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지난 2년 동안 사회인 야구 활동을 했다. 야구를 한다는 생각에 설레며 일요일을 기다렸고, 어린 시절처럼 글러브와 배트를 들고 운동장으로 향하는 걸음은 즐거웠다.
삼진을 연이어 당한 경기가 끝나고 나면 일주일 내내 화장실 거울을 보며 타격자세를 수정했고, 장타를 날린 날엔 그 순간의 ‘손 맛’을 떠올리며 행복해 했다. 공이 배트를 맞고 허공을 가를 때, 배트를 타고 온 몸으로 느껴지던 그 순간의 전율로.
봄이 왔고 사회인 야구의 시즌이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야구를 하지 않는다. 내 방 옷걸이에 잘 세탁이 된 유니폼만이 덩그러니 걸려있을 뿐이다. 우리 팀의 이름은 가장 절친한 친구를 부르는 은어, ‘버디’(Buddy)였다. 하지만 야구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 ‘소통하지 못했다’. 그게 야구팀 해산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야구팀 창단은 2년 전 한 친구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동창인 우리는 모두 다 야구광이었다. 박철순과 김우열, 김일권과 김봉연, 하기룡과 이종도, 이해창과 김재박, 이만수와 이선희… 좋아하는 팀은 모두 달라지만, 그 시절 우리의 우상은 프로야구 선수였고 우리의 꿈은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버디’ 창단의 씨앗은 이미 오래 전부터 파종되어 있었다.
하지만 야구를 시작한 후, 채 6개월이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추억을 공유하며 시작한 야구는 분명 하나였지만, 막상 야구를 하면서 느낀 것은 9명에게 ‘9개의 야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친구에겐 야구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었고, 어떤 친구에겐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또 어떤 친구에겐 ‘친구들과 자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고, 또 어떤 친구에겐 ‘체력 단련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이 모두를 합친 것이 야구의 전체적인 의미가 되겠지만, 9명 모두 각각 다른 자신만의 비중을 두는 부분이 있었고, 미묘한 차이를 가진 ‘자신만의 야구’가 시시때때로 충돌했다.