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날개를 다는 사람을 만나다

[인터뷰]북 크로싱 운동 펼치는 차우진씨

등록 2004.03.26 13:42수정 2004.03.2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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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19일자로 보도된 오마이뉴스 박영신 기자의 '북 크로싱'을 아십니까?'라는 기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현재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북 크로싱(Book Crossing)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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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크로싱'을 아십니까?


역 대합실 벤치에 놓여 있는 책 한 권, 이것은 버려진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독자 클럽에 초대합니다"라는 글귀로 이 모임에 초대받은 당신은 몇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첫째는 이 초대에 응하지 않고 그 책을 그냥 그 자리에 놓아두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 모임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책을 집어 가서 읽고 미지의 독자 클럽 초대에 응한다면 당신은 북 크로싱 운동의 일원이 된다. 이 운동의 가장 큰 목적은 한번 읽은 책을 보관하지 말고 해방시키는 데에 있다. 즉, 좀더 많은 이들이 그 책을 접하도록 하기 위해 책을 공공 장소에 놓아두고 그 책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 여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박영신 기자의 이 기사를 보고, '우리 나라에도 이런 운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한국에서 북 크로싱 운동을 시작한 차우진씨를 만나 이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들어 보았다.

- 직장인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오마이뉴스 박영신 기자의 글을 보고 참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친한 선배들과 술자리에서 '이런 운동이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하고 제안했고 아는 이들 몇몇이 모여 취미 삼아 시작했죠. 그 때는 이 모임이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할 줄 몰랐습니다."

- 현재 이 모임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우선 인터넷 카페(네이버, 책에 날개를 다는 사람들)에 회원 가입을 합니다. 회원들은 자신이 소지하고 있는 책을 공공 장소에 풀어놓는데, 그냥 책을 두고 오면 많은 사람들이 버리는 것으로 오해할까봐 책표지에 일정 양식(라벨)을 붙입니다.

라벨의 내용은 "이 책은 절대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읽고 싶은 분은 그냥 가져가시고 카페에 접속하시어 책을 회수했다고 알려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라는 내용이 적힌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냥 책을 놓고 나오면 잊어버리거나 버리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를 책표지에 표시해 줍니다.

그리고 책 속에는 속지를 붙여서 책을 가져가는 이를 위한 메모를 남깁니다. 메모지에는 번호가 1 - 10번까지 붙어 있어 첫 번째 소지자에서 두 번째, 세 번째로 넘어갈 경우 책이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일종의 역사가 기록되는 것이죠. 메모의 내용은 대체로 "이 책은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등의 감상이거나 "이 책은 몇 년 몇 월에 어디에 사는 누가 갖고 있던 것입니다" 등의 내용입니다."

- 책은 주로 어떤 장소에 풀어놓으며 회수율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네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공 장소면 어디든지 됩니다. 지하철 선반이나 벤치, 의자, 카페 테이블, 공중전화 박스 등 책이 젖지 않고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주로 이용하죠. 책을 풀어놓는 사람들은 그 책을 누군가 집어갈 수 있는 적당한 공간에 두고 옵니다.

저희 카페 회원들이 현재까지 200여 권의 책을 해방시켰는데, 회수율은 좀 낮은 편입니다. 5권 정도가 회수되었죠. 아마 많은 분들이 책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책을 발견하더라도 쑥스럽거나 귀찮아서 카페에 접속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접속해서 '책을 발견했다. 고맙다'라고 글을 남겨 놓은 분들이 5명이죠.

책을 가지고 가더라도 회원 등록을 하지 않으면 회수되었는지 알 수가 없죠.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책을 놓았을 경우 오랜 기간 그 자리에 있는 경우도 있구요. 외국의 경우 책을 풀어놓은 지 1년이 넘은 후에 그 책을 발견했다는 사례도 있으니까요.

자신의 책을 누군가 집어갔다는 메시지가 오지 않아 속상해 하는 회원 분들도 계신데, 그 때마다 말씀드립니다. 그냥 책에 대한 마음을 버리라구요. 잊어버리고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오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책을 내보낸 이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더라구요. 저만해도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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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날개를 다는 사람, 차우진 ⓒ 강지이

- 모임을 운영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없나요?

"'딸기'라는 아이디를 쓰는 학생인데 이제 겨우 열 살인 최연소 회원이 있죠. 이 회원이 독후감 쓴 것도 카페에 올리고 그러는데, 통신어를 너무 많이 쓰다 보니까 나이 드신 회원 분들이 통신어를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한 적도 있어요. 27일 저희가 나눔의 장터에 참여하는데 나오면 어떠냐고 하니까 '엄마가 바쁘셔서 안 가신대요'라는 답글을 달아서 얼마나 웃었는지.

그리고 책을 풀어놓는 과정에서 생긴 일도 많죠. 어떤 분은 지하철 의자에 책을 놓고 내리려고 하니까 한 아주머니가 '학생, 책 놓고 갔어.' 그러면서 챙겨 주셔서 무지 창피했다고 하더라구요. 많은 분들이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어디다 놓을까 고민하신답니다. 그 고민 끝에 겨우 몰래 책을 놓고 오는데, '어이, 책 갖고 가' 그러는 바람에 깜짝 놀라 얼른 다시 책을 들고 오시기도 하고요.

어떤 분들은 그런 분들에게 누군가 집어가라고 일부러 놓고 가는 것이라고, 이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기도 한다더군요. 사람들 많은 데에서는 특히 더 어렵죠. 괜히 죄짓는 것도 아닌데 눈치 보이고.

저도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한 카페에 놓고 오려고 하자, 같이 만난 후배가 '형, 책 갖고 가야지' 하는 바람에 엄청 무안했죠. 하지만 다음날 어느 분이 인터넷 카페에 그 책을 발견했다고 올리셔서 무지 기쁘더군요. 그런 기쁨 때문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시는 것 같아요."

- 앞으로 이 모임이 지향할 방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셨나요?

"아직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특별한 계획이 없답니다. 그냥 지금처럼 모임을 유지하고 많은 분들이 북 크로싱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모임이 하나의 놀이처럼 인식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갖고 편한 마음으로 책을 바꿔 볼 수 있다면 좋잖아요.

책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일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회원 중에 어떤 분이 시나리오를 쓰시는데,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하면 어떠냐고 많은 회원 분들이 추천하시더라구요.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남기고 간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고,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책을 선물한다는 것도 재미있고.

앞으로는 지금처럼 수동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좀더 자동화하여 회원들이 자신을 카페에 등록시키고, 풀어놓는 책도 등록한다면 더 많은 책들이 세상을 떠돌아다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저 놀이처럼 이 운동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마지막으로 이 운동의 주관자로서 최근 관심 있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동화책을 많이 읽는다는 독특한 대답을 했다. 다양한 나라의 동화책들이 너무나 재미있고 색다른 느낌을 주어 푹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책들이 날개를 달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기막힌 동화 속 상상의 세계가 이 모임을 이끄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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