서 ‘내년에 한글학회의 회칙 개정 등을 논의를 하겠다’고 잠정 합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원들은 내년에도 이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흐지부지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새 집행부는 내년에 성실하게 한글학회의 개혁을 위한 회칙 개정 등을 수용할 용의가 있는지요?
“학회의 정관과 회칙에 따라 수정해야 할 것은 검토해서 수정할 것입니다.”

- 학회 정회원인 김두루한씨는 최근 ‘1인 성명서’를 내고 “한글학회는 재단법인 ‘한글학회’와 학술단체인 ‘한글학회’로 분리하여 학술 활동과 한글 운동을 효율적으로 벌여야 하는데도, 이사장이 학회장을 겸직하는 체제를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한 “이것은 시대 흐름이나 일을 꾸려 가는 양면에서 볼 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학술’과 ‘운동’을 제도적으로 분리하여 운영할 생각은 없는지요?
“학회가 걸어온 길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학회가 해 온 일은, 이른바 잠자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경로당도 아닙니다. 업적도 업적이려니와 경우에 맞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 한글학회 측에서는 계속 재단과 학회를 구분하기 어렵고, 견제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십시오.
“사회 일각에서 재단 분류 등을 생각해서인데, 견제할 일도 없고 재단과 학회의 일은 상반된 의견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였습니다. 학회는 권력 기관도 아니고 영리 단체가 아닌데 장기 집권이란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a 2004년 3월 13일에 열린 한글학회 정기총회 장면.

2004년 3월 13일에 열린 한글학회 정기총회 장면. ⓒ 신향식

- ‘한글과 한글학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한사모)이 성명서도 발표하고, 시위도 벌였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한글학회 임원들은 상당히 불쾌하게 여기셨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새 집행부는 한사모를 비롯하여 학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학회 임원들이 불쾌하게 생각할 일은 없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점을 지적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한사모의 일을 기대하고 또한 상보적으로 해 나가자는 것이지 한집안 분쟁 같은 모양새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새 집행부가 한사모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한글학회의 개혁에 필요한 의견을 들을 용의는 없는지요?
“의견도 듣고 협의도 하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한글학회 회원으로 참여하는 이들이 특정 대학 출신들이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전국 각 대학에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학과가 수도 없이 많은데 젊은 국어학자들과 국어학도들이 한글학회의 가입에 별 뜻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입니까?
“학회의 전통이랄까 정통성으로 볼 때 희망한다고 누구나 회원으로 입회할 수는 없습니다. 논문 통과와 정회원 두 사람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일반인들이 한글학회의 정회원이 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좀더 문호를 개방할 수는 없을까요?
“일반인들의 문호는 특별회원 제도가 있습니다. 특별회원이 되고자 하는 분들은 될 수 있으면 많이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참고로 학회 회원제는 정회원, 특별회원, 구독회원, 일반회원이 있고, 누리그물 회원도 있습니다.”

- 새 집행부에서는 앞으로 한글 문화의 발전을 위해 어떤 사업을 펼칠 예정입니까?
“우리 말글 가꾸기에 힘쓰고, 연구하고 말글 정책에 대하여 앞 어른들이 개척해 놓은 일에 옆눈 팔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 4월에 총선 뒤에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을 다시 벌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습니까?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자는 운동은 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지금 책임을 맡고 계신 전택부 선생의 열성 또한 대단한 어른이십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쳐서 목적 달성을 해야겠습니다.”

-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밝혀 주십시오.
“우리나라 학회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말글을 목숨처럼 아껴 오신 선각자들의 본을 받고 우리 말글 교육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 없고 우리 말글을 통하여 우리 겨레의 심성을 기르고 우리 문화를 중하게 여길 수 있게 해야겠습니다.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다 들 수는 없습니다만 관심하는 이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궤도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의 염원인 남북 통일에 적응할 수 있는 우리 말글 통일에 힘써야겠습니다.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학회 임원들의 중지를 모으고 유관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어떤 일이든 민주주의 방식에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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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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