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를 느낄 수 없는 2인극 <누드모델 >

등록 2004.03.29 06:59수정 2004.03.2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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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박이

이상용의 <누드모델>(부제: 사랑합니다/ 까망소극장/ 2004.3.16∼6.20)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무겁고 어려운 작품 <권태>를 쉽게 각색했다고 하나 너무 쉽게 각색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이 연극은 평범하다.

<누드모델>은 40대 화가와 누드모델 둘만이 등장하는 2인극이다. 어느 날 화가의 작업실에 불쑥 찾아와 누드모델을 자청하는 여자. 그러나 둘 사이엔 섹스만 행해진다. 관계가 지속될수록 남자는 여자에 집착하게 되고 감시하려 든다. 여자는 구속을 원치 않는다. 결국 남자는 그녀를 소유할 수 없음을 깨닫고, 여자는 다른 남자와 발리로 떠난다.

작품을 통해 삶의 권태와 무기력을 이야기하고자 한 이 연극은, 그러나 권태보다는 집착하는 남자에 대해 집착하고 있다. 권태는 발설되지만 공연장의 허공에 흩어질 뿐 관객의 마음속에 다가서지는 못한다.

그러나 <누드모델>은 제목에서, 포스터에서 다소 선정성을 갖고 있지만 다행히 벗기기 위한 연극은 아니다. 그리고 포스터의 제목과 본 내용이 따로 노는 연극도 아니다. 누드 신이 제법 등장하는데 누드 데생을 할 때 흑심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본 연극에서 노출이 있다고 딴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렇게 만들었기에 한 때 성행했던 노출을 미끼로 상업성만 노리는 졸속 기획 연극이 다시 판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씻어준다.

배우들의 연기는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노출 연기를 감행한 배우의 용기에 악수를 보내지만 아직 관객을 장악할 만한 연기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어 박수는 주저하게 된다.

누드모델 역의 이윤희의 성량은 마치 영화배우 제니퍼 틸리(<바운드> <브로드웨이를 쏴라> 등)를 연상시켜 주목했지만 제니퍼 틸리의 경우 처음 들으면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차츰 장점으로 살아나는데 반해, 이 배우는 끝까지 개성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 보다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으로 살린다면 남다른 배우로 성장할 수도 있겠다. 한편 <올드보이>의 최민식처럼 진지한 중에 유머를 던지는 화가 역의 이영석의 연기는 안정되었지만 크게 어필할 정도는 아니다.

<누드모델>은 장사가 될 수 있겠지만 작품성 면에선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허나 아직 공연 초반임으로 앞으로 점점 두 배우의 연기가 깊어지고 연출이 보완된다면 관객들에게 삶의 권태를 느끼게 해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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